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 악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64
블라디미르 갈락티오노비치 코롤렌코 지음, 오원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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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32

"다시 꿈을 꿨어요. 요즘 꿈을 자주 꾸는데...…… 아무것도 기억할수 없어요...."


<맹인악사>는 러시아 문학에서 인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언론인, 사회비평가, 사회활동가로 활동하며 당대 작가들은 물론 후대에 이르기까지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블라디미르 코롤렌코의 네편의 중단편을 모은 작품이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지만 코롤렌코는 처음 들어본 작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닌걸로 생각되어진다. 아님 나만 모르는걸까? 이 책에 실린 네 작품 모두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작품은 표제작인 <맹인악사> 였다.




<맹인악사>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표트르는, 불행을 안고 태어났음에도 어머니의 보살핌과 삼촌인 막심의 계략(?)에 의해 안정적으로 살아간다. 볼수는 없지만 청각을 통해 세상과 자연을 알아가고, 누구보다도 섬세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게 된다.

[아마도 산모는 헤어날 길 없는 무거운 슬픔이 갓난아이와 함께 세상에 나타나 바로 무덤까지 새 생명을 따라다니려요람 위에 걸려 있다고 직감하는 듯했다. 어쩌면 이것은 완전히 허튼소리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어린아이는 눈이 먼 채로 태어났다.] P.176



그리고 에벨리나라는 또래의 소녀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된다. 그녀는 표트르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고, 그의 심리를 안정적으로 해주고 감성에 섬세함을 불어넣는다.

[전체적으로 이 우정은 행운의 진정한 선물이었다. 이제 소년은 더이상 완전한 고립을 추구하지 않았고, 어른들의 사랑이 그에게 줄 수없는 소통을 발견했으며, 가끔 그에게 찾아드는 예민한 정신적 평온의 순간에도 소녀가 곁에 있는 것이 기분 좋았다.] P.242



하지만 표트르는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이에 따른 자신의 불행을 직면하게 된다. 남과 너무나 다른 그의 처지를 한탄하게 되고, 다른 맹인들처럼 일반사람들과 관계를 끈고 살아가길 바라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운명은 어두운 구름처럼 몰려왔다. 해가 지날수록 소년의 천성적 활기는 썰물처럼 어렴풋하게 점차 사라졌지만, 영혼 속에서 끝없이 울리는 슬픈 기운은 소년의 기질로 드러나며 점점 강해졌다. 어린시절에 특별히 명확한 새로운 인상을 받을 때마다 들을 수 있었던 웃음소리는 이제는 점점 드물어졌다.] P.251



그래도 표트르에게는 그를 아끼는 가족과 연인이 있었고, 낙오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결국 연인과 결혼하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 아이가 맹인일거라는 걱정과는 달리 앞을 볼 수 있는 아이라는걸 알고 새로운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맹인은 절대 볼 수 없는 빛을 보게 된다. 기적이라도 일어난 걸까?

[그가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보았으며, 정말로 본 것인지 등에 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을 해도, 그는 하늘과 땅, 어머니, 아내 그리고 막심 삼촌을 보았다고 확신하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P.344



몇년 후 표트르는 수많은 청중 앞에서 행복을 주고 슬픔을 상기시킬 수 있근 맹인악사가 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뜬다. 그렇다, 새가 날기 위해 태어나듯이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다. 불행은 일시적일 뿐이었다.

[그래, 그는 눈을 떴어. 어둡고 괴로운 이기적 고통의 자리에'그는 이제 삶의 지각을 가져왔고, 인간적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눈을떴고, 이제 행복한 사람들에게 불행한 사람들을 상기시킬 수 있어.] P.350






태어날때부터 눈으로 세상을 못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난 그동안 맹인이 꿈을 못꾼다는 사실을 몰랐었는데,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맹인은 눈으로 세상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꿈조차 꿀 수 없다는 것을. 심지어 빛이라는 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을.


단 한번이라도 사랑하는 모습을 봤었더라면 꿈에서라도 만날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하는 맹인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예전에 스티비 원더가 단 한번만이라도 딸의 모습을 보고싶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맹인에 대해 안타깝지만 동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볼수는 없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섬세하며, 뛰어난 청각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들 역시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단지 일반인들과 다를 뿐, 불행하다고 단정하면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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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14 1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각이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극복한 케이스라고 보면 되겠네요. 저도 덕분에 러시아 작가 한 분 더 알아갑니다*^^*

새파랑 2022-11-14 16:13   좋아요 1 | URL
교훈성이 강하고 좀 늘어지는 전개라서 약간 아쉬운감이 있습니다만 좋았습니다 ㅋ

바람돌이 2022-11-14 1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듣는 작가입니다. 대산문학은 진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내네요. 이런 뚝심있는 시리즈를 내는 출판사 응원하고싶습니다. ^^ 요즘 유튜브로 러시아문학 소개를 보고 있는데 아 진짜 러시아 문학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읽어보고싶단 생각을 많이하게 하더라구요. ^^

새파랑 2022-11-14 17:30   좋아요 1 | URL
러시아 하면 도스토에프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아니겠습니까? ㅋ 저도 러시아는 이분들빼곤 별로 안읽어본거 같아요 ㅎㅎ

mini74 2022-11-14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듣는 작가에요. 꿈조차 꿀 수 없다니...넘 슬픕니다.

새파랑 2022-11-14 17:32   좋아요 0 | URL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거 같아요 ㅜㅜ 꿈을 꿨는데 어둠밖에 안보인다면 어떨지 상상이 안됩니다~~

페넬로페 2022-11-14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들어보는 러시아 작가예요.
본 것이 없으면 꿈도 꿀 수 없군요.
책을 통해 늘 새로운 사실을 배우네요.
내용이 슬프면서도 감동적일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2-11-14 17:32   좋아요 1 | URL
제가 감동적인건 별로 안좋아하지만 요책은 괘않았습니다 ^^

희선 2022-11-16 0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각장애인이라고 해도 다 다르기도 하더군요 아주 안 보이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빛이나 색이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잘 안 보이면 사는 게 쉽지 않겠지요 세상은 눈이 보이는 사람을 생각하고 만드는 게 많으니...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닐 거예요 다른 걸로 보고 느끼겠지요 눈이 보이는 사람은 못 보는 걸 느낄 듯합니다


희선

새파랑 2022-11-16 10:20   좋아요 0 | URL
아 다 다르군요. 전 이 책 읽고 맹인의 심정을 약간이나마 알게되어서 좋았습니다. 눈이 보이는 사람보다 더 많은걸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