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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드는 남자 ㅣ 밀리언셀러 클럽 76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음... 이런거였군요. 이렇게 줄어드는거였어요. 제목을 보았을 때 무언가 상징적인 의미의 '줄어드는' 인줄 알았어요. 그러면서 그와는 별개로 '야 이거 사람몸이 줄어드는 이야기가 소설로 나와도 재미있겠는데' 라는 상상을 했었기 때문에 처음 책장을 넘겼을때는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몸이 줄어드는 남자의 이야기 입니다. 애초에 상징적인 의미따위는 없었습니다. 제목그대로 줄어드는 남자에요. 일요일날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이 일요일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가방을 싸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웃음이 나온거지요. 뭐, 그런건 별로 상관 없으려나요.
어느날부터인가 갑자기 남자의 몸이 줄어듭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조금씩 줄어들어 180센티가 넘던 건장하던 몸이 어느새 아내와 비슷한 170센티대의 키가 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단순히 키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몸의 비례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축소되어 간다고 해야겠네요. 의사들도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남자는 속수무책으로 작아져 가는수 밖에 없습니다. 나중에서야 이런 신기한 증상의 원인이 요트위에서 일광욕을 하던중 방사능 안개에 노출되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내지만 그렇다고 해도 달라질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치료법은 없고 남자의 몸은 그순간에도 계속해서 줄어갈 뿐입니다. 동네꼬마 녀석들 사이즈로 줄어들더니 얼마후에는 또 어린 자신의 딸보다도 작은 아버지가 되고 맙니다. 줄어들고 줄어들고 줄창 줄어들기만 하다가 급기야는 지하실에서 서식하고 있는 거미보다도 작은 좁쌀같은 인간이 되어 과자부스러기로 목숨을 연명하면서 괴물거미와 사투를 벌이는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의 몸이 곧 제로가 되어 영원히 소멸될것을 깨닫습니다. 마지막 날 모든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뭇잎사이에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다음날 잠이 깬 남자가 맞이한것은....
이쯤되면 심판의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가 오히려 부럽게 느껴질만한 상황입니다. 몸이 줄어들어감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주변상황들, 늘어만가는 위험요소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어려움이 닥쳐올지 예측하기 힘든 미지의 세계에 홀로 버려진 셈입니다. 게다가 작아진 몸으로는 감당해낼수 없는 온갖 욕구들이 남자를 더욱 고통스럽고 견딜수 없게 만듭니다. 시종일관 고뇌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끝없는 절망감이 생생하게 느껴져 옵니다.
이책에 실린 단편중 '2만 피트 상공의 악몽'이라는 작품이 에피소드에 포함되어있는 환상특급이라는 외화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매회마다 신기하고 기묘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여서 숨죽여가며 보던 기억이 납니다. 분명 기상천외한 이야기들긴 하지만 결단코 공포영화는 아니였는데 어린시절에는 그게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더라구요. 보는내내 머리카락이 쭈뼛쭈뼛서고 한번보고나면 며칠동안은 밤에 혼자 잠도 못자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기분은 특히 옛날 이야기, 설화나 민담같은데서 많이 느꼈던 것 같은데, 지금 떠오르는 아라비안나이트를 보면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책들이 많아서 얼핏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되는수도 있습니다만 곰곰히 잘 생각해보면 이게 또 상당히 섬찟하고 기괴한 이야기들로 넘쳐납니다. 애시당초, 여성들을 혐오하게 되어, 온 나라안의 처녀들을 매일밤 한명씩 취한뒤 죽여버리는 왕에게 세헤라자드라는 한 현명한 여인이 천일야화를 들려주어서 위기를 모면하고 왕의 마음을 바꾸어놓는다는 끔찍하다면 끔찍한 설정이니까요. 미지의 세계에서 고립되는 주인공,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특이한 가치관, 괴이한 인간상들이 결합되어 만들어내는 어딘가 비정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이야기가 어린아이의 감성으로는 너무나도 무시무시하게 느껴졌었습니다.
'줄어드는 남자'가 그렇습니다. 남자가 줄어들면서 그의 주위의 것들도 서서히 이상하게 변해갑니다. 지금까지는 남자에게 있어서 지극히 평범했던 모든것들이 느닷없이 그를 옥죄어오는 존재로 탈바꿈합니다. 거미나 새가 괴물이나 다름없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는것도 괴이하다면 괴이한 장면이지만, 작아진 아빠를 천진난만하게 인형 가지고 놀듯 집어던지고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어린딸, 줄어드는 남자를 때려잡을 기세로 쫓아오는 아이들, 그리고 사람의 몸이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앞에서 너무나도 담담하고 의연한 사람들의 모습이 어딘가 정상에서 조금 핀트가 벗어난듯해서 괴이쩍고, 별안간에 사람이 아닌 이상한 존재들(가령 좀비같은)로 변해버린듯한 느낌입니다. 세기말적인 분위기에 더해져서 때때로 섬찟한 기분이 되곤 합니다.
500여 페이지 가량 되는 이책에는 표제작 '줄어드는 남자' 이외에도 11편의 짧지만 임팩트 강한 단편들이 실려있습니다. 대체로 모든 수록 작품에 이런 분위기들이 잘 살아있는 듯합니다.
리처드매드슨의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기묘한 이야기들을 만끽할수 있는 작품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