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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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88

˝미안해요…… 하지만, 정말 여기서 나간 사람은 아직 없어요………˝


인생이라는 집은 어쩌면 모래위에 쌓은 성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쌓아도 쌓아도 옆으로만 퍼지지 높아지기는 쉽지 않고, 운좋게 높게 쌓았더라도 한순간이면 무너져버리니 말이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어딘가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삶. 아베코보의 <모래의 여자>는 모래성 같은 인생을 표현한 작품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주인공인 ˝니키 준페이˝는 학교 선생님이자 희귀 곤충을 수집하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어느날 그는 휴가를 내고 희귀곤충을 수집하기 위해 어느 해안가의 사막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현지인들의 권유에 의해 깊은 모래 웅덩이 아래에 있는 집에서 하룻밤 묶게 되는데 그 집에는 한 여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응?) 게다가 그 집은 너무 깊은 곳에 있어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어딘가 이상한 집, 이상한 주민들, 가장 이상한건 모래의 여자.



하룻밤만 자고 가려했는데, 맙소사, 사다리가 없는거다. 누가 치운걸까? ˝준페이˝는 뭐 까짓거 걸어 올라가면 되지 하고 올라가려고 하는데 너무 가파른 모래 언덕을 올라갈 수 없었다. 오르려고 노력할 수록 발은 모래에 빠지고, 모래를 퍼낼수록 오히려 점점 쌓이기만 할 뿐이었다. 도대체 왜 나를 이런 사막 깊은곳에 나를 가둔걸까?

[미친 듯 소리를 지른다. 뭐라 말하면 좋을지 몰라,의미도 없는 말을 내뱉는다. 그저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른다. 그렇게 하면 이 악몽이 놀라서 눈을 번쩍 뜨고 뜻하지 않은 실수에 벌벌 떨면서 그를 모래 구멍 속에서 꺼내줄지도 모른다는 듯이. 그러나 튀어나온 목소리는 가냘프고 맥이 없었다. 게다가 도중에 모래에 빨려들고 바람에 흩날려, 어디에 닿을지 허망하기만 하다.] P.53



이후 ˝준페이˝와 ˝ 그녀의 이상야릇한 동거가 시작된다. 하루라도 모래를 퍼내지 않으면 집이 모래로 덮여버리기 때문에 그들은 밤새 모래를 퍼내야 했고, 그 모래를 퍼낸 댓가로 마을사람들은 그녀에게 생필품을 제공해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그녀가 답답하기만 하다. 왜 이곳에 남이서 이런 무의미한 일을 하는지, 왜 이곳을 떠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생각이 있었다. 오히려 삶에 대한 더 현실적인 태도일지도 모른다. 벗어난다고, 다른곳으로 간다고 해서 더 나을게 있을까?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면서 왜 이 부락에 눌러붙어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요?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군……… 모래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고! 이런 식으로 모래를 거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오. 어이가 없어서!……………이런 짓은 못하겠어, 못해… 나 참,동정의 여지가 없군!] P.44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빠져나가도 다시 모래늪으로 빠질텐데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거 같은데...그래도 나가야 한다. 시도해 보는게 안하는 것보다는 후회는 남지 않기에. ˝준페이˝는 모래의 여자 몰래 탈출을 시도한다. 남아있는 그녀가 신경쓰이지만, 그녀 스스로 이곳에 있겠다고 선택했으니 어쩔수 없다. 아래를 보지 말자, 돌아보지 말자.

[…………아래를 보면 안 된다, 아래를 보면 안 된다! 등산가든 빌딩 청소부든 텔레비전 송신탑의 전기공이든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든 발전소의 굴뚝 청소부든, 아래에 신경을 쓰면 그때가 바로 파멸의 순간이다.] P.165



과연 ˝준페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납득이 안 갔어……… 어차피 인생이란 거 일일이 납득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모래의 여자>를 읽는 내내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벗어날 수 없는 모래늪에 있다면 그냥 체념하고 살아가는게 답인걸까? 그건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모래의 여자‘가 더 현명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탈출을 꿈꾼다. 다시 떨어질지라도.


책 자체는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는데 좀 많이 암울하다. 우울할때는 이 책 읽기를 피하는걸 추천한다. 대신 기분 좋을때 읽으면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낄거란 생각이 든다. 간만에 읽은 신선한 작품이었다.

