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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N25026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작년 한강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되었을 시간에 나는 한 카페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청춘을 읽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하루하루 소모가 반복되던 날들 중 그래도 나름 의미가 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뭐 이후에는 계속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기는 했지만...
나는 2024년에 한강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거라고 예상은 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온다면 한강작가님이 받을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당시에 내가 읽은 한강 작가님 작품은 <채식주의자>, <희랍어시간>, <작별하지않는다> 단 세편이었지만 이 작품들은 모두 인상적이었고, 특히 시적인 문장과 기존 한국문학에서 느끼기 힘든 특유의 깊은 어둠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알라딘 우주점에 가서 안읽은 중고책을 하나둘 모으고 있었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지만 더이상 못읽는 와중에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신 것이다. 개인적으로 유행타는걸 선호하지 않아서 한강작가님 신드롬이 한창일때는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그동안 못읽고 있었다가, 이제 유행이 좀 가라 앉아서 다시 읽으려고 마음을 잡고 선택한 작품이 <소년이 온다>였다.
사실 이 작품이 한강 작가님의 대표작인건 알고 있었지만 손이 가질 않았다. 역사배경의 소설을 선호하지 않고, 5월 광주에 대해서는 많이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게 나의 독서 인생 가장 큰 실수였다. 바로 <소년이 온다>를 이제야 읽었다는 것. 만약 이 책을 한강 작가님의 첫 작품으로 읽었더라면 나는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이전에 작가님의 모든 책을 구매하고 읽었을거라 확신한다. 아 바보같이 나는 왜 이제서야 <소년이 온다>를 읽은 것일까.
내가 지금까지 읽은 한국 문학중 단 하나, 최고의 작품을 말하라고 하면 <소년이 온다>를 고를 것이다. 왜 한림원에서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번을 쉬지 않고 무겁고 아프게 느껴지는 작품은 처음이었다. 텍스트 만으로 이렇게 깊은 슬픔을 표현할 수 있다니, 문장 문장하나가 마치 실제 장면처럼 그려질 수 있다는게 너무 놀라웠다. 영상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을것 같은 감정의 깊이. 이게 바로 문학의 힘,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소년이 온다>는 6개의 장과 마지막 에필로그로 그성되어 있는데, 1장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어느 장 하나 빠지지 않고, 이야기는 촘촘히 이어진다.
<1장> 어린 새 : 동호
2인칭 시점으로 화자가 주로 관찰하는 대상은 이 책의 주인공인 아직 중학생인 소년 ˝동호˝다. ˝동호˝는 친구인 ˝정대˝와 함께 시위대가 행진하던 광장에 있었지만, 군인들의 총격에 강제로 해산되고, ˝정대˝가 옆구리에 총을 맞는것을 본다. 이후 ˝동호˝는 ˝정대˝를 찾기 위해 사망자들이 안치되어 있는 상무관으로 가고, 그곳에서 이후 이아기의 주인공들인 ˝은숙˝, ˝선주˝, ˝진수˝를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P.17
˝동호˝는 친구 ˝정대˝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게다가 ˝정대˝의 누나인 ˝정미˝도 실종되었다. 이제 곧 무장한 군인들이 이곳 상무관으로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동호˝는 친구와 누나를 찾아서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자신까지도.] P.45.
<2장> 검은 숨 : 정대
2장은 군인이 쏜 총을 맞아 사망한 ˝정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망한 다수의 시민과 함께 군인들에 의해 포개져 방치된 ˝정대˝의 영혼은 자신의 육신을 떠나지 못한다. 썩어가는 시신들에 대한 묘사는 너무 사실적이서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머리속에 그려지는 그들의 육신, 나의 심장으로 느껴지는 그들의 고통. ˝정대˝의 영혼은 친구 ˝동호˝의 죽음을 느낀다.
