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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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2020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리뷰를 남겼는데, 그때 김봉곤 작가의 <그런 생활>을 읽어보고 싶어서 구매하였으나, 막상 읽어보니 강화길 작가의 <음복>이 너무 좋았다는 후기를 남겼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중고 서점에서 해당 작품이 수록된 <화이트 호스>라는 소설집을 구매하였으나, 어쩐지 그때 당시 단편보다 장편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계속 미뤄뒀다. 그러다가 갑자기 또 불현듯 단편소설집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어서 책장을 둘러보다 이 책을 바로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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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복>은 다시 읽어도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작품들은 ‘그냥저냥’ 이었다. 뭐랄까, 수록된 작품들이 기본적으로 ‘여성 서사’를 품고 있는데 대체로 썩 유쾌하지 못한 분위기로 전개되어서 그런지 내 취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 몇몇 작품은 ‘호러’의 분위기를 뿜기도 하였으나 그런 작품들도 그다지 나의 흥미를 유발하진 못하였다. <음복>이 워낙 좋았어서 다른 작품들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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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표제작인 <화이트 호스> 들어 설명하자면, 억울하게 죽은 여성 귀신의 느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인데귀신이라는 소재가 몰입감을 저해하는 듯한 것이다. 원래 나는 판타지 소설이나 환상문학 장르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 엄청 재밌다고 소문난 <돌이킬 있는>이라는 작품도 읽다가 중간에 덮었는데, ‘초능력이라는 소재가 도무지 내게 와닿지 않아서 재미없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화이트 호스> 마찬가지였다. 귀신 이라니 작품집에서 그래도 표제를 담당한 작품이기에 기대를 많이 가졌건만, 오히려 기대가 독이 되었나보다. 절대 작품들이 별로였다는 아니다. 다만 기대가 워낙 컸던 터라 상당히 아쉽고 속상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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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자리 - 시민을 위한 헌법 수업
박한철 지음 / 김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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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응시한 7급 공무원 직렬은 인사행정(국가직), 지방의회(지방직) 직렬이다. 두 시험에는 공통적으로 ‘헌법’이 필수 과목이고,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수도 없이 공부했다. 이 책은 공무원 시험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직전에 읽은 책이다. 혹시라도 헌법을 공부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대법원은 알아도 헌법재판소는 정확히 뭘 하는 기관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배경 지식을 조금은 쌓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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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자리>에는 저자가 획기적이라고 생각한 헌법재판소의 판례들이 수록되어있다. 이를테면 제대군인 공무원 가산점 부여, 대통령 탄핵 심판, 양심적 병역 거부, 간통죄, 낙태죄 등등… 이 중에서 하나 정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주제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경우에는 책을 구입하기 전에 목차를 봤을 때 위에 나열한 사건들이 궁금했다. 특히 간통죄… 세상 별별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판을 치는 지금 이 시점에 꼭 있어야 될 것 같은 범죄 항목이 왜 없어진걸까 싶어서 꼭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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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웬걸, 가장 내게 큰 충격을 주었던 소재는 다름 아닌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이었다. 이에 대한 내막은 후술하기로 하고 일단 헌법재판소가 담당하는 사건의 종류부터 설명할까 한다. 먼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탄핵심판]이 있을 것이고, [위헌법률심판]은 어떠한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는 것,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 상호간에 벌어지는 권한 다툼을 해결하는 심판이다. 또 [헌법소원심판]이 있는데, 이는 국민이 헌법에서 직접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당할 경우에 헌법소원을 청구하여 그 침해 여부를 따지는 심판으로, 두 종류가 있지만 자세한 설명은 삼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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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설명하지 않은 마지막 한가지, 헌법재판소는 [정당해산심판]도 담당한다. 특정 정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거나 정신을 함양하고 있다고 판단될 때 헌법재판소는 그 정당을 강제로 해산할 수 있다. 지금까지 딱 한 번밖에 청구된 적 없었고, 그 한 번의 대상이 바로 ‘통합진보당’이다. 역사적으로 처음 진행되는 [정당해산심판]이었기에 헌법재판소는 17만쪽에 달하는 분량의 증거들을 일일이 분석한 끝에 해당 정당을 해산키로 결정하였다. 그 내막에는 무엇이 있었냐면… 세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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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이석기를 비롯한 경기동부연합의 주요 구성원 등 130여 명이 2013년 5월 10일 및 5월 12일에 당시 정세를 전쟁 국면으로 인식하고 수장인 이석기의 주도하에 전쟁 발발시 북한에 동조해 대한민국 내 국가 기간 시설 파괴, 무기 제조 및 탈취, 통신 교란 등 폭력을 실행하려고 내란 관련 회합을 개최했다는 점이다. 즉, 통진당 주도 세력의 최종적 목표는 바로 북한식 사회주의의 실현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북한식 사회주의가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한다고 판단하여 결국 정당 해산 청구에 대해 인용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석기 의원은 내란 선동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9년 및 국회의원 자격 정지 7년을 선고 받았다. 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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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넘쳐나서 앞선 한줄평에 적었던간통죄낙태죄 대한 내용은 적지 못할 같다. 아쉽긴 하지만 부분은 책을 통해서 직접 확인했으면 좋겠는 바람에 말을 줄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헌법재판소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막중한 일을 담당하고 있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부담하고 있었다. 