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문어 모자를 다시 쓰다 시-LIM 시인선 2
서호준 지음 / 열림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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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자체를 어렵지 않게 쓰려고 노력하신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읽는 동안 이해가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어요. 굳이 장황하고 와닿지 않는 비유를 곁들여 말하고자 하는 바를 겹겹의 포장지에 쌓아 숨겨두는 듯한 시인이 있잖아요? 근데 서호준 시인님은 아니었습니다. 본인이 느낀 바 그대로를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시적 언어가 가진 매력을 고유히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너무 좋았죠. 이를테면,

‘요즘에는 다녀온 뒤 또 다녀오고 또 다녀온 사람도 많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꼭 전해 달라고 쓴 수기도 유통되어 만만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모험이라는 건 죽음을 옆구리에 끼고 다음 기수에게 전달하는 것이라는 말은 꼭 해야겠다.’(시 「아울베어.예티」 일부)에서는 씁쓸한 사유가 좋았고요,

‘쉽지 않았어. / 너를 욕하는 사람 앞에서 가만히 / 듣고만 있는 게’(시 「그러나 8월에라도」 일부),

‘그러나 어렵사리 껍질을 벗기고 / 끓인 물을 부어도 /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 그런데 좋았다’(시 「불안한 살인마와 너의 식탁은」 일부)를 읽으면서는 서호준 시인만의 사랑이 느껴져 참 애틋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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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피플 존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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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는 순간 제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아… 참 좋다.” 였습니다. 9년 만에 출간된 정이현 작가님의 신작 소설집이었는데요, 긴 시간을 거쳐 나온 책인 만큼 그 안에는 코로나, 딥페이크 범죄, 연애 예능 프로그램 등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전의 우리나라에 어떤 사회적 이슈들이 있었고 지금은 또 어떤 문제점들을 당면하고 있는지를 직시하는 사회적인 소설집이면서도, 그 안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다루는 문학성 또한 놓치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극복하고 넘어서고 미래를 기약하는 건 너무 힘들잖아요. 굳이 안 그러고 싶은 실패도 있으니까. 그냥 실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삶의 일부로 남은 실패. (…)” (26p)

소재가 독특해서 좋았던 「실패담 크루」였습니다. 지금 현재 사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실패’를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이를 어떻게든 통과해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계발서의 저자들 혹은 그런 계열의 유튜브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은 자신이 겪은 어떤 실패담을 들려주지만, 결국 어디까지나 ‘과거’에 해당하고 지금은 그로부터 빠져나온 일화로 귀결되는 듯합니다. 실패라는 게 마치 ‘뗄감’처럼 소비되는 것 같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실패담 크루」는 그런 경향에 반기를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실패란 꼭 극복하고 넘어서야만 하는 건 아니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 실패도 있지 않는가, 하고 말이죠. 그래서인지 위에 적은 저 한 문장이 특히 제게 위로를 주었던 것 같아요.

「이모에 관하여」라는 작품도 인상 깊었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의도치 않게 둘째를 임신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한국인 베이비시터는 신생아가 있는 집에서 일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은 울며 겨자먹기로 조선족 시터를 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쎄-한 기운을 감지하죠.

그녀가 첫날 일터에 맨발로 온 것은 사소한 부주의에 지나지 않았다. 그 한 면을 가지고 사람 전체를 재단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재연은 자꾸자꾸 맨발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는 자신이 스스로도 난처하고 낯설었다. (285p)

그 느낌을 지울 수 없던 주인공은 그녀를 자르기 위해 별짓을 다하는데요. 그냥 대놓고 말하면 될 것을, 극한의 ‘회피형 인간’인 주인공은 눈치 더럽게 없는 남편과 함께 연극을 벌여가며 결국 조선족 시터를 그만두게 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인공의 모습이 기분 나쁘다거나 불쾌했다기보다는, 저의 모습이 비쳐 보였던 것 같아요. 저도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는 ‘피할 수 있을 때까진 피해라’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뭔가… ‘웃픈’ 공감이 많이 되었달까요.