[어디선가 누나의 혼도 어른거리고 있을 텐데, 그곳이 어딜까, 이제 우리한텐 몸이 없으니 만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일 필요는 없을텐데. 하지만 몸 없이 누나를 어떻게 만날까. 몸 없는 누나를 어떻게 알아볼까.] P.51
5월 광주의 잔혹한 참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이 2장이라 생각한다. 아무 잘못도 없이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그들, 그들의 빼앗긴 인생을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단지 그곳에, 광주의 광장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 그들의 억울한 혼은 아직 여기에 있다. 지금도 남아 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P.57
<3장> 일곱개의 뺨 : 은숙
3장 부터는 5윌 광주 이후 육체와 영혼의 상처를 가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3장의 주인공은 당시 고3 여학생이었던 은숙이다. 그녀는 계엄군이 상무관을 무장진압하기 직전에 시민군들과 대학생 ˝진수˝의 배려로 그곳을 빠져나온다. 함께 싸우고 싶었던 마음과 함께 살아남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은숙.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입을 벌리고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반투명한 창자를 쏟아내며 숨이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 P.89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그녀는 출판사 직원이 되어, 5월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한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 하지만 국가의 지속적인 감시와 검열 때문에 그 책 내용의 대부분은 삭제되고 만다. 그럼에도 책의 내용은 연극으로 상영된다. 삭제된 부분은 소리로 전달되지 않고 단지 입술의 모양으로만 표현된다. 하지만 이 책의 원고 교정을 했던 은숙은 이들이 말하려는 내용을 알고 있다. 그리고 연극 속에서 소년을 본다, 그리고 동호를 떠올린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른지 못 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꽃은 양초 불꽃들이.] P.102
<4장> 쇠와 피 : 진수
4장은 그날 이후 살아남았던 대학생 ˝진수˝에 대한 이야기로, 그와 함께 고문을 당하고 감금된 나의 회고로 진행된다. 당시의 비인간적인 고문은 작가님의 문장을 통해 그 아픔과 비참함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정말 인간이 인간을 저렇게 괴롭히는게 가능한걸까? 사실이다.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증거니까.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럽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P.114
˝진수˝는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형량은 무의미했다. 국가에서 그들을 특사로 석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가는 그들에게 사죄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남았지만, 감옥 밖에서 형량을 사는것과 다르지 않았다. 5월의 아픔과 감옥에서의 치욕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다. 매일 매일 술로 버티던 ˝진수˝는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된다. 죽음밖에는 답이 없었던 살아남은 자의 아픔. 결국 국가가 그에게 선고한건 7년형이 아니라 사형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아니, 그런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던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던 걸 증명한 거야.] P.130
<5장> 밤의 눈동자 : 선주
5월 광주에서 시민군에 가담해 저항하다 옥살이를 한 ˝선주˝가 주인공이다. 감옥에서 나온 그녀는 한 사회단체에서 묵묵히 일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날의 아픔과 치욕속에서 쥐죽은듯이 조용히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윤˝이라는 사람에게 연락이 온다. 5월 이후 몇십년만에 말이다. 그는 당시 여성으로 구속된 그녀에게 증언을 부탁한다. 하지만 그 고통을 그녀 스스로 증언하는게 가능하긴 한 걸까? 악몽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뿐인데 말이다.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있다고 중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살아남기 위하여] P.167
<6장> 꽃 핀 쪽으로 : 동호 어머니
6장은 이제는 늙은 ˝동호˝의 어머니가 ˝동호˝에게 쓴, 보낼 수 없는 편지다. 너무 그리워서 그랬는지 어머니는 ˝동호˝를 본 것 같았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머니는 ˝동호˝라고 믿는다.
[네가 나한테 한번 와준 것인디,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여 줄라고 온 것인디, 늙은 내가 너를 놓쳐버렸어야. 시장통 좌판 사이로, 골목골목으로 한시간을 뒤지고 댕겨도 없어야. 무릎 속이 쑤시고 어질어찔 골이 흔들려 바닥에 주저앉았다이.] P.179
자식을 먼저 보낸, 그것도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식을 둔 부모님의 아픔은 얼마나 클까? 자식잃은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이 세상에 없다. 어머니는 그때 ˝동호˝를 상무관에서 데리고 나오지 못할걸 아직도 후회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기억속에 ˝동호˝는 여전히 어린아이다, 그시절 그대로. 어머니의 시간은 여전히 1980년 5월 광주에 멈춰있다.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끝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192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에필로그는 작가님이 이 책을 쓴 계기와 다짐이 실려있는 장이다. 난 여지껏 이렇게 비장한 에필로그는 본적이 없다. 1980년 1윌 작가님은 서울로 이사오고, 이후 친척들로 부터 5월 광주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르 듣게 되며, 우연히 당시의 참상이 담긴 사진집을 보게 된다. 이후 작가님은 5월 광주의 흔적을 찾아간다. 그리고 ˝동호˝의 이야기를, 5월 광주의참상을 쓰겠다는 다짐을 한다.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서아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씨주세요.] P.221
그 날 이후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은 다 다르지만 그들이 겪은 아픔은 모두 이어진다. 과거 그들이 겪은 아픔은 한강 작가님의 펜을 통해 현재 우리의 아픔으로 이어진다. 이런게 문학의 힘이자 역할이라 본다. 역사는 단절될 수 없는 것이다.과거는 단지 과거가 아니다. 우리는 역사를,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P.95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참상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책의 뒷면에서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 이라고. 격하게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