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집요한 묘사는 놀랍기만 하다. 실제 몇번 안만난 알베르틴은 묘사를 통해 몇년은 만난 사이처럼 느껴진다. 정말 읽는 속도는 안나지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여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여인에게 우리 영혼상태를 투사하는 일일 뿐이며, 따라서 중요한 것은 여인의 가치가 아니라 그 상태의 깊이다. 그리고 어느 평범한 소녀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훌륭한 사람과의 대화나, 그 작품에 대해 감탄하며 감상할 때의 기쁨보다 훨씬 더 개인적이고 깊이가 있으며 본질적인 우리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 우리 의식이 닿게 해 준다는 점이다.
(그런거 같다. 그런거 같다.) - P320
그러나 엘스티르의 작품은 자연이 시적인 상태로 있는 드문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엘스티르 옆에 있는 바다 풍경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은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땅과 바다를 비교하면서 그 사이에 놓인 모든 경계를 삭제하는 은유였다. 동일한 캔버스에서 암묵적으로 끈질기게 반복되는 이러한 비교가 화폭에 다양한 형태의 강력한 통일성을 부여했으며, 이 통일성이야말로 바로 그의 그림이 몇몇 애호가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열광의 원인이었는데, 그들 자신도 아직 명확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 묘사는 어떻게 해야 쓸 수 있는건가) - P324
갑자기 거기 그 작은 무리 속에서 자전거 타는 소녀가 나타났는데, 검은 머리에 통통한 뺨까지 폴로 모자를 눌러 쓴 그 소녀는 쾌활하지만 약간은 고집스러운 눈으로 오솔길을 따라 빠르게 걷고 있었다.
(알베르틴의 강렬한 첫 인상..) - P336
나는 엘스티르 부인을 바라보며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그녀의 몸을 하나의 관념, 즉 비물질적인 창조물이자 엘스티르의 초상화라는 관념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게 그런 초상화 중 하나였고, 틀림없이 엘스티르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예술가에게 삶의 요인은 중요하지 않으며 단지 그의 천재성을 드러내 보이는 기회일 뿐이다. - P348
이처럼 사랑하는 이보다는, 우리 자신이 사랑에 더 많이 기여한다. 가장 실제적인 사랑인 경우에도 이것은 진리다. - P359
나의 의무가 그의 의무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라. 그가 의무를 저버리고 싶어 해도 난 내 의무를 해야 하느니. - P393
우정의 표현방식인 대화조차도 피상적인 횡설수설일 뿐 우리에게는 아무 득이 되지 않는다. 한평생 말을 한다 해도 우리가 무한히 반복하는 것은 한순간의 공허일 따름인 반면 예술 창조의 고독한 작업에서 사유의 진행은 깊이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사실 큰 고통이 따르기는 하지만, 이것만이 진실의 목적을 위해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또 우리에게 닫혀 있지 않은 유일한 방향인 것이다.
(우정의 방식인 대화는 이득이 없다. 사유의 진행만이 남는다.)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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