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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짐승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9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N22018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오직 사랑 뿐이다."
이제 백살이 되어버린, 아니 아흔살일지도 모르는 나는 애인 "프란츠"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는 언제 나를 떠났던 걸까? 왜 나를 떠났던 걸까? 이제 그때의 기억은 아련하기만 하다. 나에게 남은 가족은 없고, 나는 더이상 누구와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프란츠"만은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왜 나는 좀 더 젊었을 때 죽지 못했던 걸까?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너무나 많은 젊음, 너무나 많은 시작이 있었으므로 끝이란 것은 좀처럼 가늠이 안 되는 것이었고또 아름답게만 생각되었다. 서서히 몰락해가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P.9
돌아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는 일은 이제 익숙하기만 하다. 어쩌면 그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기다림은 익숙하고, 그래서 기다리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기다림이 결코 괴롭지 않다. 어쩌면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깨어나야 하는 꿈. 현실이었다면 그렇게 행복할 수는 없었겠지.
[나는 청춘의 사랑이 없었어. 어쨌든 행복한 사랑은 없었어. 내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나를 좋아했던 사람은 누구도 내가 좋아하지 않았지. 결함이거나 아니면 오만이었겠지. 행복은 닿을 수 없는 것이었어. 닿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거짓 행복이었을 거야.] P.47
독일 여성작가인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사랑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도 무작정 죽을때 까지 옛 연인을 기다리는 내용이다보니, 책의 전반에 펼쳐져 있는 분위기는 무겁기만 하고, 책을 읽으면서 안개 속을 것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특히 이 책의 화자인 "나"는 동독 출신으로 "프란츠" 때문에 가정을 버린 여인이고, 그녀가 사랑했던 "프란츠"는 서독 출신의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며, 그 둘이 만난 시대적 배경은 통일 직후의 베를린인데, 가정 환경과 사회적 배경이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묘한 이질감을 준다. 그래서 책을 읽어갈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결코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예감하게 된다.
[프란츠의 손가락 끝 사이에서 포도알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프란츠가 우리를, 자기와 나를, 꿈이라고 여기고 있는지 현실로서 참아내고 있는 것인지 알아내려고 애쓴다. 꿈이라면 조만간에 어쩔 수 없이 깨어나야 하는 것이고, 그에게 우리가 현실이 라면 우리가 너무도 아름다운 존재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P.96
마지막 반전과 그녀의 최후가 나름 인상적이었던 작품. 페이지는 많지 않지만 결코 빨리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녀의 감정에 공감할수록 페이지를 넘기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사랑이 집착으로 변했을 때 결말은 언제나 비참하기만 하다. 이 책의 제목인 '슬픈 짐승'은 화자인 '나'에게 딱 맞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이 모든걸 말해주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