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신은 뇌 - 뇌를 젊어지게 하는 놀라운 운동의 비밀!
에릭 헤이거먼. 존 레이티 지음, 이상헌 옮김, 김영보 감수 / 녹색지팡이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운동선수는 뇌까지 근육이라는 비아냥 섞인 농담을 종종 듣곤 한다. "운동선수=바보"라는 뿌리깊은 편견에서 비롯된 이런 이야기들은 물론 과장된 농담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운동능력과 학습능력의 관계는 반비례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러한 생각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운동은 뇌를 단련시킨다.

저자는 정신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의학박사로서 우울증이나 약물의존 환자들을 오랫동안 치료하면서 특히 신체와 마음의 관계를 주제로 연구를 해 오고 있다. 그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낸 결론은 운동은 뇌의 기능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 주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놀랄만한 사실이다.
 
다소 과장되고 엉뚱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면, 이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실험을 반복하고, 여러가지 논문을 인용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마나 많은 환자와 마주해 온 결과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제1장에서는, 미국 시카고의 네이퍼빌 센트럴 고등학교에서 실시한 "0교시 체육수업"의 효과에 대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1990년에 시작한 0교시 체육수업은 보통의 체육시간과는 달리, 트랙을 달리면서 걸린 시간에는 신경쓰지 않는 대신, 최대 심박수의 80~90%정도의 부하가 걸리는 것이 조건이다.

왜냐하면, 스피드나 거리가 아닌 심박수를 기준으로 운동시킴으로서 운동에 취약한 학생도 수업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운동능력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자기 자신의 건강과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확실히 신체교육의 진수일 것이다. 그러나 진짜로 주목해야 할 점은 체육수업을 교실수업보다 앞서서 행한다는 사실이다.

타과목 수업을 실시하기 전에, 먼저 운동을 함으로써 학생의 독해력이나 논리적 사고 능력이 눈부시게 향상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9년에 실시된 "팀스"의 테스트 결과는, 미국 평균이 과학과 수학 각각 세계 18위와 19위였던데 반해서, 이 학교에서는 세계 1위와 6위라는 놀랄 만한 좋은 성적을 거두어 네이퍼빌의 기적으로까지 불리며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그런 운동과 뇌의 상관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이나 사례, 운동에 대한 혁신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최신 연구결과에 따르면, 운동(특히 유산소 운동)이 학습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뉴런의 기능을 강화하고 성장을 촉진하는 신경세포 성장인자의 생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뉴런의 활발한 활동이 이후의 높은 학습효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운동이 학습 능력을 높인다는 것도 놀랍지만, 운동의 효과는 그것 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약물 치료에 의지해 온, 울증이나 의존증에도 운동이 효과가 있음이 인정되고 있다. 운동을 하면 적극적이 되고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 근래에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치료방법으로 운동을 권장하고 있다.

운동은 훌륭한 가능성을 감추고 있다. 건강하면 주의력, 집중력이 높아져 모든 분야에서 보다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입사시험에서 학력 이상으로 운동습관을 거론하게 되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운동이 편견에서 벗어나 존경의 시선을 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자, 뇌를 단련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달리기를 시작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저 좋은 사람>을 리뷰해주세요.
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줌파 라히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애매한 감정을 그리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간단하게 "슬픔"이라던가 "상실감"이라는 말로는 나타낼 수 없는, 좀 더 복잡하고, 어떤 의미로는 좀 더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는 심리 상태를, 독자로 하여금 또렷이 생각해 내게 한다.

라히리의 신작인 이 <그저 좋은 사람>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훌륭한 작품집이다. 단-중편집인 만큼 한편 한편 시간을 들여 음미하면서 읽었다. 수록된 작품은 모두 벵갈계 인도인이 주인공으로, 그들은 이민자 세대인 부모들과는 달리 벵갈인 사회보다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온 세대이다. 한국인인 내가 읽어도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모든 작품에 공통되게 그려지는 주제나 감정이 보편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려지는 것은 여러가지 형태의 사랑(부모와 자식의, 누이와 동생의, 연인 혹은 연인같은 사이의, 그리고 부부 사이의)과 그에 따라 수반되는 다양한 감정이다.