그 외에도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그려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니」에서 그려지는 인회 언니의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집요하게 물어보’고 ‘원하는 걸 꼭 찾아내서 기어코 이뤄내는’(75p) 모습은 저조차도 너무나 멋지고 존경스럽게 보였고요, 「빛의 한가운데」에서 미령이 ‘오늘 아니면 내일 하면 되고, 사는 동안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 그것도 아니면 인연이 아니겠지’(131p)라고 생각하는 모습은 또 저와 비슷하여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완전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입체적인 소설 속 인물들. 그러나 누군가 손을 내밀면 분명히 그 손을 잡을 사람들. 그래서 좋았습니다. 무지성으로 위로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현실 속 사람들의 모습을 소설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감동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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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
김병운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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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취업을 준비하다보면,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적는 자소서 문항을 종종 만납니다. 그때 저는 일말의 고민 없이 ‘김병운’이라는 이름 석 자를 적습니다. 처음에 장편소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를 읽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데요, 이후 소설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로 작가님의 문체와 저라는 사람의 주파수가 잘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를 읽으면서는 확신했어요.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만났을 때 책장을 곧바로 넘기지 못하고 그곳에 오래 머물렀고요, 그런 문장들이 한둘도 아니고 수두룩했거든요. 어찌 이리도 섬세한 필치를 가졌을까, 하며 감탄하기도 했고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앞에서 ‘주파수가 잘 맞는다’는 표현을 썼는데요, 이는 작가님과 제가 비슷한 성격을 가져서, 혹은 그런 유년 시절을 보내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교분」 속 주인공은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이었어요.(170p) 그래서 ‘항상 땅만 보고 걸’으며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려 했고요(164p). 어렸을 적의 제가 딱 그랬습니다. 그때 저는 미움받을 용기를 단 한 움큼도 지니고 있지 않았거든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튀지 않으려 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를 내뱉기보다는 삼키려 했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이 소설을 읽으며 떠올랐어요. 그 시기를 지나온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잘 버텨내서 장하다고 해주고 싶더라고요.

저 뿐만 아니라 작가님께서도 어린 시절의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진심」에서는 주인공이 친구의 조카를 만나면서 어렸을 적 여자 같다고 손가락질 받던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는데요.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기 전의 내 모습이, 좋으면 웃고 싫으면 우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궁금해졌다’고 말하는 주인공이 여간 애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105p) 멋모르는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숨겼을 테니까요. 어떤 마음으로 그 시기를 지나왔을지, 어떤 다짐을 하며 묵묵히 버텨냈을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깊이의 절망이 아득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지금은 그 시기를 돌이켜 볼 수 있을 만큼 괜찮아진 걸까 싶어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김병운 작가님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는,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고발을 던지면서도 사람을 믿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이번 소설집 역시 그런 작가님의 가치관을 담뿍 느낄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특히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속 진무 삼촌의 말은 압권이었습니다. 소설 속 진무 삼촌은 조카에게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꼭 말해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121p) ‘사람’에게 버림받고 부정당하더라도, 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사람’이라 말하는 삼촌의 모습이 너무나 서글프고 뭉클했어요. 저 또한 사람 때문에 힘든 적 많았지만, 이를 극복해내는 건 여행 같은 취미가 아닌 ‘사람’이었으니깐요. 문득 제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는 것만큼 특별한 일이 또 있을까 싶네요.

작가님의 두번째 소설집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는 이전 작품보다 한발 더 나아간 성취를 보입니다. 퀴어한 소재가 대부분이었던 첫 소설집과는 달리, ‘잘못된 사랑’의 서사적 재미를 가진 「봄에는 더 잘해줘」, 그렇게도 미웠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 등 예상을 한껏 빗나가는 훌륭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거든요. 아마 김병운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이번 작품집 역시 놀라운 마음으로 감명깊게 읽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11월에 만난 이 책, 하반기 버프(?)를 받아 아마 ‘올해의 책’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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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프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7
이디스 워튼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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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스타그램 피드로 올릴 사진을 조금 다르게 찍고 있습니다. 전에는 나무 탁자를 배경으로 통일성 있게 찍어 왔지만, 이제는 변화를 조금이라도 주고 싶었어요. (예쁜 사진을 찍어보고 싶은… 뭐 그런… 아주 작은 욕심?) 아무튼 그래서 요즘은 책을 읽고 나서 말하고 싶은 감상이 많다 싶으면 책 사진 스팟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선 프롬』은 찍고 싶은 배경이 딱 있었어요.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나 낙엽 더미 위, 이것이 제격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소설 속 분위기가 정말이지 너무나도 애처롭고 초라했거든요.

보통 『여름』과 함께 묶여 쌍둥이 소설로 불리는 『이선 프롬』인데, 막상 읽어보니 둘의 감상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여름』을 읽을 때 제 마음이 분노로 점철되었다면, 『이선 프롬』은 순수하게 ‘착잡함’만을 느꼈던 것 같아요. 주인공 ‘이선 프롬’의 처량한 말로를 제시하는 소설의 도입부는 물론이고, 이십여 년전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 아내의 사촌 ‘매티’와 불륜을 저지르는 모습을 볼 때도 말이죠. 금지된 사랑을 저지르는 부도덕한 인물들의 행태에도 어쩐지 저는 주인공이 그저 가여울 뿐이었습니다. 왜일까요. 왜 이선 프롬이 안쓰럽기만 했을까요.

