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느낌을 지울 수 없던 주인공은 그녀를 자르기 위해 별짓을 다하는데요. 그냥 대놓고 말하면 될 것을, 극한의 ‘회피형 인간’인 주인공은 눈치 더럽게 없는 남편과 함께 연극을 벌여가며 결국 조선족 시터를 그만두게 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인공의 모습이 기분 나쁘다거나 불쾌했다기보다는, 저의 모습이 비쳐 보였던 것 같아요. 저도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는 ‘피할 수 있을 때까진 피해라’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뭔가… ‘웃픈’ 공감이 많이 되었달까요.
그 외에도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그려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니」에서 그려지는 인회 언니의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집요하게 물어보’고 ‘원하는 걸 꼭 찾아내서 기어코 이뤄내는’(75p) 모습은 저조차도 너무나 멋지고 존경스럽게 보였고요, 「빛의 한가운데」에서 미령이 ‘오늘 아니면 내일 하면 되고, 사는 동안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 그것도 아니면 인연이 아니겠지’(131p)라고 생각하는 모습은 또 저와 비슷하여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완전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입체적인 소설 속 인물들. 그러나 누군가 손을 내밀면 분명히 그 손을 잡을 사람들. 그래서 좋았습니다. 무지성으로 위로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현실 속 사람들의 모습을 소설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감동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