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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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을 수상한 최은미부터 강화길, 김인숙, 김혜진, 배수아, 최진영, 황정은 까지, 올해 김승옥문학상 수상 작가 명단은 유달리 빵빵(?)한 듯합니다. 이 이름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데,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안 읽을 수 있겠습니까.

일곱 편의 수상작 중 가장 좋았던 단 하나의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저는 김혜진 작가님의 「빈티지 엽서」라 답하겠습니다. 소재나 내용 자체는 평범했습니다. 빈티지 엽서를 두고 중년 남녀 사이에 오가는 교류, 라고 할까요. 조금의 설렘과 긴장 그리고 죄책감이 함께 느껴지는 두 사람의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는 김혜진의 문체가 소설 속 분위기와 잘 어우러졌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점 하나만으로 제가 이 작품을 가장 좋았다고 하기엔 약간 무리가 있을 겁니다. 제가 이 소설을 최애작(?)으로 뽑고 싶었던 것은, 읽는 순간 헉 하고 숨을 들이키게 만드는 한 문장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김혜진이라는 작가의 저력을 여실히 느꼈는데요,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그녀는 친절과 선의가 완성되는 데에는 두가지 조건이 있음을 배웠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친절과 선의는 있는 그대로 주고 받을 수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만 유효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오염되고 변질되고 공중분해되면서 자신 혹은 상대를 다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누구나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취약했고 위험했고 다루기 까다로웠다. (161p)

올해의 대상 수상작 「김춘영」은 무난했다고 느꼈습니다. 여기서 ‘무난’했다고 한 것은 소설 자체가 너무나 평범해서 대상을 받은 이유가 납득되지 않았다는 게 아닙니다. 대상 수상작으로의 선정이 무난했다는, 즉 웬만한 사람들 모두가 대상작으로 납득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는 뜻입니다. 이 작품은 1980년 정선 사북에서 광부들의 노동쟁의로 촉발된 ‘사북항쟁’을 소재로 하는 작품입니다. 그 시대를 직접 배경으로 설정한다기보다는, 그 사건을 겪었던 당사자를 취재하는 현재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마치 얼마 전에 읽었던 『작별하지 않는다』가 떠오르는데요. 사북항쟁 당시의 모습을 차분히 그려내는 듯하다가 결말에 다다르기 직전의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아, 이게 대상작이구나 하고 느꼈더랬죠. 소설을 읽는 이유가 단순히 ‘재미’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절대 알 수 없는 과거의 아픔을 생생히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소설의 의의는 더욱 살아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상 수상작 「김춘영」 역시 다들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진영 작가님의 「돌아오는 밤」 역시 의미가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모두를 당황케 했던 12.3 계엄 사태를 전면에 내세워, 주인공이 11월 30일 영국으로 출장 아닌 출장을 갔다가 12월 3일 밤 계엄 사태가 벌어졌던 당시에 귀국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계엄 사태로 인해 아무도 없게 된 거리에서 묻지마 폭력을 당하는데요. 저는 어쩐지 폭력을 당하는 주인공이 ‘국민’을,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의 모습이 계엄을 선포했던 ‘국가’를 비유하는 것 같았습니다. [군이 12.3 비상계엄을 앞두고 시체를 담는 종이관 대량 구매를 타진하고, 시신을 임시 보관하는 영현 백은 삼천 개 넘게 실제로 구입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라는 뉴스 속보를 보며 그 점이 한껏 소름끼치게 두드러지는 듯합니다. 이러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최진영 작가의 말이 참으로 와닿았는데요, 이를 옮겨 적으며 이번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무서운 마음을 다시금 쓸어내리는 독서였습니다.

진행중인 사건을 거리감 없이 소설의 소재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이야기를 상상할 수 없었다. 쓰면서 통과하고 싶었다. 시민 총파업이 있던 날 소설을 시작했고, 지금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쓰자는 마음으로 조금씩 이어갔다.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궁금했다. (2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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