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사는것 자체가 모순이다. 처음부터 다 모순이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 P9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量感)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 P15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 P21

그랬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삶에 대해 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 P22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표현으로 길게 하는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말이었다. 그런 말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 P51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부득불 해가면서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 P75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 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 P127

나는 몹시 궁금했다. 그가 나영규이든 김장우이든 아니면 전혀다른 사람이든 간에, 이 사람과 결혼하고야 말겠어, 라는 결심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지금 결혼하여 살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 P164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 고 있는 것일까. - P173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 P188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있다.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무엇, 부딪쳐 깨지더라서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장렬한 무엇. 그 무엇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힘이 사랑이라면,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의 손을 잡았다. - P195

나는 그날 아침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어머니를 사랑했으므로 나와 진모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또한 절대적이었을 것임을.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 P206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 다면 죽는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 P218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누추한 현실을 보일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일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다. - P219

한 번 더 강조하는 말이지만 이모부는 심심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돌출을 못견뎌하고 파격을 혐오 한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한다는 근거가 어디 있는가. 어쩌면 나는 이모의 넘쳐나는 낭만에의 동경을 은근히 비난하는 쪽을 더 쉽게 선택하는 부류의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이모부 같은 사람을 비난 하는 것보다는 이모의 낭만성을 나무라는 것이 내게는 훨씬 쉽다. 그러나 내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낭만성 에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이란 존재의 한없는 모순… - P232

그러나 나는 그런 김장우의 얼굴에서 문득 아버지의 얼굴을 읽었다.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한 법이었다. 너무 특별한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 다른 길로 달아나버린 내 아버지처럼. 김장우에게도 알지 못하는 생의 다른 길이 운명적으로 예비되어 있 을지 몰랐다. 지금은 아무도 알지못하지만,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사랑조차도 넘쳐버리면 차라리 모자란 것보다 못한 일인 것을. - P277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P296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23-12-26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양귀자의 모순이네요!! 이거 군생활하면서 하얀색 하드커버로 읽었던 게 엇그제 같은데..ㅎㅎ
판을 몇 번 갈았는지 몰루겠을 정도로 표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 판본이 가장 세련됐네요. 이제 하두 오래되어서 내용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지만..
당시 짚에서 엄청 집중해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만큼은 생생합니다.
우리나라 소설가 중 양귀자만큼 재밌게 글을 쓰는 작가도 드물긴 합니다~~

새파랑 2023-12-26 11:15   좋아요 2 | URL
역시 yamoo님은 군대서 읽으셨군요! 전 좋다고 해서 읽었는데 역시 좋았습니다~!! 진짜 재미있게 글을 잘 쓰시는거 같아요 ^^

페크pek0501 2023-12-26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예전에 읽은 책 모순을 여기서 만나네요. 제가 읽을 당시 양귀자 님이 인기 작가였어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도 읽었답니다. 제목이 생각 안 나 검색해서 알았어요. 하하~~

새파랑 2023-12-30 10:54   좋아요 1 | URL
예전에 읽으셨군요~! 전 친구가 좋다고 해서 읽어봤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2023-12-29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30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3-12-30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우 예전에 읽고 그 제대로 된 맛을 못느꼈던 소설인데 이제 다시 읽으면 저도 새파랑님처럼 [모순] ˝좋다˝라고 다시 리뷰 쓰게 될지 ^^


그런 책이 한두권이 아닐 것 같아서 문제지만요!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면 재발견하는 책들, 요즘 고전을 다시 읽는데 놀라고 있어요. [빨강머리 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데미안] [프랑켄 슈타인]....초딩 중딩 때 읽었던 책들을 어른 되어 읽으니 놀라워요^^

새파랑 2023-12-31 11:14   좋아요 0 | URL
역시 책도 자신에게 맞는 시기가 있는거 같아요 ㅋ 고전도 한번 보다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어야 더 와닿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괜히 고전, 명작이 아닌것 같습니다~!!!

희선 2023-12-31 0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2023년 마지막 날이에요 한해 마지막 날이라니... 마지막 날은 보내겠지만, 새해가 와도 그렇게 좋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래도 새해니 기분은 새롭게...

새파랑 님 2023년 마지막 날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새파랑 2023-12-31 11:16   좋아요 0 | URL
매년 새해가 오면 반성하고 내년을 기약해보는데...

이것도 매년 반복인거 같습니다. 후회하고 다짐하고, 후회하고 다짐하고 ㅋㅋㅋ

희선님도 마지막날 마무리 잘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서니데이 2023-12-31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귀자 작가의 모순은 아마 오래전 출간된 책인데 최근에 다시 출간된 책도 읽는 분이 많으신 모양이네요. 이전에 나온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재출간 되지 않으면 다시 만나기 어려운데 새로 출간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새파랑님,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파랑 2024-01-01 10:5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모순> 최근작처럼 세련된 느낌이 들더라구요~!!
서니데이님 2024년에도 즐겁고 행복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