물론, 주인공이 맞이할 비극적인 결말이 프롤로그에 이미 나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조금 다른 이유가 더 컸던 것 같아요. 바로 ‘돌봄 노동’의 어려움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소설에서 이선 프롬은 애정 없이 결혼한 아내 ‘지나’의 병수발을 드느라 몸과 마음이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었거든요. 게다가 이디스 워튼의 섬세한 문체가 이선 프롬의 처지를 더욱 애처롭게 부각하다보니 독자로서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이선 프롬에게 매티와의 사랑은 삶을 살게 하는 유일한 이유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정말 말 그대로 ‘빛과 소금’같은 존재랄까요. 막막하고 답답한 병수발 생활에서 유일하게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 그런 사랑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선과 매티 두 사람의 사랑을 마냥 손가락질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 나와 있듯 이 소설의 결말은 배드 엔딩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비참한 최후를 향해 갈수록 저 또한 착잡함의 심연으로 빠져들어가는 듯했어요. 참…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망가트리다니, 작가도 너무한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조금 검색을 해보니,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네요?! 작가 이디스 워튼도 이선 프롬처럼 불우하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마도 자신의 그런 결혼 생활을 소설로써 녹여낸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어쩌면 이디스 워튼에게는 소설이 살고자 하는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쓸쓸하고 처량하고 시리도록 추운 이 계절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선 프롬』이었습니다. 아직 이 소설을 안 읽어본 분이 계시다면,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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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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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 속에서 제 자신을 발견할 때 받는 기쁨과 위로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합니다. 막연하고 흐릿한 저의 삶이 소설가의 문장으로 뚜렷한 형체를 얻게 될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을 느끼면서도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위로까지 얻으니까요. 전에 올린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김병운) 리뷰가 좋았던 것도 그런 맥락 덕분이었는데요, 이번에 읽은 『오직 그녀의 것』 역시 너무 좋았습니다. ‘이거 완전 나잖아?’를 수차례 외쳐댈 만큼 묵직한 감동을 아주 많이 받았거든요.

『오직 그녀의 것』은 편집자 홍석주의 삶을 차분하게 그려냅니다. 그녀는 삶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고 여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었어요(10p). 교사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권유에 따라 사학과에 진학하여 교직 이수 과정을 거치지만, 넓게 퍼져나가던 ‘문학’이라는 관심사에 ‘미미한 구분점이 생겨나고 있음’을 막연하게 깨달은 그녀는 결국 편집자로 일하게 됩니다.(16p) 처음에 그녀는 그저 수동적인 태도만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열정이 ‘사람을 단번에 압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만히 길들이는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집중되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요.(87p) 그렇게 그녀는 작가와 깊은 토론을 나누고, 동료 직원들과 마찰을 빚고, 또 모임에서 만난 인연과 함께 사랑을 키웁니다. 그렇게 그녀는 어엿한 중견 편집자가 되어 출판인 상을 받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오직 그녀의 것』에서는 이렇다 할 사건이랄지 큰 악역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내 삶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선과 악을 겸비한 인물들이 다채롭게 등장하고, 또 그들과 주인공의 관계가 명쾌하게 매듭지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또한 우리의 삶과 굉장히 비슷하죠. 그러나 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것은 곧, 허구의 서사만이 가진 흥미가 부족하여 진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를 그대로 대변하는 듯한 문장도 있었어요. 주인공 석주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었는데요, ‘그것은 닮은 꼴의 하루가 반복되는 진부한 이야기 같았다. 극적인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는 서사. 개성도 매력도 없는 주인공이 완성해나가고 있는 그 스토리는 어떤 독자에게도 특별한 인상을 나기지 못할 것 같았다.’(263p)고 하는 대목이죠.

그러나, 저는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더욱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그대로의 낱낱을 지독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자신의 삶이 소설에서 더욱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죠. 특히 김혜진 작가의 문장이… 말도 안되게 좋습니다. 삶에 대한 담담한 통찰이 더할 나위 없이 적확한 위로를 전달하거든요.

무슨 일이든 모르는 채로 시작하는 법이지요. 일이란 게 원래 그런 겁니다.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홍사원이 만들 수 있는 책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봅니다. (57p)

그해, 석주는 스물여덟 살이었으나 스스로 젊다고 여기지 않았다. 차이와 비교에서 비롯된 갈급함이 석주를 한순간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85p)

자책할 거 없어요. 석주씨 탓이 아니니까. 그냥 각자 감당해야 할 몫이 있는 거죠. 자기를 못살게 구는 거. 그거 안 좋은 겁니다. (256p)

특히 이 소설이 저에게 무척이나 와닿았던 점은 아무래도 ‘편집자’라는 소재 덕분인 것 같습니다. 편집자를 꿈꾸는 저로서는 책을 대하는 석주의 태도에서 배울 점이 너무도 많았거든요. 편집자라는 게 어떤 직업이고 현실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또 어떤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지 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언어가 전부인 원고에 형태와 구조를, 질서와 개성을 부여하는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어떤 기준도 규칙도 없는 그 일은 예측할 수 없었고, 우연적인 동시에 필연적이었다.’(96p)는 문장은 제 마음속에 새겨두고 싶어요. 만약 제가 편집 일을 하며 좌절할 때에는 ‘위로’를, 자만할 때에는 ‘경각심’을 줄 것 같거든요. 『오직 그녀의 것』은 편집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확고히 만드는, 제게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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