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엔딩 소설Q
김유나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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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인스타그램에서 종종 댓글을 남기고 소통을 하는 분께서 선물로 주신 책이다. 취향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꽤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던 인친님의 선물이기에, 신인 작가의 작품임을 알고 있음에도 적지 않은 기대를 품고 책장을 펼쳤다. 분량이 짧은 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깊게 전해지는 울림에 꽤나 크게 놀랐더랬다.

『내일의 엔딩』은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게 된 딸 ‘자경’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물론 간병인의 처지만으로 나오는 건 아니다. 일적으로도 상당히 바쁜 하루를 보내던 자경은 결국 아버지를 떠나보내게 된다. 아마 작가가 전하고 싶은 주제의식이 바로 이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상실과 애도, 결국은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우리내 삶, 이것을 ‘자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낸 것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나의 친할머니가 뇌경색으로 돌아가셨던 터라, 『내일의 엔딩』에서 그리고 있는 상황들이 조금은 남달리 무겁게 느껴졌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이 하신 말씀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는 우리 가족을 배려하셔서 그렇게 빨리 가신 게다.”

고등학생이었던 당시의 나로서는 이 말이 그리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애당초 ‘배려’라는 말과 ‘죽음’을 같은 문장에 놓을 수 있는 건지도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내 솔직한 마음으로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계시다가,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보게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는 것이 가족을 배려하는 길 아니었던가, 하는 게 어리석은 그때의 내 생각이었다.

『내일의 엔딩』을 읽으며 그런 내 생각이 얼마나 가볍고 얄팍한 것이었는지를 몸서리치듯 깨달았다. 간병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정신적, 신체적으로 힘든 일인지. 사랑하는 내 가족이 아파하는 모습을 낮이든 밤이든 언제나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그런 와중에도 일상을 포기할 수는 없는 현대인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 것인지. 그래서 왜 우리 할머니는 ‘가족들을 배려하셨다’는 말을 들으며 떠나셨는지…. 갑자기 할머니가 무척 보고 싶어진다.

우리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내가 떠나든 혹은 내가 떠나보내든, 결국 이별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결코 피할 수 없고 배제할 수 없는 죽음, 상실, 이별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내일의 엔딩』은 이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다. 상상하기 싫어서, 대면하고 싶지 않아서, 비겁하게 도망치고 있다. 다만, 얼마 전에 읽은 최진영 작가님의 산문집 『어떤 비밀』을 읽으며 조금은 용기가 생겼다. 그 문장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삶을 졸업할 때가 올 것이다. 정말 떠나야 할 때. 그 순간을 느닷없이 맞닥뜨리지만은 않기를. 잠시라도 준비할 수 있기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돌아서서 인사해야지. 안녕, 너구나. 내 소설에는 네가 꽤 많이 등장해. 그만큼 너를 자주 상상했어. 그래서 네가 마냥 두렵지만은 않아. 너를 만나면 오랜 친구처럼 안아주고 싶다고도 생각했지. 이제 진짜 만났네. 내 손을 잡아줄 수 있어?

『어떤 비밀』, 3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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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비밀
최진영 지음 / 난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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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지만, 유달리 나랑은 맞지 않은 작가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최진영 소설가다. 최진영의 유명한 작품들을 여러 차례 도전해보았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 단 한 권도 완독하지 못하였다. 이 말을 본 최진영의 팬들은 내게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대체 왜요? 그 좋은 걸 어째서 읽지 못한 거죠?” 그렇다면 나는 이 질문으로 되묻고 싶다. “그 마음을 어떻게 버티셨어요?”

싫다는 게 아니다.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다만 최진영의 작품 속 인물들이 처해지는 상황이 너무나 어둡고 힘든데, 최진영의 문체가 섬세하면서도 수위가 높은 묘사다보니 나에게 전달되는 감정의 파고(波高)가 견디기 힘들 만큼 거센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어떤 비밀』이라는 산문집을 읽으면서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었고, 이제야 비로소 최진영 작가의 작품을 다시금 펼쳐볼 용기가 난다.

