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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1월
평점 :
˝그러므로 이것은 사랑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증오의 기록에 훨씬 더 가깝다.˝
사랑이란 그런거다. 한번 빠지면 쉽사리 빠져 나올 수 없다. 그렇다고 사랑이 영원한 것도 아니다. 사랑에도 종말은 있다. 그러한 종말은 보통 다른 사랑을 찾음으로써 끝나게 된다. 새로운 사랑은 기존의 사랑을 종말로 이끈다. 하지만 다른 사랑이 끼어들 틈이 없이 상대방을 너무 사랑한다면 사랑은 영원히 유지될까? 이때도 종말을 맞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것.
[그 당시 나는 세라가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겪는다면 내 고통은 줄어들 것이고, 혹시 그녀가 죽기라도 한다면 나는 해방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죽는다면 내가 처한 비루한 상황에서는 누구나 상상할법한 그 모든 것들을 이제 나는 더 이상 상상하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세라가 죽는다면 심지어 가엾고 어리석은 헨리조차도 좋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P.14
이 책의 주인공인 ˝벤드릭스˝는 작가다. 그는 정부관리인 ˝헨리˝의 부인 ˝세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불륜관계가 된다. ˝헨리˝는 부인 ˝세라˝를 사랑하지만 애정표현은 서툴고, 그런 남편에게 ˝세라˝는 답답함을 느낀다. 싫증을 느낀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벤드릭스˝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남편인 ˝헨리˝는 둘의 불륜관계를 예상하지만, 이에 대해 모르는 척 넘어간다. 단지, 그녀와 한 집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녀가 아직은 자신의 부인이라는데 대해서만 만족을 느낀다. ˝세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벤드릭스˝를 사랑하지만 그 때문에 가정을 꺨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밀스러운 열애를 즐긴다. 두 부부의 사랑은 종말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랑의 종말에 이르렀던 것 같아, 우린 달리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 세라는 자네하고는 함께 쇼핑을 하고 요리를 하고 잠이 들 수 있었지만, 나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사랑을 나누는 것뿐이었지.] P.119
하지만 ˝벤드릭스˝는 달랐다. 그는 자신이 승리자 임에도 그녀와 함께 사는 ˝헨리‘를 미워한다, 질투한다, 의심한다, 증오한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더 갈구하고, 불행하다고 느낄수록 사랑에 대한 감정은 절정에 달한다.
[불행의 감정은 행복의 감정보다 훨씬 전달하기 쉽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 같다. 행복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P.83
그러던 어느날 ˝벤드릭스˝와 ˝세라˝는 그의 집에서 함께 밀회를 즐기고 있는데, 그의 집에 폭탄이 떨어지게 된다.(당시는 1944년으로 2차세계대전이 한참인 시절이었다.) 그리고 ˝벤드릭스˝는 파편에 깔리게 된다. 이 모습을 발견한 ˝세라˝는 그가 죽은줄로 오해한다. 그리고 믿지는 않지만 신에게 기도를 한다. 만약 그를 살려만 주신다면 ˝벤드릭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겠다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저버리겠다고 말이다.
[저는 그이를 사랑합니다. 만약 당신께서 그이를 살려만 주신다면 저는 뭐든 다 하겠습니다. 나는 아주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이를 영원히 단념할 테니 제발 살려만 주셔서 그이한테 기회를 한번 주세요.] P.170
기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착각이었을까? 그는 죽지 않고 단지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신께 약속을 한 ˝세라˝는 이를 신경쓰게 된다. 당시 그녀는 카톨릭 신자도 아니었다. 신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녀는 그 약속에 그렇게 얽매이게 되는 걸까? 무엇때문에?
[바로 그때 그가 문간에 나타났다. 살아난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제 그 없이 살아야 하는 고통이 시작되는 것인가. 그러자 그가 다시 문짝 밑에서 가만히 죽은 채로 있다면 좋을 것을,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P.170
이후 둘은 만나지 못하고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흐른다. ˝벤드릭스˝는 어떻게든 그녀에게 연락하려고 하지만 그의 마음이 닿지는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벤드릭스˝는 길에서 ˝헨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세라˝의 안부를 묻는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었을까? 나는 아직도 이렇게 ˝세라˝를 읻지 못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데.
˝벤드릭스˝는 ˝헨리˝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세라˝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것 같다는 것을. ˝벤드릭스˝는 자신을 지목하여 하는 말이 아님을 알게된다. 그리고 ˝벤드릭스˝는 사설탐정을 고용하여 ˝세라˝의 뒷조사를 의뢰한다. 그리고 그는 알 수 없는 제3자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자신을 버리고 간 ˝세라˝를 증오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랑의 종말이 아니었다. 더 그녀를 원하게 된다.
˝벤드릭스˝와 ˝세라˝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세라˝의 새로운 사랑은 누구일까?
[어떤 일이 시작된 지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세라는 죽은 줄 알았던 내 몸을 보았을 때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믿었다. 그녀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이후를 내다보기 시작했으나, 우리가 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P.264
<사랑의 종말>은 사랑에 대한 ˝그레이엄 그린˝의 깊은 통찰을 느낄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신에 대해, 종교에 대해, 이러한 것들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사람을 얼마나 외롭게 하는지도 잘 보여준다. 특히 ˝그레이엄 그린˝의 실제 경험을 소설화한 작품이다보니 흡입력이 상당했고, 그가 느꼈던 사랑의 불안에 대한 감정들이 문장속에서 날카롭게 살아있었다.
사랑이 종말을 맞게되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누구든 행복할 수 없다. 오직 그 사랑을 떠나간 사람만이 행복할 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증오해야 하는 사랑은 도대체 얼마나 외로울까?
˝<사랑의 종말>에서 나는 사랑이 어느 날 갑자기 끝날까 봐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종말을 재촉하고, 그 후로는 그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해 애쓰는 사내를 그렸다. 그러나 그때 내게는 달아나야 할 불행한 사랑이 없었다. 나는사랑 안에서 행복했다.˝ - 그레이엄 그린
PS. 스포일러는 제외하고 리뷰를 썼습니다. 여기 쓰인 줄거리는 아주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