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을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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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평점 :
"줌파 라히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애매한 감정을 그리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간단하게 "슬픔"이라던가 "상실감"이라는 말로는 나타낼 수 없는, 좀 더 복잡하고, 어떤 의미로는 좀 더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는 심리 상태를, 독자로 하여금 또렷이 생각해 내게 한다.
라히리의 신작인 이 <그저 좋은 사람>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훌륭한 작품집이다. 단-중편집인 만큼 한편 한편 시간을 들여 음미하면서 읽었다. 수록된 작품은 모두 벵갈계 인도인이 주인공으로, 그들은 이민자 세대인 부모들과는 달리 벵갈인 사회보다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온 세대이다. 한국인인 내가 읽어도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모든 작품에 공통되게 그려지는 주제나 감정이 보편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려지는 것은 여러가지 형태의 사랑(부모와 자식의, 누이와 동생의, 연인 혹은 연인같은 사이의, 그리고 부부 사이의)과 그에 따라 수반되는 다양한 감정이다.
백인남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려 아이를 기르고 있는 딸에게, 아내를 잃고 독신 생활을 하고 있는 벵갈인 아버지가 놀러 오는 본래의 표제작 <길들지 않은 땅>(원제: Unaccustomed Earth). 딸은 아버지가 이곳에서 함께 살기를 자신이 바라고 있는 것인지 어쩐지 스스로도 잘 알 수가 없다. 만약에 어머니였다면 틀림없이 망설임없이 같이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같이 지내자는 권유를 물리치고 돌아가는 아버지에게서 어렴풋이 보이는 새로운 사랑의 그림자. 아버지는 가사와 육아에 쫓기는 딸을 보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를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가 이윽고 집을 떠나고 싶어하게 되고,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때로는 관계가 끊어질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가족을 이루며 살다보면 찾아올 쓸쓸한 결말이 딸에게는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끝맺는다.
"가족을 이루는 일 자체, 이 땅에 아이들을 낳는다는 것 자체가 때로 만족감을 주는 만큼 어딘가 잘못된 일이다."
또, <머물지 않은 방>에서는 아밋과 메건 부부가 아밋의 동창의 결혼 파티에 참석한 하룻밤이 그려진다. 벵갈계의 아밋은 미국의 명문 대학을 나와 의료 잡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고, 아내 메건은 5살 연상의 의사이다. 보다 바쁜 아내를 대신해 어린 두 아이의 식사와 목욕은 아밋의 차지이다. 결혼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여성에게 결혼은 어떤 느낌일까라는 질문을 받은 아밋은, 결혼 생활은 사라진다, 모든 사람에게 언젠가는 일어나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모니카가 태어나고 부터 함께 시간을 보낼 궁리보다는 어떻게 하면 각자 혼자 시간을 보낼까 궁리하지 않았던가. 혼자 있는 그 순간을 그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오죽하면 혼자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가 하루중 최고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는지 말이다. 인생의 짝을 찾는다고 그렇게 헤매고서 그사람과 아이까지 낳고서 아밋이 메건을 그리워 한 것처럼 매일밤 그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렇게 절실히 혼자있길 원한다는 건 끔찍하지 않은가."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자란 우수한 남동생과, 남동생이 빗나가게 된 원인이 자신이 아닐까 하는 죄의식을 씻을 수 없는 누나를 그린 한국어판의 표제작 <그저 좋은 사람>.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일도 않고 틀어박혀 있던 남동생이 갑자기 행방을 감추어 버린다. 한참 후에, 소식불통이던 남동생이 갑자기 결혼한 누나의 집에 찾아 온다. 완전히 정신을 차린 듯한 남동생의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처럼 다시 마음이 터놓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누나의 마음을 배신하고 마지막에 남동생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다. 그것으로 남편과 처음으로 큰싸움을 벌인 누나. 이야기를 끝맺는 문장은 이러하다.
"그녀는 더이상 자기를 신뢰하지 않을 남편과 이제 막 울기 시작한 아이와 그날 아침 쪼개져 열려버린 자기 가족을 생각했다. 다른 가족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이 두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
어느 작품도 결코 해피한 결말은 아니지만, 담담하게 그려지기 때문인지 뒷맛이 나쁘지는 않다. 반대로 독자는 이러한 일상의 파편을 집어내는 저자의 솜씨에 무심코 감탄하고, 그리고 한숨을 내뱉게 될 것이다. 어떤 가정에라도 있을 법한, 이것은 마치 나의 이야기가 아닌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