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위하여 소설, 잇다 4
김말봉.박솔뫼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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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말봉 작가님은 순수문학만을 인정하던 당시 문학계의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스스로를 대중소설가라고 소개했던, 순수와 통속의 이분법적 잣대로 재단하던 때에 ‘문학은 대중의 것이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던 작가였다고 한다. (캬… 너무 멋져…) 그래서인가, 비슷한 시기에 쓰인 다른 문학 작품들에 비해 이번에 읽은 김말봉의 작품은 훨씬 더 잘 읽히고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순수 문학의 깊이를 잃은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해설에 따르면 연애와 결혼에 관한 통속적인 내용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및 아나키즘 또한 담아냈다고 하는데, 이 책에도 수록된 김말봉의 등단작 <망명녀>를 읽어보면 이 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망명녀>는 기생 신분의 여성이 은인과도 같은 옛 동료의 도움을 받아 기생에서 벗어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주인공은 은혜를 갚기는 커녕 담배나 모르핀 등의 마약에 손을 대며 온갖 걱정을 사더니, 도리어 그 동료의 남자친구를 빼앗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 주인공의 동료와 그 남자친구는 서로 다른 사상으로 인해 언쟁 등의 다툼이 종종 일어나기도 했는데, 주인공은 남자친구가 주장하는 사회주의적 사상에 매료되어 그에게 배움을 받으며 자아를 찾는 동시에 사랑까지 깨달은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주인공의 인성(?)을 욕하며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왜인지 나는 이 시대에 이렇게 주체적인 여성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주인공의 행보가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자극적인 이야기 자체에 깊이 매료되어 책장을 술술 넘긴 것 또한 절대 부정할 수 없다. 이 작품 뿐만 아니라 수록된 다른 작품 <고행>과 <편지> 또한 독자들을 사로잡는 필력으로 쓰인 소설이었다. 근대 시대에 쓰인 ‘페이지터너’ 소설이라니,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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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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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욘 포세의 대표작 <아침 그리고 저녁>이 ‘문학동네 숏클래식 리커버’ 시리즈로 새롭게 출간되어 읽어보았다. 전에 읽었던 욘 포세의 <샤이닝>에 이어서 이번에 읽은 <아침 그리고 저녁>까지 모두 한 인간의 삶과 ‘죽음’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어서 그 아연하고 쓸쓸한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듯하였다.



주인공 ‘요한네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고독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제목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요한네스의 그런 ‘하루’를 다루고 있다. 죽었다고 생각한 ‘페테르’를 만나 낚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페테르의 모습을 보며 요한네스는 어쩐지 오늘만큼은 모든 것이 과거의 어느 때와도 다르다고 느낀다.

그렇다. 죽음이 그에게 닥친 것이었다. 요한네스가 페테르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요한네스를 페테르가 데리러 온 것이었다. 요한네스에게는 장성한 자식들이 있었고, 그를 거의 매일같이 찾아오는 막내딸 ‘싱네’가 있었다. 그렇기에 요한네스는 지금의 삶을 떠나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버티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페테르가 그의 죽음을 알리기 전까지 여러 사색에 잠기고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진 그는, 차분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페테르를 따라가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짧은 분량에 굵직한 서사 하나 없는 평온한 글이다. 주인공 요한네스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한 전개에, 온점(.) 없이 그대로 이어지는 문체까지. 그렇기에 어쩌면 지루하다고나 할까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 또한 분명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한줄평에도 말했듯 나는 그런 전개가 너무도 서글프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자신의 죽음으로 삶을 돌아보는 그 시선이 어찌나 가만하고 고요하게 느껴지던지, 그 아름다움을 음미하여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그 여운에 압도되었던 <아침 그리고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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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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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은 그 서사가 가지고 있는 호흡의 속도와 밀도가 확연히 다르다. 김애란 작가는 이 둘을 두고 단편을 ‘파동’에, 장편을 ‘운동’에 비유했는데 너무도 적절한 설명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만의 시적인 문체와 서사가 더더욱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한강의 장편을 읽기 힘들다고 말하는 후기가 종종 보이는데, 그렇기에 그런 사람들에게는 꼭 한강의 단편집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에 읽은 <여수의 사랑>은 한강 작가님의 ‘첫’ 소설집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어렵고도 설레는 시작이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여수의 사랑>에서도 물씬 풍겼다. 그리고 그 감각에 압도되기도 하였다. 수록된 단편 소설들이 담고 있는 처절한 아픔과 비참한 설움이 너무도 크게 절감되었달까. 한강 작가님의 문체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슬픈 사연에 저절로 과몰입하게 만들어 더더욱 애통한 마음을 들게 하는, 그야말로 단편집의 ‘수작’을 읽는 기분이었다. 분량 제한으로 인하여 수록된 여섯 편의 중단편 중 정말 좋았다고 생각되는 일부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어둠의 사육제]

작품 속 화자(서술자)는 4년을 부은 적금으로 마련한 보증금을 동거인에게 뜯겨 이모 집 베란다에서 얹혀 살게 된다. 벌써부터 심상치 않지 않은가? 그러나 더 심한 우울의 주체가 있다. 바로 그런 화자에게 갑자기 자신의 아파트를 양도하겠다고 말하는 ‘명환’이다. 명환은 교통사고로 임신한 아내를 잃은 남성이다. 그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복수하겠답시고, 자신이 받은 합의금으로 가해자 가족이 사는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하여 그들에게 끊임없이 정신적 고통을 가한다. 그러나 가해자 가족 또한 너무도 선한 사람들이어서 이를 신고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감내하기만 한다. 결국 아무런 효용과 통쾌를 느끼지 못한 명환이 그 아파트를 주인공에게 넘기겠다 한 것인데…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어둡고 우울하고 슬픈 사연들로만 점철될 수가 있나’ 싶다가도 또 그 비통함이 하나의 매력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질주]

