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울프
닐 게이먼.케이틀린 R. 키어넌 지음, 김양희 옮김 / 아고라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마치 영화를 한편 본듯한 느낌이다.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었지만 소설 베오울프는 영화의 영상미 못지않은 장면묘사가 일품이다. 글을 읽은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따라다니면서 한장면 한장면을 눈꺼풀에 각인시킨것처럼 나중에도 너무나 생생한 장면들을 떠올릴수 있는게 신기하다. 빠르고 박진감넘치고 유머러스한것이 영락없는 한편의 헐리웃 영화이다. 엔터테인먼트소설로는 이만한것도 없을듯 싶다. 베오울프의 전설속에 빠져있는 동안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었지만,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유명한 반지의제왕을 시작으로 수많은 환상소설의 모티브가 된것이 북유럽신화라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정작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려고 하면 그 실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신화나 설화가 그렇듯 오랫동안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온 탓에 이렇다 할 정형화된 문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훗날 기록되었다해도 서사시이다보니까 특히 문화권이 다른 우리나라에서는 그 원문을 확인하기가 힘들뿐더러 요약이나 각색한 작품마저도 접하기가 쉽지 않다. 이야기와 그것이 주는 재미라는 면에서는, 단순하고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주제를 다룬 구전설화보다 환상소설쪽이 더 만족스러울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방대하고 치밀하다고 해도 개인이 만들어낸 세계관으로는 충족시킬수 없는 부분이 있는것 같다. 북유럽신화라면 그들 민족만의 세계관, 인간관, 생활상이 반영되어있을것이고 바이킹의 후예인 그들의 용맹함이나 호전성의 근원이 되는 가치관을 엿볼수 있을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 민족만이 가진 혼을 느껴보고 싶은것이다. 이런것들은 아무리 신화를 모티브로 하고 멋들어진 줄거리를 가졌다고 해도 환상소설에는 결여되어 있는 부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면에서 소설 베오울프는 어느정도 그 빈자리를 채워줄만한 작품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문서사시라는 베오울프를 각색한 이 작품은 물론 오락적요소가 가미된 엔터테인먼트 소설이지만, 베오울프라는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쉽고 즐겁게 북유럽신화를 엿볼수 있는 대안이 될수 있을듯 하다. 마법이 난무하고 요정이 날아다니는 세상을 읽는것도 즐겁지만 힘과 용맹함이 최고의 미덕이던 시대의 근육질의 영웅을 읽는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였다. 무엇보다도 고뇌하는 영웅, 선과 악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미 넘치는 베오울프의 모습은 단순한 오락소설을 넘어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깊이 고찰해볼수 있는 좋은 기회도 부여해주었다. 

쉽게 접할수 없던 고대설화를 이렇게 재기넘치는 필치의 글로 읽을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