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어쨌든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

˝설사 내가 돌아가야 할 곳에 아무것도 없어도? 누구 한 사람 내가 거기에 있기를 원하지 않아도요?˝

˝그렇지 않아˝ 하고 그녀는 말한다. ˝내가 그러기를 원하고 있어. 다무라 군이 거기 있기를 내가 원해.˝




한번만 읽어도 되겠다는 책이 있고, 반면에 재독하고 싶은 책이 있다. 어떤 특성 때문에 재독하고 싶은 책으로 느껴지는걸까? 재미? 감동? 교훈?


내가 재독하고 싶은 책들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1.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몇일동안 여운이 남는 책
2.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 책

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 내 기준으로 1번의 대표적인 작가가 나쓰메 소세키, 윌리엄 트레버, 로맹 가리라면, 2번의 대표적인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하루키의 소설은 일단 재미가 있고  흥미진진 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다 읽고 나서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거다. 어떻게 생각하면 상당히 불친절하게 보일수도 있는건데,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이해를 할 수 없는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부분 때문에 하루키의 소설은 재독을 해도 여전히 흥미롭고, 그전에는 안보였던 부분이 보인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잘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만.˝]  P.190

[˝말로 설명해 보았자 그곳에 있는 것을 올바로 전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을 못 한다는 것 아닌가?˝]  P.505(하권)





<해변의 카프카>는 15살의 소년인 ‘다무라 카프카‘가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를 극복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성장이야기이다. 그 저주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으로, ‘너는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누이와 잔다‘는 것이다.(오이디푸스의 왕의 오마쥬? )


다무라가 5살때 어머니는 누이만을 데리고 가출했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와 누이의 얼굴을 모른다. 그리고 무작정 가출을 해서 어머니와 누이를 찾아나선다.


결국 많은 우연과 주변사람들의 도움, 메타포와 메타포를 통해 다무라는 본인에게 주어진 저주를 극복하고 자유와 삶의 의미를 찾는다.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살의 소년이 된다.

[그리고 그 모래폭풍이 그쳤을 때, 어떻게 자기가 무사히 빠져나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너는 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아니, 정말로 모래폭풍이 사라져버렸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게 되어 있어, 그러나 이것 한가지만은 확실해. 그 폭풍을 빠져나온 너는 폭풍 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네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그래, 그것이 바로 모래폭풍의 의미인 거야.]  P.19

[˝나를 기억해 주는 것. 다무라 군만 나를 기억해 준다면, 다른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잊어도 괜찮아.˝ ]  P.378(하권)




언뜻 보면 단순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절대로 단순하지가 않으며, 너무 많은 메타포로 가득하다.



인물들도 모두 개성이 넘친다. 다프라의 현실세계의 아버지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메타포로서 조니워커가 등장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위스키인 조니워커의 모델이 바로 아버지인데, 조니워커는 고양이들을 납치해서 심장을 꺼내 잡아먹는 의문의 인물이다. 그리고 세상을 전복하기 위한 거대한 피리를 만든다.(?) 하지만 나카타라는 노인을 통해 스스로 죽는다.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 하고 조니 워커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규칙일세.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 눈을 감아도 사태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으니까. 눈을 감았다고 해서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아니, 오히려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사태는 더 악화되어 있을 거라네.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는 걸세, 나카타씨, 눈을 똑바로 떠야 하네. 눈을 감는 것은 약자가 하는 짓이야.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비겁한 자가 하는 짓이란 말일세. 자네가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있단 말이야, 똑딱똑딱하고.˝]  P.263





어머니도 대단히 특이하다. <해변의 카프카>에서 가장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 다무라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에키‘ 인데, 그녀는 고무라 도서관의 관장이고, 다무라는 우연히 그곳을 방문하여 그녀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가설을 세운다. 하지만 진짜 어머니가 맞을까?

[그녀는 나에게 무척 강하고,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인상을 준다. 이 사람이 내 어머니라면 좋을 텐데,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아름다운 혹은 느낌이 좋은 중년 여성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사람이 내 어머니라면 좋을 텐데, 하고,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사에키 씨가 실제로 내 어머니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론적으로 말한다면 조금은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나는 어머니의 얼굴, 이름조차 모르니까.]  P.56




사에키는 20대 초반에 사랑했던 연인을 사고로 잃었었다. 그 충격으로 그녀는 고향을 떠나서 방랑하다가 25년이 흐른 후에서야 고향으로 돌아와서 고무라 도서관의 관장이 된다. 다무라는 사에키가 고향을 떠났던 시기에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누이와 자신을 낳았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이 역시 가설일뿐이다. 과연 그녀는 생물학적인 어머니가 맞을까? 아니면 메타포로서의 어머니인걸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에키 씨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를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열다섯 살 때의 당신을 사랑한 겁니다. 아주 깊이, 그리고 그녀를 통해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 소녀는 지금도 당신 안에 있습니다. 언제나 당신 안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잠들면 그녀는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보입니다.˝]  P.116(하권)




다무라가 누이라고 추정하는 ‘사쿠라‘ 역시 실제 누이인지는 불확실하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사쿠라가 그의 누이일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그는 그녀가 자신의 누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날 밤 꿈속에서 그녀와 자게 된다. 저주의 실현인걸까? 아니면 저주의 강박인걸까?