백인남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려 아이를 기르고 있는 딸에게, 아내를 잃고 독신 생활을 하고 있는 벵갈인 아버지가 놀러 오는 본래의 표제작 <길들지 않은 땅>(원제: Unaccustomed Earth). 딸은 아버지가 이곳에서 함께 살기를 자신이 바라고 있는 것인지 어쩐지 스스로도 잘 알 수가 없다. 만약에 어머니였다면 틀림없이 망설임없이 같이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같이 지내자는 권유를 물리치고 돌아가는 아버지에게서 어렴풋이 보이는 새로운 사랑의 그림자. 아버지는 가사와 육아에 쫓기는 딸을 보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를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가 이윽고 집을 떠나고 싶어하게 되고,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때로는 관계가 끊어질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가족을 이루며 살다보면 찾아올 쓸쓸한 결말이 딸에게는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끝맺는다.
"가족을 이루는 일 자체, 이 땅에 아이들을 낳는다는 것 자체가 때로 만족감을 주는 만큼 어딘가 잘못된 일이다."

또, <머물지 않은 방>에서는 아밋과 메건 부부가 아밋의 동창의 결혼 파티에 참석한 하룻밤이 그려진다. 벵갈계의 아밋은 미국의 명문 대학을 나와 의료 잡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고, 아내 메건은 5살 연상의 의사이다. 보다 바쁜 아내를 대신해 어린 두 아이의 식사와 목욕은 아밋의 차지이다. 결혼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여성에게 결혼은 어떤 느낌일까라는 질문을 받은 아밋은, 결혼 생활은 사라진다, 모든 사람에게 언젠가는 일어나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모니카가 태어나고 부터 함께 시간을 보낼 궁리보다는 어떻게 하면 각자 혼자 시간을 보낼까 궁리하지 않았던가. 혼자 있는 그 순간을 그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오죽하면 혼자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가 하루중 최고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는지 말이다. 인생의 짝을 찾는다고 그렇게 헤매고서 그사람과 아이까지 낳고서 아밋이 메건을 그리워 한 것처럼 매일밤 그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렇게 절실히 혼자있길 원한다는 건 끔찍하지 않은가."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자란 우수한 남동생과, 남동생이 빗나가게 된 원인이 자신이 아닐까 하는 죄의식을 씻을 수 없는 누나를 그린 한국어판의 표제작 <그저 좋은 사람>.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일도 않고 틀어박혀 있던 남동생이 갑자기 행방을 감추어 버린다. 한참 후에, 소식불통이던 남동생이 갑자기 결혼한 누나의 집에 찾아 온다. 완전히 정신을 차린 듯한 남동생의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처럼 다시 마음이 터놓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누나의 마음을 배신하고 마지막에 남동생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다. 그것으로 남편과 처음으로 큰싸움을 벌인 누나. 이야기를 끝맺는 문장은 이러하다.
"그녀는 더이상 자기를 신뢰하지 않을 남편과 이제 막 울기 시작한 아이와 그날 아침 쪼개져 열려버린 자기 가족을 생각했다. 다른 가족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이 두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

어느 작품도 결코 해피한 결말은 아니지만, 담담하게 그려지기 때문인지 뒷맛이 나쁘지는 않다. 반대로 독자는 이러한 일상의 파편을 집어내는 저자의 솜씨에 무심코 감탄하고, 그리고 한숨을 내뱉게 될 것이다. 어떤 가정에라도 있을 법한, 이것은 마치 나의 이야기가 아닌가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리뷰해주세요.
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과거 다음에는 현재가 오고, 그 다음은 미래가 되는 일방통행의 시간의 흐름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진실이지만, 만약 그러한 시간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고 또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책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각자가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속에서 살아가는 남녀의 사랑과 삶을 그린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시간 여행자의 아내"란 어떤 의미인가?"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시간 여행을 "해 버리는" 남자의 아내를 말한다.(그대로인가?) 시간여행이라고는 해도 스스로의 의지로 자유롭게 시간을 넘나드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말 그대로 "해 버린다" 혹은 "하게 된다" 는 개념이다. 이 작품의 주목해야 할 부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흥미로운 모험이야기로서의 시간여행이 아니라, 시간을 넘나드는 능력이 "시간장해"라는 일종의 유전적인 결함의 하나로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헨리는 언제나 부지불식간에 알몸 상태로 다른 시대에 내던져지는, 자신의 몸 이외에는 의복을 포함한 어떤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매우 불편하고 위험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이야기에서 많이 보여지던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자신과는 마주쳐서는 안 된다"와 같은 규칙같은 것은 일체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시대의 자신과 연관되어 간다. 그리고 이런 시간장해를 안고 살아가는 헨리의 아내가 바로 또 한명의 주인공인 "시간여행자의 아내" 클레어다.

