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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위하여 ㅣ 소설, 잇다 4
김말봉.박솔뫼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월
평점 :
김말봉 작가님은 순수문학만을 인정하던 당시 문학계의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스스로를 대중소설가라고 소개했던, 순수와 통속의 이분법적 잣대로 재단하던 때에 ‘문학은 대중의 것이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던 작가였다고 한다. (캬… 너무 멋져…) 그래서인가, 비슷한 시기에 쓰인 다른 문학 작품들에 비해 이번에 읽은 김말봉의 작품은 훨씬 더 잘 읽히고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순수 문학의 깊이를 잃은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해설에 따르면 연애와 결혼에 관한 통속적인 내용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및 아나키즘 또한 담아냈다고 하는데, 이 책에도 수록된 김말봉의 등단작 <망명녀>를 읽어보면 이 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망명녀>는 기생 신분의 여성이 은인과도 같은 옛 동료의 도움을 받아 기생에서 벗어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주인공은 은혜를 갚기는 커녕 담배나 모르핀 등의 마약에 손을 대며 온갖 걱정을 사더니, 도리어 그 동료의 남자친구를 빼앗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 주인공의 동료와 그 남자친구는 서로 다른 사상으로 인해 언쟁 등의 다툼이 종종 일어나기도 했는데, 주인공은 남자친구가 주장하는 사회주의적 사상에 매료되어 그에게 배움을 받으며 자아를 찾는 동시에 사랑까지 깨달은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주인공의 인성(?)을 욕하며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왜인지 나는 이 시대에 이렇게 주체적인 여성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주인공의 행보가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자극적인 이야기 자체에 깊이 매료되어 책장을 술술 넘긴 것 또한 절대 부정할 수 없다. 이 작품 뿐만 아니라 수록된 다른 작품 <고행>과 <편지> 또한 독자들을 사로잡는 필력으로 쓰인 소설이었다. 근대 시대에 쓰인 ‘페이지터너’ 소설이라니,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