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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사건의 용의자를 향해 다가가는 리포터, 카메라가 움직이는대로 덜컹덜컹 위아래로 흔들리는 영상, 마치 급박한 티비 뉴스의 한장면을 보고 있는 것같은 인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름다운 명승지 가쓰라와 계곡, 그 근처에 '안 단지'라 불리는 시영단지가 있다. 자갈이 깔린 광장을 'ㄷ'자로 에워싸듯 세워져 있는 30채 정도의 낡은 단층집. 하나같이 낡은 가옥의 처마밑에는 녹슨 프로판 가스가 설치되어 있다. 이 곳의 주민중 한사람인 다치바나 사토미의 4살난 아들이 2주일전에 계곡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용의자는 엄마인 사토미. 경찰은 엄마가 아들을 거추장스럽게 여겨 살해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사토미의 집앞에는 취재를 나온 보도진의 차가 항시 대기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용의자인 그녀의 행동은 어딘가 이상하다. 한가로이 인터넷으로 쇼핑을 즐기고 무방비한 차림새로 외출을 하는가하면 카메라 앞에서도 당당하다. 오히려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듯 화장이 나날이 짙어져 간다. 시선을 확 잡아끄는 이 초반부의 진행은, 어떻게 해야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지 그 진가를 보여주려는 듯 하다. 가까운 곳 어딘가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듯한 이 상황의 추이를, 숨을 삼키고 지켜보게 만든다.
그렇지만 소설은 의외로, 이 충격적인 사건을 계속해서 쫓아 가지는 않는다. 이 잔인한 엄마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잠시, 용의자의 돌발적인 진술은 수사진의 눈을 순식간에 그녀의 이웃집에 살고 있는 젊은 부부에게로 향하게 한다. 엄밀히 말하면 남편인 오자키 슌스케. 근처의 공장에서 계약 사원으로서 일하면서, 휴일에는 부업으로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리키고 있다. 경찰에 불려가 취조를 받던중 이 남자의 과거가 드러난다. 학창시절에 야구선수였던 남자는, 야구부 동료들과 함께 집단 강간사건을 일으킨 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의 과거를 파헤치는 출판사 기자 와타나베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강간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후의 삶, 두사람의 엇갈린 운명. 그것이 진짜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스토리를 미리 안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는건 아니지만 소재가 소재인만큼 줄거리만큼은 더이상 언급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심리묘사에 정평이 나있는 작가답게 범죄의 한가운데에 있는 인물들의 심리를 재해석해서 그려내는, 극적인 상황 속에서 찾아낸 사랑의 모습이 압권이다. 이것으로 요시다 슈이치는 굉장했던 <악인>에 이어 2연타. 아이러니한 사랑의 진수를 보여주는 두작품이지만 그 중에서도 보다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만한 쪽은 역시 이 작품, <사요나라 사요나라>라고 생각한다. 가해자가 짊어지고 가는 죄책감, 그리고 피해자였던 여성의 고통으로 점철된삶. 상반된 입장의 두 남녀가 살아온 모습이 생생하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또하나 주목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 집단강간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비록 사소한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 사건은 두고두고 오자키를 지겹게 따라다닌다. 그리고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업이다. 그렇지만 남자인 오자키에게 그것은 충분히 감수할수 있는 범위에서의 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오자키의 과거를 두고 '남자'이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피해자였던 여자의 삶이야말로 뭐라 말할수 없을 정도다. 그 사건 이후로 그녀의 삶은 더이상 스스로 컨트롤하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로 자꾸만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져왔다. 남자와 여자를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차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이쯤되면 같은 감상이라 하더라도 남성독자와 여성독자가 느끼는 그 정도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해자인 오자키의 죄의 댓가는 집행 유예 5년이었다. 그 나름대로 죄를 갚으려고 한 그는, 본인 스스로도 너무나 쉽게 용서받았다고 생각할 만큼 예상외로 순조롭게 사회에 복귀할수 있었다. 그렇다면 피해자인 여자는? 사건을 쫓던 와타나베와 선배기자의 사적인 대화는 의미심장하다.
“만약에 아드님이 강간사건 같은 것을 일으킨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글쎄 실망스럽겠지."
"실망?"
"그런 바보같은 일로 아들의 일생을 망친다고 생각하면 엄청 실망하겠지. 부모로서는."
"그럼 만약 따님이라면?"
"딸, 딸이 강간당한다고?"
"네에."
"그, 그런 놈은 때려 죽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