열일하시는 우리나라의 법관님들을 웅원하는 마음과, 우리나라의 법적 체계과 질서가 더욱더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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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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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에세이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정용준 작가님의 <소설 만세> 밖에 읽어보지를 못했지만, 어쨌든 둘 다 좋았던 걸 보니 이제는 어디 가서 소설가가 쓴 에세이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두 책은 서로 다른 매력으로 ‘소설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 만세>가 작가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았다면 (예를 들면 작가님이 문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소설가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등등),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그보단 소설가라는 직업 자체에 중점을 두고 글을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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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세 부로 나뉘어있고, 그 중 1, 2부가 앞서 말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내가 원체 소설을 많이 읽다보니 한번쯤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그때마다 항상 ‘먹고 사는 문제’가 막막할 것만 같아서 금세 상상의 나래를 접게 된다. 그런 내게 이 책은 딱 알맞는 해답(?)을 제시한 듯했다. 우리나라의 소설가로 살아가는 데에는 어떤 어려움 혹은 매력이 있는지를 가감없이 그대로, 정말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영화화되는 소설의 판권 문제랄지, 작가의 인세나 강연료 등은 어떻게 책정되는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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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는 편집자와 소통하는 부분이었다. 작가님과 호흡이 잘 맞는 편집자가 있는가 하면 또 그렇지 못한 정반대의 편집자도 있지 않은가. 작가님은 이 책에서 본인과 가장 잘 맞는 편집자가 누군지, 또 어떤 식으로 의견을 주고 받았는지를 소개하였는데, 일단 그분은 바로 민음사의 박혜진 편집자님이셨다. 박 편집자님과는 총 세 권의 책을 함께 내셨다고 하는데, 내 기억에 남는 구절은 <산 자들>이라는 작품을 두고 “이 책이 우리 시대의 <난.쏘.공>, <원미동 사람들>같은 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산 자들>을 꽤 재밌게 읽었던지라 공감이 많이 가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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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편집자님과 관련된 부분은 3부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을 느낀 것도 3부이긴 하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님은 이 책을 두고 계획적으로 쓴 책이 아니라며, 절반은 월간 ‘채널예스’에 시리즈로 연재한 원고이고, 그 외에는 이런저런 문학 포럼이나 언론사 원고 청탁 등을 받아 쓴 글을 모은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납득할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1,2부에서는 ‘소설가’라는 주제를 두고 통일되게 글을 풀어냈다는 느낌이 3부에서는 이 얘기 했다가 저 얘기 했다가 하는 그런… 약간 산만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1,2부는 한번에 후루룩 읽었던 반면 3부는 집중하지 못하고 책을 여러 번에 나누어서 읽었다. 각각의 글을 놓고 보면 감히 나 따위가 작가님의 글을 흠 잡을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한 권의 책으로 묶기에는 조금 적합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너무도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저 않고 이 책을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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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에겐 강요하진 않지만, 혼자서 창비 불매운동을 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니 불매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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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우연 - 제1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3
김수빈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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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에 연이어서 읽은 청소년 문학, 역시나 가슴 뭉클하게 하는 여운을 만끽했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서 따져본다면 (결말이라든지, 인물들의 매력이라든지) <훌훌> 쪽에 조금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책을 읽는 동안만 놓고 보면 <고요한 우연>을 읽을 때 마음이 더 크게 동했던 것 같다. 그건 바로 주인공에게서 내 모습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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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우연>의 줄거리 요약은 따로 하지 않겠다. 다만 주인공의 성격은 말해볼까 한다. 일단 나랑 닮았다고 생각한 점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좋아한다는 표현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적고 나니 상당히 부끄러운데, 뭐랄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행여나 내가 그 마음을 표현하는 순간 그 사람과 멀어질까 싶은 걱정스런 마음에 쉽게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런 내 마음이 <고요한 우연> 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너무도 적나라하게 비쳐졌다. 아주 속상하면서도 그래서 더욱 극에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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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랑은 닮지 않았지만, 주인공에게서 닮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바로 마음속 깊은 곳까지 아주 선(善)하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선한 적이 있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겉으로는 당연히 그랬을 지언정 속마음까지도 완벽하게 선했던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고요한 우연>의 주인공은 다르다. 주인공의 엄마가 말해주는 일화가 있는데, 그 부분이 얼마나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가슴이 따뜻해지던지… 이는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어린 시절만의 단단한 다정함이었다.

