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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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은 주인공 ‘안진진’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삶을 ‘안진진’의 시점으로 바라보듯 전개되는 작품으로, 이 작품 안에는 안진진의 사랑 이야기도 담겨있고,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비롯한 서사도 쓰여있다. 많은 이야기들이 한 작품 안에 공존하고 있으나 전혀 난잡하거나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의 삶에 완전히 몰입하여, 그리고 그들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하여 읽을 수 있었고, 그러므로 읽는 내내 황홀한 기분을 만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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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라는 단어는 어찌 보면 아주 추상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그 추상성을 한 편의 서사로 구체화시켜 독자들에게 달콤씁쓸한 공감과 여운을 선사한다. 사실 인간은 그야말로 ‘모순’적인 동물이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사고만을 좇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본능과 감정에 충실한 행동만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양극단의 사고와 행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게 인간이고, 또 그런 모순성이 어쩌면 인간의 본질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작품을 읽으면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에서 그런 모순적인 부분들을 자주 엿볼 수 있는데, 이성적으로 설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또 그렇기에 오히려 공감이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제목을 참 잘 지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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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줄평으로 ‘결혼하면 다시 읽고 싶은 책’이라고 한 것은, <모순>에 나와있는 ‘사랑’에 대한 정의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슌킨 이야기>를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던 물음표였는데, <모순>을 읽으면서 그 답을 조금은 찾은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그 물음표가 더 커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때 이 책을 다시 읽고 싶다고 한 것이다. 지금은 아직 이십대 중반이라는 어린 나이이기도 하고, 결혼할 때쯤 되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는 조금 더 성숙해져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누추한 현실을 보일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일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다. (2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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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가장 주된 서사 중 하나가 ‘안진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앞선 문단에서 사랑에 관한 감상을 적은 것이고, 이 작품에는 사랑 말고도 가슴에 크게 와닿는 문장들이 정말 많았다. 이런 감각을 느낀 것은 조해진 작가님의 <단순한 진심>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 문장들을 조금 옮겨 적으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너무도 훌륭한 수작에 나의 감상이 오히려 누가 될까 겁이 난다. 그냥 아묻따(?) 모두가 이 책을 꼭 읽기를 바란다.) 

🗣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127p)

🗣 “낯설어 죽겠단 말야. 왜 그렇지? 장우씨는 알아? 갑자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무서워. 사는 법을 잊어버렸다구요. 사랑하면 이렇게 세상이 낯선거냐고…….” (202p)

🗣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217p)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건은 언제나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일이 현실로 드러날 줄은 알았지만, 그 일이 ‘오늘이나 내일’ 일어난다고는 믿지 않는다. 예감 속에 오늘이나 내일은 없다. 오직 ‘언젠가’만 있을 뿐이다. 매일매일이 오늘이거나 혹은 내일인데. (2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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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갈증 트리플 13
최미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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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 때가 되면 연례적으로 알라딘 중고서점을 방문하곤 하는데(명절 연휴 때마다 할인 행사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올해 설 연휴의 방문 때 발견했다. 책을 펼쳐보니 ‘녹색 갈증’이라는 제목이 특정 단편소설의 제목이 아니라 이 책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제목이라는 걸 확인하고선 궁금증이 일어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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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트리플’ 시리즈 중에서는 아마도 유일하게 세 편이 아닌 네 편의 소설이 수록된 소설집, 더불어 독립적인 단편들의 모음집이 아닌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연작 소설집이 바로 이번에 읽은 <녹색 갈증>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여타 단편집과는 달리 호흡이 조금 긴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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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호흡이 긴 편이라는 것은 꼭 좋다고만, 혹은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호흡이 짧아서 장면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호흡이 긴 작품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짧은 호흡으로 전개되는 소설들은 뭐랄까, 조금은 정신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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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녹색 갈증>에 대해선 호흡이 길다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조금 산만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나의 명확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물들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한 전개여서 그런 듯하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이 얘기 했다가 저 얘기 했다가…’ 하는 듯한 느낌… 개인적으로 그다지 선호하는 소설의 전개방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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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집이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아쉬운 점은 앞서 말한산만한 전개말고도공감되지 않는 인물들의 심리등등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없진 않다. 하지만 책의 여운이 짙게 남는다는 점은 높이 사고 싶은 부분이다. 이유가 무엇인지는모르겠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답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작품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인물들의 답답한 상황에 몰입이 되었기 때문일까, 어딘가 무의식 한켠의 내밀한 감정을 건드리는 작가님의 문체 때문일까. 이에 대한 답은 <녹색 갈증> 읽은 다른 사람들과 감상을 공유하면서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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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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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조금은 갈릴 법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러나 나에게는 아주 ‘호’였던 소설이었다. 이기호 작가님의 글이 상당히 독특한 유머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서 궁금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이 책을 읽으며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전혀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인물(혹은 작가)의 생각을 그저 가감없이 드러냈을 뿐인데 그 지점이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듯했다.