소중한 사람과 오래 연결되려면 나도 같이 애써야 한다는 걸. 누군가를 향한 이유 없는 걸음과 무리 없는 만남이 절대 흔치 않음을 이젠 안다. (51p)

나는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있는지에 주목합니다. 당신의 ‘위치’가 아니라 ‘상태’를 듣고 싶습니다. (83p)

당신은 언제 어떻게 나의 사랑을 체험할까. 나는 영영 그것을 모르고 싶다. 그것만은 상상하거나 짐작하고 싶지 않아. 그러나 당신의 사랑이 다하는 순간은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고 싶다. 주위 사람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도록 두지 않길. 그래도 사랑일 거라는 헛된 착각 속에서 살게 하진 말아줘. (111p)

최진영은 사랑에 진심인 듯하다. 가볍게 하는 말이 아니다. 작가는 사랑 때문에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을 느끼기도 했고, 이렇게까지 비참할 수 있나 싶은 절망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깊게 숙고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마음이 결국은 소설에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최진영에게 소설은 곧 사랑이다. 소설에 대한 고찰은 사랑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한 편의 소설을 쓰고 나면 나는 쓰기 이전과 미세하게 다른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건과 인물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공감하고, 그 세계에 깊이 들어가본 나는 이전과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어요. (…) 나는 쓰면서 배웁니다. 아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은 것을 씁니다.” (130p)

나를 위한 사랑. 내가 필요해서 열심인 사랑.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자 터널이 끝났다. 세상이 열렸다. 이전까지는 상대를 위해 희생한다고, 억지로 맞춰준다고, 상대가 나를 견디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깨진 독에 물 붓기. 사랑을 믿지도 않으면서 갈구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244p)

소설이든 시든 문학에는 필히 작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가치에 대한 천착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일상의 언어로 쓰인 산문은 또다른 매력을 가지는 것 같다. 스스로를 사랑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번 독서에서 최진영 작가의 애절한 사랑을 배웠고, 그래서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산문집 『어떤 비밀』을 읽으며 소설, 곧 ‘사랑’에 대한 최진영의 생각을, 마음을, 사랑을,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소설을 쓰면 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 나는 그 세계로 도망칠 수 있다 현실의 삶에서 처첨하고 비루해질 때, 지루하고 권태로울 때, 힘들고 외로울 때 나는 주문을 외운다. 괜찮아, 나에겐 소설이 있어. 그 주문을 외우면 버틸 수 있다. 하지 못한 말, 할 수 없는 말을 소설에 쓸 수 있다. 그때 내가 좀 아팠어. 서운했어. 사실은 내가 널 사랑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독자들은 내가 소설에 숨겨둔 진심을 ‘숨은그림찾기 고수’처럼 찾아낸다. 그리고 내게 속삭인다. 있잖아,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 있어.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2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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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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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한 통찰과 교훈이 담겨있는 산문을 좋아하는 나지만, 가끔은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긴 글도 궁금해진다. 그렇게 최지은 시인의 『우리의 여름에게』를 읽었다. 시집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 시집에서 대체적으로 가족의 죽음을 다룬 시들이 많다는 후기를 접하였으므로, 궁금하였다. 응축된 시적 언어가 아닌, 보다 편안한 산문의 언어로 적힌 작가의 유년 시절과 그의 생각을 에세이로 읽고 싶었다.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이혼하시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버지께서 집안을 비우셨어야 해서 작가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러므로 작가는 할머니와의 감정적 유대가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결국 돌아가셨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작가가 성인이 된 후에 작가의 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신다. 작가에게 아버지의 죽음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가정 형편은 둘째치고, 온 힘 온 마음을 다 내주었던 할머니와 아버지가 작가를 떠난 것은 너무도 큰 불행일 것이다. 아니, 고작 ‘불행’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이런 비극을 감히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나의 마음 또한 산뜻한 표지와는 다르게 한없이 무거워져만 갔다. 그리고 보통 이런 분위기의 책을 나는 쉬이 완독하지 못한다. 자기연민으로 점철된 글을 정말 싫어하고, 혹 그렇지 않더라도 섬세하게 자신의 마음을 묘사하는 문체가 내게 너무도 비참하게 다가와 그 감정을 감당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완독했다. 작가의 불우하디 불우한 어린 시절과 그로 인해 현재까지도 겪고 있는 공황장애까지, 어둡고 우울한 소재 투성이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기 자신을 절대 동정하지 않는다. 유년 시절을 지내며 그 나름의 추억과 행복을 떠올리고 있었고, 혹 불행했던 시기를 적을 때에도 그저 담담하게 써내려갈 뿐이었다. 그때 그런 시절을 보내왔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좋았다. 나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므로 작가가 부러웠다. 제목 ‘우리의 여름에게’도 아마 이런 맥락에서 지어진 것이 아닐까. 무더위와 장마, 폭우가 동반되는 계절 ‘여름’을 자신의 유년 시절에 빗대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최지은이 그때의 최지은을 바라보는 이야기, 내가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오직 이것 뿐이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그동안.

