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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테라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평점 :
N23074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고 '파스칼 키냐르' 읽을만 하네! 하고 다음으로 집어든게 <로마의 테라스>인데, 아이고야...거의 <릴케 단편선> 급이었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 사랑때문에 얼굴에 화상을 입고 떠돌이 인생을 살아야 했던 판화가 '옴므'의 일생을 다룬 작품인데, ('키냐르'의 작품들이 이런 예술가의 일생을 다른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그녀가 아닌 어떤 여인에게서도 나는 더이상 아무런 기쁨도 느낄 수 없었지. 내게 간절한 것은 그런 기쁨이 아니라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야. 내가 평생을 바쳐 오직 하나의 육체, 내가 늘 꿈꾸던 포옹의 자세를 취한 육체만을 그렸던 건 그때문일세.] P.8
일단 형식이 정말 독특하다. 4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장은 짧고, 어떤 장은 길다. 그리고 장과 장이 연결되는건 아니고, 장별로도 느낌이 다 다르다. 시간순으로 배열된 것도 아니고, 의식의 흐름도 아니다. 해설을 보니 이 책을 47개의 판화작품들이 모인 작품이라고 한다.
[“사람은 늙어갈 수록, 자신이 통과하는 풍경의 광채에서 몸을 빼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네. 바람과 세월에 닳고, 피로와 기쁨에 탄력 잃은 살갗, 갖가지 체모, 눈물, 땀방울, 손톱과 머리카락. 이런 것들이 마치 낙엽이나 죽은 나뭇가지처럼 땅에 떨어져, 두툼한 살갗 외부로 점점 더 빈번히 빠져나가는 영혼을 흩어지게 하지. 마지막 떠남은 사실상 흩어짐에 불 과해. 늙어갈수록 나는 내가 도처에 있음을 느끼네. 이제 내 육체 속에는 내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 두렵네. 내 살갗이 지나치게 얇아졌고, 구멍이 더 많이 생겼다고 느끼지. 난 혼자 중얼거리네. '언젠가 풍경이 나를 통과하겠지.”] P.83
그래서 재독하면서 47개의 각 장들이 47개의 판화 작품에 대한 묘사라고 이해하고 다시 읽으니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역시 이런 어려운 책은 해설을 먼저 읽는게 현명한것 같다. 해설을 보니 어느정도 이해를 했다.(그래봤자 10퍼센트 정도 이해했으려나...)
[그녀들의 커다란 존 재는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그 그림자도 점점 진해지 지, 상실된 것은 언제나 옳은 거야. 나는 사랑을 더러운 속임수라고 부르겠어.] P.138
이 책을 처음 읽었을때는 별 넷이었는데, 재독하고 나서는 별 다섯이었다. 무조건 두번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몸므'가 동판에 예술을 새겼다면, 작가인 '키냐르'는 종이에 예술을 새겼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