이야기는 헨리와 클레어의 시점을 교차해가며 담담하게 나아간다. 클레어가 헨리와 처음 만나는 것이 6살 때로, 이 첫 대면 이후 클레어의 성장 단계에서 매번 다른 나이의 헨리가 나타난다. 그렇지만, 나타나는 것은 30대 이후의 헨리. 그런 두 사람이 현실(현실이라는 말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에서 만나는 것은 클레어가 20살, 헨리가 28살 때. 시간의 흐름상 이 지점에서의 헨리는 아직 과거의 클레어를 만나러 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클레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오히려 클레어는 6살 때부터 몇번이나 만나 온 까닭에 헨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시간차에 의한 유머러스하거나 로맨틱한 느낌의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당연하게도 두사람은 연결되지만, 결혼 후에 헨리는 과거의 클레어를 만나러 빈번하게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떠나진다). 헨리가 없는 시간은 고작 몇분에서부터 몇 시간, 어떤 때는 며칠에 이르기까지 매번 다르고, 그 시간동안 클레어는 오로지 걱정 하면서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이 시간장해를 안고 살아가는 헨리의 고뇌와, 남편을 지키며 기다림을 반복하는 아내 클레어의 인생이 너무나 안타깝게 다가온다.

헨리는 분명히 시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의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어쩔수 없이 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결국 헨리에게 있어서는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과거"나 "미래"라는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 그대로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두개의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을 사는 사람끼리 어느 한 지점에서 연결되고, 그리고 맞이하는 이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는 기어코 눈물짓게 만드는 이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시간여행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결코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명한 투자자가 알아야 할 돈에 관한 진실
김항주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브 프라임 사태 이후에, 현재의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원인과 향후 대책을 분석하는 책들이 우후죽순 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경제전문가들, 석학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었다면, 이 책은 월스트리트 한인 1세대인 현직 트레이더가 바라본 월가의 실태다.

기존의 서적들이 거시 경제학및 행동경제학까지 동원해서 철저하게 이론적, 학문적인 관점에서 서브 프라임 사태를 진단하는데 반해서 이 책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현장에서 체험한 월가의 매커니즘과 위기가 촉발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비판과 이러한 금융시스템 하에서 현명한 투자자가 취해야 할 투자자세에 대해 언급한다.
 
경제학을 베이스로 서브 프라임 사태를 이야기 할때는 그 실체가 명확히 보이지 않았던 감이 없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확실하게 그 실체를 목격 할 수 있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어떻게 시작되고 왜 그것이 이렇게 걷잡을수없이 무너져 내리는가, 레버리지라는 거품으로 쌓아올린 월가의 그것은 그동안 막연히 바라본 월가의 이미지와는 180도 다르다. 그 실채에 대해서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세계적인 금융 인재들이 모여 일구어 낸 것이 실체없는 돈의 숫자놀음, 말 그대로 빚으로 쌓아올린 눈가리고 아웅 식의 투전판이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한순간 금융위기가 잠잠해졌다고 방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자가 다단계에 비유하는 현재의 금융시스템은 여전히 거품으로 가득하다. 아직도 제2, 제3의 더 큰 위기가 남아있다고 말한다. 이런 금융 시스템 하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자신의 돈을 지키고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투자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일단은 투기에 있어서의 레버리지의 축소, 미리 쓰고 나중에 갚는 현재의 소비문화에 대해서도 반성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몇년전 카드 돌려막기 사태가 떠오르는데, 언제부턴가 열심히 일해서 저축하는게 바보같이 느껴지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다. 빌려서 쓰고 나중에 갚는 문화가 당연시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빚을 만들어가고 있는 지금, 새마을 운동때로 돌아가자는 저자의 말은 일견 수긍이 간다. 레버리지가 경제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별다른 금융지식도 없이 레버리지를 안고 투기에 나서는 것은 언제라도 쫄딱 망할 가능성을 안고 있는 어찌보면 도박이나 마찬가지인 행위다. 우리가 투자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는지는 무너져가는 지금의 월가의 모습이 잘 말해준다.

