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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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한 통찰과 교훈이 담겨있는 산문을 좋아하는 나지만, 가끔은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긴 글도 궁금해진다. 그렇게 최지은 시인의 『우리의 여름에게』를 읽었다. 시집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 시집에서 대체적으로 가족의 죽음을 다룬 시들이 많다는 후기를 접하였으므로, 궁금하였다. 응축된 시적 언어가 아닌, 보다 편안한 산문의 언어로 적힌 작가의 유년 시절과 그의 생각을 에세이로 읽고 싶었다.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이혼하시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버지께서 집안을 비우셨어야 해서 작가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러므로 작가는 할머니와의 감정적 유대가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결국 돌아가셨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작가가 성인이 된 후에 작가의 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신다. 작가에게 아버지의 죽음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가정 형편은 둘째치고, 온 힘 온 마음을 다 내주었던 할머니와 아버지가 작가를 떠난 것은 너무도 큰 불행일 것이다. 아니, 고작 ‘불행’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이런 비극을 감히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나의 마음 또한 산뜻한 표지와는 다르게 한없이 무거워져만 갔다. 그리고 보통 이런 분위기의 책을 나는 쉬이 완독하지 못한다. 자기연민으로 점철된 글을 정말 싫어하고, 혹 그렇지 않더라도 섬세하게 자신의 마음을 묘사하는 문체가 내게 너무도 비참하게 다가와 그 감정을 감당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완독했다. 작가의 불우하디 불우한 어린 시절과 그로 인해 현재까지도 겪고 있는 공황장애까지, 어둡고 우울한 소재 투성이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기 자신을 절대 동정하지 않는다. 유년 시절을 지내며 그 나름의 추억과 행복을 떠올리고 있었고, 혹 불행했던 시기를 적을 때에도 그저 담담하게 써내려갈 뿐이었다. 그때 그런 시절을 보내왔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좋았다. 나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므로 작가가 부러웠다. 제목 ‘우리의 여름에게’도 아마 이런 맥락에서 지어진 것이 아닐까. 무더위와 장마, 폭우가 동반되는 계절 ‘여름’을 자신의 유년 시절에 빗대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최지은이 그때의 최지은을 바라보는 이야기, 내가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오직 이것 뿐이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그동안.

힘든 내색을 보이면 한겨울에도 함께 차에서 내려 찬바람을 맞고 서 있거나, 진정될 때까지 다른 이야기를 꺼내어 속삭이거나, 가만히 손을 잡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불안이 꼭 치료되어야 할 것은 아니라고, 다정히 눈 맞추며. (37p)

슬픔을 슬픔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지나가면, 슬픔만으로 끝나지 않는 무언가가 오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언가 때문에라도 슬픔은 슬픔으로 두고 싶다. 언제든 슬플 요량으로 이불 끝을 조금 더 끌어당겼다. 날이 밝으면 이 빛을 기억하며 씩씩하게 나가 걷자고 생각하면서. (63p)

지워버리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기억 옆에, 환한 기억을 덧대어보는 것은 꽤 근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성’에 이를 수는 없겠지만 하나씩 덧붙여지는 나만의 순서와 과정을 더듬어본다. (76p)

한번 해보는 거죠. 시작은 매번 어렵지만. 마음껏 기쁘고 기쁘게 돌아오기로. 문득 그렇게 시를 쓰고 싶고요. (118p)

속마음을 털어놓고도 부끄럽거나 후회되지 않을 때가 있다. 몇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다정히 눈을 맞춰준 사람. 커다란 귀가 되어준 사람. (…) 내가 아픈 곳을 말할 때 꼭 고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의 고통을 치유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던 사람.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생각한다. 이거였구나. 내가 되고 싶던 근사한 어른. (166p)

할머니의 노란 달걀찜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없지만 ‘있었던’ 순간만으로도 젖은 것이 마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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