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희망이라고는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모르겠어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희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봐요. 다짜고짜 벌떡 일어나 일말의 희망도 없다고 하다니, 그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말이 안 돼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놓고는,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기를 기대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런 일이 대체 어떻게 가능하죠? - P30
미스터리물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실 우여곡절과 반전을수없이 거치고 또 다른 난리법석으로 한참을 끌다가 이르는 결말은 대개 허탈했고, 나쁜 놈이 잡혀서 궁극적으로는 법의 심판을 받거나 파멸되는 대목은 하나같이 그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롭지 않은 부분이다. - P36
내게 괴로웠던 일은 훨씬 늙어버린 그를 보는 것이었다. 잘생긴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일보다 더 힘든 것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사랑했던 사람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일이다. - P38
그는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 위층으로 올라갔고, 열기와 연기에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소방대원이 곧바로 도착했지만 소생시킬 수 없었다. 비명 소리로 말하자면, 부인은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말했고,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불이 났을 당시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 P46
난 로맨스라고 알려진 여성 소설 장르를 좋아한 적이 없지만, 사랑에 빠진 여자들의 이야기에는 마음이 끌린다. 특히 어떤 면에서 관습을 벗어난 사랑이라든지, 특히 힘들고 가망 없는 사랑이라든지, 아예 제정신이 아닌 사랑일 때는 더욱 그렇다. - P82
잘 죽기. 그게 무슨 뜻인지는 다들 알아. 고통 없이, 아니면 적어도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지 않는 것. 침착하게 약간의 품위를 지키며 가는 거지. 깔끔하고 산뜻하게. 하지만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나? 사실 자주 있지 않아. 왜 그럴까? 그게 왜 그렇게 무리한 요구일까? - P89
말하지 않은/말할 수 없는은 그런 면에서 좋은 단어이다. 물론 이야기하거나 서술되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또한 너무 버거워서 말로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하지 않은/말할 수 없는 젊은 시절의 이야기. 말하지 않은/말할 수 없는 고통. - P115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 P122
정말 행복했던 장소로는 절대 돌아가지 말라. 사실 이미 그런 실수를 한 번 한 적이 있고, 그래서 아름답던 처음 기억을 망쳐버렸지. - P127
그리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기다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지금 내게 필요한건, 이 모두를 이해하고 내 편이 되겠다고 약속해줄 사람, 내가 잠든 사이에 약을 변기에 넣고 내려버리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사람이야.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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