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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 독서 모임 - 오늘의 철학 탐구 ㅣ 민음사 탐구 시리즈 1
박동수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평점 :
『철학책 독서 모임』은 ‘모든 시대에는 언제나 오늘의 철학책이 필요하다’(7p)는 강렬한 첫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 문장에 다들 동의하시나요? 저는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철학 무지랭이(?)인 저로서는, 철학은 왠지 고루한 학문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거든요.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저의 편견을 꿰뚫고 있었다는 듯이 곧바로 이를 지적합니다. 과거의 전통 철학이 영원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오늘날 철학의 “탐구는 영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9p)라고요. 철학은 ‘당연해 보이는 것을 의심하고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는 것’(12p)이기 때문에,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에 대한 해결 방도를 연구하기 위해선 철학적 탐구가 더없이 절실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때 정말 중요한 철학적 활동의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대화’라는 점을 짚습니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갖고 있기에 일반적인 대화의 형식으로는 완전히 소통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지점을 넘어서기 위해서 우리의 체험이 이렇다, 우리의 개념이 이렇다는 사실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생산적인 시행착오의 과정’(15p)으로서 대화라는 형식이 정말 중요하고 또 효과적이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출판계 동료 편집자들과 ‘독서 모임’을 진행합니다. 인문 교양 편집자들 뿐만 아니라 문학, 과학 등 다양한 편집자들과 함께요.
이후 『철학책 독서 모임』에는 같이 읽었던 열 권의 책에 대한 담론을 전개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당면한 과제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또 그 지점에 대한 사유를 이어갈 수 있는 책을 같이 읽고 토론을 주고받아요. 정말 흥미로운 주제가 가득 담겨 있어 책을 읽는 동안 더할 나위 없이 황홀했습니다. 예컨대 1부에서 주로 다뤄지는 문제는 ‘정체성’이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정체성이 “다원화를 통해 불완전한 정체성이 되었다”’(79p)는 것인데요, 사회와 민족의 동질성으로 인해 문제될 게 없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그러한 민족 정체성이 해체되었습니다. 즉, ‘그 누구도 완전하고 온전한 정체성을 누릴 수 없’(35p)게 되어 자신의 정체성이 ‘감소’되어버린 것이죠. 이렇게 정체성이 옅어지고 다원화되면서, ‘기존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려는’(37p) 동질화 움직임이 등장하고, ‘다른 한편에서 이 동질화 압력에서 벗어나려는 다원화 흐름’이 또 부상하여 양극의 둘이 하나의 사회에 모순되게 공존하고 맙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개념이 ‘만남 구역’, ‘관광객’ 등이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분량 이슈로 인해 생략하도록 할게요... 다만 이것 하나만큼은 꼭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진리나 이념, 세계관을 공유할 필요는 없다. 단지 서로의 고통과 자유에 대한 충분한 관심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86p)
2부 5장, 허무와 무기력에 관한 고찰도 무척 좋았습니다. ‘과거의 그 어느 시대보다도 자유롭고 풍요롭지만 바로 그렇기에 대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가 더없이 모호’해진, ‘선택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선택하지 않을 수도 없는’(131p) 현재 상황을 날카롭게 분석한 것이 너무 공감되었달까요. 선택의 폭이 넓어지긴 했지만, ‘저것 아닌 ‘이것’을 선택하게끔 해주는 참다운 동기’(133p)가 실종되어버린 듯해요. 바로 이런 점이 ‘세상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두려움을 안겨 주고 의미를 잃은 삶을 살고 있다는 방향 상실의 감각을 느끼게’(135p) 해서 ‘허무주의’와 연결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반면 3부 9장은 깊이 반성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후 위기에 대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것 같아, 우리가 하는 노력들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말합니다. ‘우리가 이제 도망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같은 장소를 다른 방식으로 살 수는 있다”’(259p)는 거죠. ‘자연과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맺어야만 진정한 자유가 가능’(261p)하다는 점을 뼛속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