서브 프라임 사태와 관련한 내용을 다루는 대부분의 경제서적들이, 모든 독자가 일정수준 이상의 경제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가정하에 설명하고 있는 것이 불편했던 독자라면 에필로그 뒤에 따로 지면을 할애해 설명하는 파생상품 관련 용어들, 경제용어들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비전문가인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사실 경제뉴스 조차도 생소한 용어들이 많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애초에 전문가만을 대상으로 쓰여진 서적이 아니라면 이런 배려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84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망의 신작 장편 <1Q84>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곧바로 구입해서 앞부분을 살금살금 아껴가면서 읽어 내려가던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조지오웰"의 <1984>를 의식하고 1Q84를 집필했다는 소문을 듣고, 그렇다면 이 쪽을 먼저 읽어두자 하는 생각으로 가볍게 1984를 읽기 시작한 것인데, 생각지도 않게 다 읽고 난 후에는 머리로 타종을 한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1984>는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이 1948년에 발표한 작품. 미래(당시로서는)의 파멸적인 사회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저자인 오웰이 제국주의를 혐오하고 있었다고도 하고, 또 스탈린의 철의장막 하의 독재국가의 공포를 그리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이 당시의 사회주의에 대한 비난여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다. 또한 현대사회의 모습과도 적지않게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 책을 읽으면 소설 속에서 그리고 있는 재미와 공포가 더욱 리얼해진다.

이렇게까지 무서운 이야기도 없다. 전세계가 3개의 큰 나라로 나뉘어진 1984년, 3국간에는 끊임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주인공 윈스턴이 사는 오세아니아에서는, 곳곳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을 사용해서 국민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되고 있고, 언어는 신어(신언어)로 제한되며, 아이가 부모를 밀고하는 행위가 장려되고 있다. 과거를 왜곡하고, 저항 세력이 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자는 반복된 고문으로 세뇌되어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 윈스턴은 이 사회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어떻게든 올바른 세계관을 되찾을 수는 없을까 은밀하게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그리 특별하다 할 것까지는 없다. 그러나 1948년에 쓰여진 이 소설에서 어느 체제의 "지배"의 형태를 밑바닥까지 들여다 보듯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놀랍다. 주인공이 하는 일은 "빅 브라더"의 예언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과거의 기록을 고치는 일. 항상 감시당해 행동은 제한되고 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는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사용하는 언어와 성생활도 통제되고,
먹는 즐거움도 빼앗겨 버렸다. 그저 '세뇌에 의해 국민을 지배하는 체제' 정도를 그리는 차원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상범들은 철저한 폭력에 의해 개심되고, 진심으로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사살된다. 살해당하는 사람들은 감사하면서 죽어 간다. 뒤틀린 광기와 궁극의 폭력애가 섬뜩하다.

1984를 읽은 뒤에는 폭력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이 소설의 굉장한 점은, 이 모든 묘사와 과정에 대해 납득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두에서부터 보여지는 당의 캐치프레이즈를 마지막에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해하게 되는 것일 뿐, 도취되거나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해하기 때문에 한층 더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특히 종반의 오브라이언이라는 당원이 펼치는 사상이론은 실로 논리적이다. 이 정도까지 철두철미하게 구축된 사상에는 역으로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든다.

윈스턴의 고독한 싸움은 그 자체로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인간의 존엄을 찾기 위한 싸움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자를 과연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결코 숨가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읽기를 멈출수 없었던 것은 나 자신이 윈스턴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입장을 바꿔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1984에 그려진 세계가 소설 속만의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낙관적으로 되지만은 않는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나, 러시아, 북한, 심지어는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에 이르기까지, 어딘가 비슷한 풍경이 있지 않았나하고 읽으면서 순간순간 움찔 하곤 했다.

인간이란 정말로 약한 존재다. 육체에 고통이 가해지면 이제 사상따위는 어찌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어 버린다.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리면 정신은 타협을 원한다. 그렇지만 드물게는 숭고한 사명을 위해서 이를 견뎌내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관철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새삼스레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 존경심을 느낀다.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 정도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살아있는 동안 읽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 독서 체험이었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어떤식으로 이 작품의 향기를 맡게 될 것인가, 1Q84를 더욱 더 즐겁게 기대하게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