이것도 진짜 미쳤…(말잇못) 이 작품은 학교 폭력으로 동생 ‘진규’를 잃은 형 ‘인규’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앞서 언급한 [어둠의 사육제]가 중편 분량이었다면 [질주]는 그의 절반 정도되는 단편 분량의 작품인데, 그럼에도 그 몰입의 정도와 여운의 깊이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가 진규를 찾으며 울부짖는 장면에서는, 그 슬픔의 감정이 폭발하듯 애절한 카타르시스가 분출된다. 원래의 나는 어둡고 슬픈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중 가장 좋았던 작품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아마 <질주>를 말할 것 같다. (물론 수록된 작품들 다 좋아서 뭐 하나 고르기가 무척 힘들테니 고민이 길어질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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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5
황모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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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서포터즈

<언더 더 독>은 태아 유전자 편집 시술이 보편화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해당 시술을 받은 사람을 ‘편집인’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편집인’이라 칭하며, 두 부류의 사람들은 거의 계급 사회마냥 엄격한 차별적 대우를 받게 된다.

비-편집인 중에서도 거액의 빚이 있거나 한층 더 밑바닥인 인간들이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 사육장이었다. 패배자를 언더독이라고 부른다던데 이곳이 이전에 개 사육장이었다는 것을 듣고 보니 비-편집인들을 언더독 이하라고 칭하던 사람들의 비릿한 저의가 체감되었다. 요즘은 개들이 나보다 훨씬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산다. (15p)

소설 속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주인공 ‘한정민’은 개만도 못한 삶, 존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최하의 삶을 보내다 결국 자살로 생을 끊으려 한다. 그 장면을 목격한 편집인인 연구원 ‘노아’가 주인공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건넨다. ‘선생님의 인생을 사겠’다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평안’을 줄 수도 있다며 말이다. 그렇게 주인공은 노아의 제안을 수락하게 되는데, 과연 이는 정말 평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선택이었을까? 한줄평에서 언급했듯, 전혀 그렇지 않았다. 주인공의 선택은 최악의 추락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이 겪는 불행들은 직접 책으로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짧은 분량이기에 내용을 설명하는 순간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덧붙인다. 다만, 이 소설을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주인공이 그렇게 추락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결국은 다시 일어나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또한 완벽한 부활이라 할 수 없겠지만, ‘희망’이란 가장 잔혹하고도 애처로운 성질의 ‘구원’이라는 것을 <언더 더 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가벼운 판형과 두께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무게감을 지닌 주제와 내용의 소설이었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에게 판타지 혹은 SF 색채가 강하면 강할수록 개인적으로는 그 작품에 대한 독서 난이도가 올라간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이번에 핀서포터즈로서 읽어본 <언더 더 독>은 지금의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SF 세계관을 그리고 있는, 정말이지 완벽하게 비현실﹒초현실의 모습을 담고 있는 하드SF소설이었다. 그만큼 이 책을 읽는 내 머릿속은 원래였다면 혼란스럽고 어지러움을 느끼며 어려워 해야하지만, 이 소설을 읽을 때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앉은 자리에서 한숨에 읽을 정도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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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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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역 근처에 있는 서점 '북티크'라는 곳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2주라는 기간 동안 각자 읽은 책 한 권씩을 가져와 그에 대한 내용 요약 및 감상 등을 말한 뒤, 그 작품에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질문거리를 하나씩 뽑아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저번에 읽은 <흰>에 이어서 이번에 읽었던 책은 만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1,2권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재밌게 읽을 수밖에 없다는 후기를 여럿 들은 터라 큰 기대를 품고 읽기 시작하였고, 그 기대에 부응할 정도로 재밌는 독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게다가 독서에 대해 유용한 꿀팁들도 많이 담겨있어서 생각보다 실용적인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하였다. 그런 점을 이번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곳엔 짧게 요약하여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1 - 책을 고르는 법, 저자 소개]

세상에 나온 거의 모든 책에는 책날개에 아마 역자 설명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에 따르면, 이 책날개만을 보더라도 읽으면 안되는 책을 거를 수 있다고 한다. 바로, 난데 없는 감성 글귀로 저자 소개가 채워져있는 경우, 그리고 저자 소개보다 역자 소개가 훨씬 더 길게 적혀있는 경우 등이 그렇다.

[2 - 책을 고르는 법, 목차]

목차에 대한 부분 또한 흥미로우면서도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목차를 보고 해당 책의 내용 구성이 잘 와닿지 않으면 거를 것, 그러나 한눈에 잘 들어와 전반적인 내용 구성이 파악된다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것. 이 말고도 또 있다. 번역서의 경우 출판사의 입맛에 맞게 책의 구성 순서를 제멋대로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해당 번역서와 원서의 목차를 비교﹒대조하여 전혀 다른 순서 및 구성으로 되어있다면, 이 역시 믿고 거르라고 한다.

[3 - 일반인과 독서중독자의 차이, 주석 및 완독]

일반인과 독서중독자 간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바로 독서중독자들은 완독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차를 보고 내가 읽고 싶은 부분만 발췌독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오히려 완독에 집착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와 책과 거리가 멀어지게 될 수도 있다고도 한다.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책의 하단에 쓰인 ‘주석’ 역시 굳이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어차피 작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은 본문에 적혀있을 것이므로, 주석의 이해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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