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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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은 그 서사가 가지고 있는 호흡의 속도와 밀도가 확연히 다르다. 김애란 작가는 이 둘을 두고 단편을 ‘파동’에, 장편을 ‘운동’에 비유했는데 너무도 적절한 설명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만의 시적인 문체와 서사가 더더욱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한강의 장편을 읽기 힘들다고 말하는 후기가 종종 보이는데, 그렇기에 그런 사람들에게는 꼭 한강의 단편집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에 읽은 <여수의 사랑>은 한강 작가님의 ‘첫’ 소설집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어렵고도 설레는 시작이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여수의 사랑>에서도 물씬 풍겼다. 그리고 그 감각에 압도되기도 하였다. 수록된 단편 소설들이 담고 있는 처절한 아픔과 비참한 설움이 너무도 크게 절감되었달까. 한강 작가님의 문체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슬픈 사연에 저절로 과몰입하게 만들어 더더욱 애통한 마음을 들게 하는, 그야말로 단편집의 ‘수작’을 읽는 기분이었다. 분량 제한으로 인하여 수록된 여섯 편의 중단편 중 정말 좋았다고 생각되는 일부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어둠의 사육제]

작품 속 화자(서술자)는 4년을 부은 적금으로 마련한 보증금을 동거인에게 뜯겨 이모 집 베란다에서 얹혀 살게 된다. 벌써부터 심상치 않지 않은가? 그러나 더 심한 우울의 주체가 있다. 바로 그런 화자에게 갑자기 자신의 아파트를 양도하겠다고 말하는 ‘명환’이다. 명환은 교통사고로 임신한 아내를 잃은 남성이다. 그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복수하겠답시고, 자신이 받은 합의금으로 가해자 가족이 사는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하여 그들에게 끊임없이 정신적 고통을 가한다. 그러나 가해자 가족 또한 너무도 선한 사람들이어서 이를 신고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감내하기만 한다. 결국 아무런 효용과 통쾌를 느끼지 못한 명환이 그 아파트를 주인공에게 넘기겠다 한 것인데…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어둡고 우울하고 슬픈 사연들로만 점철될 수가 있나’ 싶다가도 또 그 비통함이 하나의 매력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질주]

이것도 진짜 미쳤…(말잇못) 이 작품은 학교 폭력으로 동생 ‘진규’를 잃은 형 ‘인규’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앞서 언급한 [어둠의 사육제]가 중편 분량이었다면 [질주]는 그의 절반 정도되는 단편 분량의 작품인데, 그럼에도 그 몰입의 정도와 여운의 깊이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가 진규를 찾으며 울부짖는 장면에서는, 그 슬픔의 감정이 폭발하듯 애절한 카타르시스가 분출된다. 원래의 나는 어둡고 슬픈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중 가장 좋았던 작품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아마 <질주>를 말할 것 같다. (물론 수록된 작품들 다 좋아서 뭐 하나 고르기가 무척 힘들테니 고민이 길어질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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