[너는 상상력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꿈을 두려워한다. 꿈속에서 짊어지기 시작할 책임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잠을 자지 않을 수는 없고, 잠을 자면 꿈이 찾아온다. 깨어 있을 때의 상상력은 어떻게든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꿈을 막을 수는 없다.]  P.246




다무라의 가족(추정 포함)  외에도 더 특이한 사람이 한명 더 등장하는데 나카타라고 불리는 노인이다. 어린시절 큰 사건을 통해 나카타는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글을 못읽게 되며, 그림자의 절반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그 대신 그는 고양이와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과 하늘에서 정어리와 거머리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과연 나카타라는 노인은 이야기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나카타는 그것을 어렸을 때 겪은 전쟁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나카타가 그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나카타는 잘 모릅니다. 어쨌든 그로부터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이제 서서히 여기를 떠나야만 합니다.˝]  P.285(하권)



이 모든게 특이하고, 혼란스러우며, 불확실하다. 하지만 대단히 자연스럽고 억지스럽지 않다. 오히려 너무 특이해서 흥미를 유발한다.






이 책의 구성도 특이하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1Q84> 처럼 두 개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데, 하나의 이야기는 다무라 카프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또하나의 이야기는 나카타라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다무라 카프카와 나카타는 작품속에서 단 한번도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뒤로갈수록 두 이야기는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이어지면서 하나가 된다.

[˝잠을 자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너는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되어 있을 거야.˝ 이윽고 너는 잠이 든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너는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되어 있다.]  P.420(하권)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왠지 심정적으로 공감이 가는 인물들의 행동과 궁금증, 그 특유의 공허한 여운 때문에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고 언제나 다시 읽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을 가장 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해변의 카프카> 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살 소년의 여행기는 곧 나의 여행기였다.




Ps.  합본이든 어떤 형태로든 리커버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누구나 사랑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결여된 일부를 찾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다소의 차이는있을망정 언제나 애절한 마음이 되는 거야. 아주 먼 옛날에 잃어버린 그리운 방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지.˝]  P.122(하권)


[˝요컨대 사랑을 한다는 건 그런 거야, 다무라 카프카 군. 숨이 멎을 만큼 황홀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네 몫이고, 깊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것도 네몫이지. 넌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그것을 견뎌야만 해.˝]  P.216(하권)


[˝왜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것이, 그 누군가를 깊이 상처 입히는 것과 같아야 하는지를 말이야. 즉 만일 그렇다면,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거냐구?˝]  P.303(하권)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하고 나는 다른 질문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눈을 살짝 감는다. ˝기억이란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될 수 도 있지.˝]  P.372(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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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11 2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냥 문득...

작가가 한 작품을 통해 전하
려는 메시지를 다 알려면
어떡해야 하나 싶다는 생각이
쫌 들었습니다.

이제는 작고한 스탠리 큐브릭
은 영화에 무엇 하나 그냥 배
치하는 법이 없었다고 하던데
말이죠.

전 그냥 모르면 모르는 대로
넘어가는 무식자의 독서를
하고 있답니다. 그러다 나중에
문득 득도의 순간이 오기도 하
지요.

새파랑 2022-11-11 22:57   좋아요 2 | URL
저도 일단 막 읽습니다 ㅋ 그리고 해설을 읽고 아 저런 의미였어 하는 경우가 대다수인거 같아요 ㅋ

하루키의 이 작품도 뭔가 의미가 있고 의도가 있는거 같은데 확실히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ㅎㅎ 그래도 재미있습니다~!!

서니데이 2022-11-11 2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번에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여진 책도 좋은데,
가끔은 읽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잘 모르는 소설도 좋긴 해요.
그냥 재미있는 책이나,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잘읽었습니다. 새파랑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2-11-11 23:00   좋아요 2 | URL
책도 정말 여러 종류가 있는거 같아요. 그래도 가장 좋은 책은 다 읽고나서 나중에 또 읽어야지 라는 생각이 드는 책인거 같아요.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페넬로페 2022-11-12 16: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율리시스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와 생각을 안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걸 실감합니다.
제 느낌으로 그냥 알 수 있는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시간나면 이 소설도 꼭 읽어야겠어요, 불끈💪💪

새파랑 2022-11-13 08:07   좋아요 2 | URL
와우 페넬로페님 율리시스 읽으시나요? 역시 👍
저도 따라 읽고 싶은데 자신이 없습니다 ㅋ

저도 그냥 제 느낌대로 ^^

바람돌이 2022-11-12 21: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가지고는 있는데 아직도 안 읽었습니다. 리커버판 나와야 한다는거에 찬성입니다. 표지 너무 구려요. ㅎㅎ 하루키 소설에서 저는 항상 자의식 과잉의 작가가 보이던데 그게 참 적응이 안되더라구요. 저도 언젠가는 하루키 소설의 재미를 알게 될 날이 올까요? ^^;;

새파랑 2022-11-13 08:10   좋아요 1 | URL
이 책도 자의식 과잉 맞습니다 ㅋ 그럼 아마 이 책도 적응이 안되실거 같아요. 뭐 모든 작가의 작품이 맞을수는 없으니까요? 표지 약간 구리다는데에 동감합니다 ㅜㅜ

mini74 2022-11-14 16: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키책은 현대인의 신화같단 생각 가끔 들어요.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무언가가 세상의 끝에서 혹은 낯선 곳이나 우물, 일각수 양 사나이 등으로 돌아오는...ㅎㅎㅎ 하루키 좋아하시는 새파랑님이니까 그냥 저만의 생각을 적어봅니다. 표지는 정말 구리다에 찬성......

새파랑 2022-11-14 17:36   좋아요 0 | URL
제가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안좋아라 하는데 하루키는 예외입니다 ㅋ 너무 좋아요~!!

이 책에서는 특히 호시노 청년이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