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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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 속에서 제 자신을 발견할 때 받는 기쁨과 위로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합니다. 막연하고 흐릿한 저의 삶이 소설가의 문장으로 뚜렷한 형체를 얻게 될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을 느끼면서도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위로까지 얻으니까요. 전에 올린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김병운) 리뷰가 좋았던 것도 그런 맥락 덕분이었는데요, 이번에 읽은 『오직 그녀의 것』 역시 너무 좋았습니다. ‘이거 완전 나잖아?’를 수차례 외쳐댈 만큼 묵직한 감동을 아주 많이 받았거든요.

『오직 그녀의 것』은 편집자 홍석주의 삶을 차분하게 그려냅니다. 그녀는 삶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고 여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었어요(10p). 교사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권유에 따라 사학과에 진학하여 교직 이수 과정을 거치지만, 넓게 퍼져나가던 ‘문학’이라는 관심사에 ‘미미한 구분점이 생겨나고 있음’을 막연하게 깨달은 그녀는 결국 편집자로 일하게 됩니다.(16p) 처음에 그녀는 그저 수동적인 태도만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열정이 ‘사람을 단번에 압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만히 길들이는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집중되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요.(87p) 그렇게 그녀는 작가와 깊은 토론을 나누고, 동료 직원들과 마찰을 빚고, 또 모임에서 만난 인연과 함께 사랑을 키웁니다. 그렇게 그녀는 어엿한 중견 편집자가 되어 출판인 상을 받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오직 그녀의 것』에서는 이렇다 할 사건이랄지 큰 악역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내 삶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선과 악을 겸비한 인물들이 다채롭게 등장하고, 또 그들과 주인공의 관계가 명쾌하게 매듭지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또한 우리의 삶과 굉장히 비슷하죠. 그러나 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것은 곧, 허구의 서사만이 가진 흥미가 부족하여 진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를 그대로 대변하는 듯한 문장도 있었어요. 주인공 석주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었는데요, ‘그것은 닮은 꼴의 하루가 반복되는 진부한 이야기 같았다. 극적인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는 서사. 개성도 매력도 없는 주인공이 완성해나가고 있는 그 스토리는 어떤 독자에게도 특별한 인상을 나기지 못할 것 같았다.’(263p)고 하는 대목이죠.

그러나, 저는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더욱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그대로의 낱낱을 지독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자신의 삶이 소설에서 더욱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죠. 특히 김혜진 작가의 문장이… 말도 안되게 좋습니다. 삶에 대한 담담한 통찰이 더할 나위 없이 적확한 위로를 전달하거든요.

무슨 일이든 모르는 채로 시작하는 법이지요. 일이란 게 원래 그런 겁니다.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홍사원이 만들 수 있는 책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봅니다. (57p)

그해, 석주는 스물여덟 살이었으나 스스로 젊다고 여기지 않았다. 차이와 비교에서 비롯된 갈급함이 석주를 한순간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85p)

자책할 거 없어요. 석주씨 탓이 아니니까. 그냥 각자 감당해야 할 몫이 있는 거죠. 자기를 못살게 구는 거. 그거 안 좋은 겁니다. (256p)

특히 이 소설이 저에게 무척이나 와닿았던 점은 아무래도 ‘편집자’라는 소재 덕분인 것 같습니다. 편집자를 꿈꾸는 저로서는 책을 대하는 석주의 태도에서 배울 점이 너무도 많았거든요. 편집자라는 게 어떤 직업이고 현실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또 어떤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지 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언어가 전부인 원고에 형태와 구조를, 질서와 개성을 부여하는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어떤 기준도 규칙도 없는 그 일은 예측할 수 없었고, 우연적인 동시에 필연적이었다.’(96p)는 문장은 제 마음속에 새겨두고 싶어요. 만약 제가 편집 일을 하며 좌절할 때에는 ‘위로’를, 자만할 때에는 ‘경각심’을 줄 것 같거든요. 『오직 그녀의 것』은 편집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확고히 만드는, 제게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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