힘든 내색을 보이면 한겨울에도 함께 차에서 내려 찬바람을 맞고 서 있거나, 진정될 때까지 다른 이야기를 꺼내어 속삭이거나, 가만히 손을 잡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불안이 꼭 치료되어야 할 것은 아니라고, 다정히 눈 맞추며. (37p)

슬픔을 슬픔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지나가면, 슬픔만으로 끝나지 않는 무언가가 오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언가 때문에라도 슬픔은 슬픔으로 두고 싶다. 언제든 슬플 요량으로 이불 끝을 조금 더 끌어당겼다. 날이 밝으면 이 빛을 기억하며 씩씩하게 나가 걷자고 생각하면서. (63p)

지워버리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기억 옆에, 환한 기억을 덧대어보는 것은 꽤 근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성’에 이를 수는 없겠지만 하나씩 덧붙여지는 나만의 순서와 과정을 더듬어본다. (76p)

한번 해보는 거죠. 시작은 매번 어렵지만. 마음껏 기쁘고 기쁘게 돌아오기로. 문득 그렇게 시를 쓰고 싶고요. (118p)

속마음을 털어놓고도 부끄럽거나 후회되지 않을 때가 있다. 몇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다정히 눈을 맞춰준 사람. 커다란 귀가 되어준 사람. (…) 내가 아픈 곳을 말할 때 꼭 고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의 고통을 치유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던 사람.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생각한다. 이거였구나. 내가 되고 싶던 근사한 어른. (166p)

할머니의 노란 달걀찜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없지만 ‘있었던’ 순간만으로도 젖은 것이 마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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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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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학을 하는 그의 좌뇌와 시를 쓰는 그의 우뇌를 질투하지 않는다. 명석하게 진단하고 논증하는 그의 좌뇌를 질투하지 않고, 섬세하게 공감하고 연대하는 그의 우뇌를 질투하지 않는다. 그 두 뇌가 절묘한 균형을 이룬 이 책의 우아한 ‘좌우합작’을, 그래서 ‘삶의 의미’나 ‘영혼의 문제’ 같은 주제로 글을 쓸 때조차 관철되는 두 능력의 아름다운 협주를 질투하지 않는다. 그를 질투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그냥 그를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이 추천사는 내가 이 책을 구입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애당초 사회학자랑 시인 두 직업을 한 사람이 동시에 할 수가 있기는 한 것인가? 그런데 신형철 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심지어 ‘잘’ 하는 것 같다. 현 세태를 ‘명석하게 진단하고 논증’하는 것은 물론, 그에 처한 사람들에게 ‘섬세하게 공감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감수성까지 갖추고 있다니. 읽어보지 않을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더랬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그 안에 담긴 날카로운 통찰력과 부드러운 감성이 동시에 느껴질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아… 신형철 평론가의 말마따나 나는 앞으로 심보선을 그냥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우리는 인격을 침해한 이들로부터 종종 “고의가 아니었다”라는 말을 듣는다. 실제로 법원에서는 ‘고의성 여부’가 죄질을 판단하는 데 주요 준거가 된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고 행해지는 인격 침해야말로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 의도하지 않음은 마음속에 타인의 인격에 대한 존중감이 애초부터 결여되었다는 사실, 타인의 인격을 임의로 처리할 수 있는 대상물로 당연시한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고의가 아니었다”는 실은 “당신의 인격이 그토록 중요한지 몰랐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더 큰 모욕감을 불러일으킨다. (53p)

무한 경쟁의 시대에 매 순간 마주칠 수밖에 없는 선악의 기로에서 둘 중 하나를 무심코 선택하면서 달리고 또 달린다. 결국 악이란 ‘망각을 선택함’이고 지옥이란 거듭된 망각 끝에 다다르는 종착지의 이름이다. 장담컨대 그 종착지인 지옥은 끔찍하기는커녕 너무나 평범한 세계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65p)

‘성공과 스타덤을 향한 자기계발’이라는 이 시대의 거만한 규약은, 독서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나가는 독자와, 창작으로 세계의 비참을 해명하려는 저자 사이의 ‘고매한 협약’(장폴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을 간단히 압도해버렸다. (157p)