🗣 (180p)

 - “물론 걱정스러운 순간들도 있었어. 맛있는 간식, 예쁜 장난감이 있으면 친구들에게 다 줘 버리고 놀이터에서 누가 밀어 넘어뜨려도 그냥 툭툭 털고 일어서는 너를 볼 때면 가슴이 아팠지. 저 여린 마음으로 이 험한 세상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 “한번은 너를 밀었던 그 개구쟁이 녀석이 넘어졌는데, 네가 달려가더니 그 애를 일으켜 주는 거야. 그 애는 부끄러웠는지 네 손을 휙 뿌리치고 도망을 갔는데, 세상에! 다음 날부터 다른 녀석들이 네 근처에만 와도 저 멀리서 뛰어와서는 슬금슬금 그 애들 앞을 막아서더라고. 혹시라도 너를 밀거나 너랑 부딪힐까 봐. 눈썹이 새까맣고 코가 아주 예쁜 남자애였는데, 진짜 귀여웠어.”

 - “그때 알았지. 아, 수현이 너는 너만의 방식이 있구나. 나는 참으로 다정하고 단단한 아이를 낳았구나. 코끝이 찡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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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의 감상과 글은 조금 다를 같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와닿을 만한 구절들이 차고 넘쳐나기에, 책의 매력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글을 남기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지 못할 같기도 하고, 나와 주인공을 동일시하면서 어쩐지 치부를 드러내는 같기도 하여 상당히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감상을 남기는 속시원한 것도 있어서 글을 남긴다. 나도 작품 주인공처럼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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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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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화가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라는 것 말고는 이 책에 대해 딱히 들은 바는 없다. 여러 북튜버들이 이 책에 대해 언급하긴 하였으나 재밌게 읽었다는 후기보다 썩 좋은 감상은 아니었다는 후기가 더 많았던 것처럼 느껴져서 구태여 이 책을 읽진 않았다. 하지만, 민음사TV 유튜브 채널에서 아란 부장님이 너무 재밌다는 말씀을 하시길래, (지금까지 아란 부장님이 추천하신 책들 전부 내 취향과 찰떡이었다) 한번 믿어본다 하는 마음으로 사서 읽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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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을 내 마음 속 원픽 리스트에 올려놓을 정도로 너무 재밌게 읽었다. 아직 안 읽은 그의 작품들이 많아서 너무 행복할 정도이다. (민음사 패밀리데이만을 학수고대 중이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아무래도 고갱을 본보기로 만들어진 인물인 듯한데, 실제 고갱의 삶과는 꽤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나는 고갱의 실화를 담은 작품으로 읽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허구적인 소설로서 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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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증권 거래소에서 일할 정도로 잘나가는 스트릭랜드가 어느 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을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한순간에 떠나버리고선 예술혼을 불태우는 그런 이야기이다. 자신의 욕망만을 좇는 모습, 주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한없이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스트릭랜드의 모습이 소설 전체를 아우른다. 그래서 만약 스트릭랜드의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되었다면 나는 봇물 터지듯 폭발하는 분통을 참지 못하고 중간에 책을 집어 던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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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소설은 스트릭랜드가 아닌, 스트릭랜드의 행태를 바라보는 어떤 작가를 서술자로 내세운다. 즉 독자들은 이 작가가 스트릭랜드를 관찰하고 설명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앞서 말했듯 만약 스트릭랜드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면… 읽는 내내 분노에 휩싸일 것 같지만, 스트릭랜드를 관찰하는 인물이 따로 있고 그 인물의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인 나를 대신해서 이 인물이 화도 내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그런다. 그래서 독자로서의 나는 이 작가에게 격하게 공감하며 책을 끝까지 완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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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마 <달과 6펜스>를 읽은 사람들이라면 다들 느꼈을 테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니 짧게나마 감상을 남길까 한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스트릭랜드의 행동들은 분명히 윤리적으로 보았을 때 맹렬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그림’이라는 꿈을 앞뒤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좇아 나가는 모습이 내심 멋있게 보이기도,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현실 속의 나라면 절대 하지 못할 행동들을, 아니 상상조차 하지 않을 일들을 스트릭랜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대로 추진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나름 대리만족을 하기도 했달까… 내 스스로의 성향을 고려해보아도 스트릭랜드 같은 행동은 내 인생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이 아주 분명하기에, 그리하여 책을 읽는 동안 스트릭랜드를 마냥 미워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 (75p)

 -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다른 분야에서는 뛰어나지 않아도 별로 문제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치고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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