˝어떤 생활이든 해답이야 없을 게 뻔하지만………뭐 조금이라도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쪽이 왠지 좋을 듯한 기분이 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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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08 2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새파랑님 밝은 날 읽어야 하는 암울한 책 *^^* 타타르인의 사막을 읽고나서 전 모래의 여자 떠오르더라고요.

새파랑 2022-07-08 22:13   좋아요 2 | URL
아 그러고 보니 <타타르인의 사막>이랑 <모래의 여자>랑 비슷한 느낌이네요.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의 대비도 좀 느껴지고요. 오 역시 미니님. 혹시 천재? ^^ 깜짝 놀랬습니다~!@

청아 2022-07-08 2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부터 흥미 돋는걸요?^^
상징적인 것들이 많이 담겨있을것 같아요. 암울한대신 얇으니까 우울하지 않은날 읽어야겠습니다ㅎㅎ

새파랑 2022-07-08 22:15   좋아요 2 | URL
저 잠깐 카페 갔다가 그자리에서 계속 읽었어요. 한번에 다 읽기가 너무 아쉬워서 200페이지 뒤쪽은 아껴두고 나왔습니다 ㅋ 미미님 좋아하실만한 책입니다 ^^

프레이야 2022-07-09 0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아베 코보 실종 삼부작 중 모래의 여자
제일 재미있었어요. 암울하다기보다 유머러스한 느낌이요. 영화랑 겹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희망적으로 볼 수도 있고요. 그래봤자 신의 손바닥 안에서겠지만. ^^ 아베 코보는 인간의 그런 운명을 실컷 농담하는 것처럼 흥미로웠습니다. 망언을 일삼던 그 아베가 아니라 다행.

새파랑 2022-07-09 10:47   좋아요 1 | URL
요것도 시리즈가 있군요~!! 좀 유머스런 부분이 있긴 있던데 전 좀 우울했어요 ㅋ 찾아보니 오래된 영화도 있더라구요 ㅋ 인상적이던데 ㅎㅎ 저도 아베는 깜짝 놀 랐어요 😅

프레이야 2022-07-09 11:33   좋아요 2 | URL
영화 강추에요. 미학적 에로틱 그렇습니다 ^^ 나머지 둘은 타인의 얼굴, 불타버린 지도. 스릴감 있고 묘한 분위기를 풍겨요.

Yeagene 2022-07-09 1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도 이 책 우울하게 느끼셨군요 ㅎㅎ 저도 그렇게 느껴져서,많은 분들이 상찬하는 작품인데 마냥 좋아만할 수가 없더라구요 ㅎㅎ 작품 자체는 신선하고 의미하는 바도 있었는데요;;;;;

새파랑 2022-07-09 11:32   좋아요 1 | URL
제가 좀 우울한 성향(?)이 있어서 그런거 같아요 ㅋ 이 책 읽고 검색해보니 영화가 있던데 오히려 영화에서 어떻게 그릴지가 더 궁금했습니다 ^^

바람돌이 2022-07-09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설정이 재밌는데요. 말씀하신대로 좀 우울하기도 하겠지만요. 인간이 살아가다보면 저렇게 느닷없이 모래늪같은 곳에 빠질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인간의 심리랄까 뭐 그런게 좀 멋지게 그려졋을듯한 느낌.. 하여튼 그런 느낌이 드네요. 조만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새파랑 2022-07-09 21:54   좋아요 0 | URL
아직 안읽으셨군요. 전 몰랐었는데 나름 인기가 많은 책이더라구요. 정말 특이한 느낌입니다. 일본의 카프카라고 하던데 틀린말은 아닌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2-07-09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의 리뷰를 읽으니 정말 암담하고 막막하네요. 근데 이것이 또 우리네 인생같기도 해요~~
매번 똑같은 것을 되풀이하고 사는 인생들!
우울할 때 말고 정신 좀 말짱할 때 읽겠습니다.
타타르인의 사막도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새파랑 2022-07-09 21:56   좋아요 1 | URL
둘다 좋긴 하지만 전 <모래의 여자> 보다는 <타타르인의 사막>이 더 좋더라구요. 뭔가 반복되는 일상이 좀 힘들긴 하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