사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많은 상실을 겪으며 살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빠른 세태 변화 속에서, 사건들의 범람 속에서 숱한 사물과 사람을 상실하며 사는 이들이 바로 우리다. 그런데도 상실감은 우리의 공통 감각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상실을 상실했다. (…) 모든 것이 눈앞에서 사라졌는데 고개 한번 돌리면 모든 것이 눈앞에 버젓이 있다. 미디어를 접하면서 슬픔과 아픔을 느끼다가도 바로 다음을 클릭하면 그런 감정은 사라진다. (179p)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죽음은 사회적 배제와 무관심이 야기한 사회적 타살임이 명백하다. (…) 사회적 냉대와 고립 때문에 죽음에 이른 망자들의 장례가 너무 잦을 때, 그 같은 죽음의 연쇄를 삶의 연쇄로 바꾸기 위해서는, 슬픔이란 형식을 기어이 행복이란 내용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회적 관심과 행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하다. (224~225p)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진실, 혹은 이미 알려진 과거 속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불편하게 캐묻는 이야기꾼들이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과거에 집착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답할 것이다.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판결이나 사면과 무관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답할 것이다.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안도하는 순간, 망각은 거슬르 수 없는 물리법칙처럼 작동하여 우리가 그토록 싸웠던 무책임과 무자비함을 어느새 승자의 위치에 되돌려놓기 때문이다. (262~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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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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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11기

지금까지의 모든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읽어본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은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수상작들 간에 얼마간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 것 같다. 보통 ‘문학’에서 으레 느껴지곤 하는 감수성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문장 하나 하나가 섬세하고도 예리한 감각으로 쓰여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울림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리고 서사 자체가 가진 힘을 토대로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어 책장을 넘기게 하는 것.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은 대체로 후자, 즉 서사가 가진 매력이 압도적으로 강한 작품들이 많았다.

불행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고 장은 생각한 일이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불행하고, 가장 불행한 사람조차 끊임없이 불행하지만은 않으므로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마침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왔을 때 장은 불행이란 단어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한참이나 모자람을 깨달았다. (11p)

이번에 읽은 『말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의 첫문장으로 단숨에 나를 사로잡더니, 휘몰아치는 전개로 앉은 자리에서 다 읽게 만들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1부에서 주인공 ‘장’에게 닥친 불행을 보여주고, 2부에서는 말뚝들이 들어닥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일들을 그려내며, 3부에서는 그 모든 일의 마무리를 짓는다. 서늘한 현실과 기발한 상상력을 적절히 조합하여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이 작품이 ‘한겨레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문학적 가치가 대단한 것인지는 단 한 번의 독서로는 그리 잘 체감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수록된 서영인 평론가의 글을 읽으며,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더랬다.

『말뚝들』이 전달하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가 바로 이 ‘눈물’이라고 나는 읽었다. 제련소에서 유독 물질에 중독되어 죽은 외국인 노동자, 나흘째 잠을 못 잔 상태로 인도를 덮친 택배 노동자, 그 택배차에 받혀 숨진 아이, 그들이 모두 말뚝들이 되어 나타난 순간 이 죽음이 사회적 죽음이라는 사실은 명백해진다. 그리고 말뚝들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우는 사람들의 눈물 역시 아마도 사회적 슬픔일 것이다. 『말뚝들』은 이 사회적 죽음과 사회적 슬픔을 추적하고 반추하며 기록한다.

나는 요즘 사회가 너무 팍팍해졌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공감이 줄어들고 개인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게 편하면서도 씁쓸하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정보들의 범람과 너무 빠른 세상의 변화가 적잖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특히 쇼츠나 릴스, 거기서 나오는 여러 사건들의 요약을 보며 슬픔을 느끼다가도, 우리의 손짓 한 번에 바로 다음 영상이 재생되며 그런 아픔이 곧바로 사라지지 않던가. 어쩌면 『말뚝들』은 이러한 현 세태에 맞설 수 있도록 공감과 연대를 주창하는 소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회적 죽음’을 단순한 죽음으로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도록 나아가게 하는 것은 ‘사회적 슬픔’일테니 말이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되었던 한 소방관님이 우울증을 앓다 결국 작고(作故)하셨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정말 간곡히 바라며, 더이상 또다른 죽음이 나오지 않기를, 이 또한 너무도 간절히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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