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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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나 어려워!!!”라는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러나 생각보단 훨씬 수월하게 페이지를 넘기며 완독했다. 물론 처음에 등장하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나를 조금 당황하게 했지만, 그럼에도 결국 이 작품은 네 남녀가 등장하여 서로를 원하고 끌어당기면서 밀쳐내기도 하는 ‘사랑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과연 로맨스 소설로만 읽히는 작품인가? 물론 그런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훨씬 더 묵직한 철학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 답할 것이다. 나 또한 단순히 ‘사랑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에서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개념이 바로 무거움-가벼움 인데, 이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아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감상을 좌우하는 것 같다.

앞서 말했듯 이 작품에는 네 남녀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더욱 비중 있는 인물은 토마시(남성)와 테레사(여성)이므로 나는 이 둘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하며 작품을 읽었다. 토마시와 테레사는 서로 운명처럼 (실은 여섯 개의 가벼운 ‘우연’으로 인해) 깊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삶의 방식은 판이하게 달랐다. 테레사가 한 사람만의 사랑을 온전히 독자치하고 이를 누리고자 하는 ‘무거움’이라면, 토마시는 테레사를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여성들과 잠자리를 갖고 지내는 ‘가벼움’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토마시로 인해 테레사는 적잖은 마음의 상처를 받지만 그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못한다. 하여 그를 떠나려고 하지만 토마시가 테레사를 따라가면서 그의 가벼운 삶의 방식을 포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양극단에 사는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조금씩 가운데로 다가가는 모습처럼 느껴져 약간은 뭉클하기도 했다.

이렇듯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사랑’이라는 주제에 맞는 가벼움과 무거움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를 ‘사랑’으로만 한정해서 보지 않아도 될 듯싶다. 우리 인생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보고 내 삶은 어땠는지 혹은 앞으로 어떨 것인지 사유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여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작품 속 여러 가지 우연들, 이를 테면 토마시와 테레사가 만나게 된 여섯 가지 우연들은 ‘가벼움’으로, 그리고 이를 필연적인 ‘운명’으로 여기는 것은 ‘무거움’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내 삶은 가벼운가, 아니면 무거운가.

십대 시절 나는 인생을 참… ‘무겁게’ 살아왔던 것 같다. 누군가 던진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의미 부여를 하며 나 스스로를 짓눌렀고, 내게 던져진 여러 상황들을 모두 나의 ‘필연’인 것처럼 생각하며 버겁게 살아왔다. 돌이켜보니 ‘버겁다’는 표현이 곧 무거움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부조리’라는 개념을 배우면서, 내 인생에 닥치는 여러 불행들은 어떤 인과 관계에 의해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작위로, 아무 이유 없이 불현듯 발생하는 경우가 파다하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뭘 어떻게 하더라도 내 인생을 조종, 통제할 수 없을 것이란 결론에 다다랐고, 이는 곧,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즉, 삶을 대하는 태도가 훨씬 가벼워진 것이다. 이 작품의 교훈과 같은 맥락을 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인생은 무겁기 때문에 가볍게 살아도 된다는… 그런 괴상하고도 뭉클한 감상을 얻었다.

다만 아직 ‘키치’라는 개념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니와, 사비나와 프란츠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탐구하진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재독이라는 행위에는 ‘놓친 부분을 다시 읽는 것’이 주요하겠지만, ‘그땐 느낄 수 없던 것들을 이젠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재독이 특히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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