🗣 그거 알아요? 애들은요, 아빠가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구요, 문제가 생긴 다음부터 아빠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구요. 그게 어떤 차이인지 잘 모르시죠? 하여간 좆같은 세상이란 뜻이에요. (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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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톺아보자면, 목양면에 위치한 어느 교회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을 두고 주변 인물들 내지는 용의자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두 개 정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종교]와 [미완]. 먼저 [종교]에 대한 설명은 이 책의 부제를 읽으면 알 수 있다. ‘욥기 43장’. 사실 나는 독실한 무교인이라, 부제에 쓰인 ‘욥기’가 뭔지도 모른 채, 그리고 작품 속에 성경과 관련된 내용은 흐린 눈으로 넘기면서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이런 독서 방식 덕에 오히려 재밌게 읽었는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조금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은 지점들이 몇 군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무교인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 거 신도시 같은 곳에 택지 개발하면 누가 가장 먼저 덤벼드는지 아십니까? 목사들이에요, 목사들. 거기 종교 부지 분양받으려고, 아주 난리들을 치세요. 거 웬만한 투기꾼들 머리 위에서 논다니깐요. 기도를 많이 해서 그런가, 감도 좋고… (중략) 그래서 신학대학교에 무슨 부동산 투자 심화 과정이 있는 줄 알았다니깐요. 하나님께 꼭 분양 받을 수 있도록 기도드리는 전문 강의 같은 거 말이에요. (1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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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키워드 [미완]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조금 있다. 제목도 ‘방화 사건 전말기’인 만큼 방화를 저지른 범인이 누구일지를 추리해가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명쾌해지기는 커녕 머릿속에 물음표만 계속해서 생겨났다. 그 물음표는 책을 완독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즉, 마지막까지 범인이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책의 어느 부분을 놓친 걸까 싶어서 책의 후반부를 다시 읽어보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의 리뷰도 찾아보았으나, 다른 분들도 나와 비슷한 감상을 느낀 것 같다. ‘추리소설’이라 할 법한 책에 결말이 깨끗하지 않다는 건, 이 역시도 호불호를 가르는 부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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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추측성 결말이 적혀있으므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범인이 누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들은 있다. (개인적인 뇌피셜로) 내가 생각하는 범인은 바로 ‘최 목사’이다. 작중에 나주곰탕 주인과 부동산 관련하여 긴밀한 토의를 나누었던 정황과 은행에 대출을 받으려고 하였으나 아버지인 최 장로가 그를 막았던 정황을 고려해보면, 교회 건물에 화재가 발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보험금을 노리고서 방화를 저지른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다만 이것도 확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상당히 궁금하고 의견을 묻고 싶다. 어찌되었든 이 책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교인에게는 충분히 재미있으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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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즈 어웨이 안전가옥 쇼-트 12
배예람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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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즈 어웨이> - 배예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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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리뷰를 남겼던 <푸르게 빛나는>이 많이 실망스러워서 이 책을 읽을 생각은 딱히 없었는데, 다른 인친님의 리뷰를 보고선 호기심이 생겼더랬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상당히 재밌게 읽었으나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음. 때문에 온라인 서점의 미리보기 기능을 활용하여 14페이지까지를 읽어본 뒤에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추천함.”

여기에 적힌 대로 별 생각없이 알라딘 어플에 들어가서 미리보기 기능으로 이 책의 도입부를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딱 14페이지까지 읽어본 뒤의 내 감상은 이랬다. ‘🐶재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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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즈 어웨이>에는 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고, 제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세 단편 모두 ‘좀비물’이다. 좀비를 딱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좀비물을 굳이 즐기지도 않는 편이다. 비단 책 뿐만이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를 고려하더라도, 영화 ‘부산행’도 그저 그랬고, 미드 ‘워킹 데드’는 아빠 따라서 같이 보다가 중도 하차했다. 그래서 미리보기 할 때도 큰 기대를 두지 않고 읽었던 것인데, 왜인지 이 책은 꽤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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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작품들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미리보기를 통해 접했던 첫번째 수록작 <피구왕 재인>이었다. 주인공은 학교에서 피구 경기를 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소에 피구에 재능이 출중한 편이 아니었던 주인공은 그저 공을 피해 도망다니기 바빴는데, 그러던 중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순간적으로 딱 잡는다. 그러나 그건 공이 아닌 사람의 머리통이었고, 그 순간 공포는 시작된다. 한때 같은 반 학생들 다같이 피구에 미쳐있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 흐뭇한 웃음이 나기도 하면서, 소름끼치는 공포스런 분위기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결말도 상당히 인상적인데, 이 부분은 직접 읽어보고 확인하길 바라는 마음에 말을 삼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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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세 편의 작품이 각각 독립된 단편이 아닌, 크게 봤을 때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연작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제작 <좀비즈 어웨이>에는 작품 말미에 <피구왕 재인>의 주인공 ‘재인’이 깜짝 등장하기도 하고, 또 다른 작품 <참살이404>에는 이런 좀비 사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다루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좀비즈 어웨이>는 그저 그랬지만, <참살이404>는 <피구왕 재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무서웠고 스릴넘쳤다. 그래서 나 역시도 사람들에게 온라인 서점의 미리보기 기능을 활용한 뒤에, 본인의 취향과 맞겠다는 생각이 들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선명히 갈릴 듯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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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트리플 15
이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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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 이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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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친님의 피드를 보고 따라 사서 읽은 책. 전작 <브로콜리 펀치>에 대한 호평을 워낙 많이 듣기도 했었던 데다가 알라딘에서 이번 신작 구매 시 ‘친필 사인본’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건 운명이다’ 싶어 바로 구매하였는데, 그런 충동구매한 내 자신을 아주 칭찬하고 싶다. (예전 <호르몬을 그랬어> 리뷰에서 언급했듯이 ‘트리플 시리즈’로 출간된 책들은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절대로 새 책을 구매하지 않고 중고책으로만 읽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이번에는 알라딘 마일리지가 7000원 가까이 쌓여있었다. 정작 통장에서 빠져나간 내 돈은 4000원도 되지 않으니 나름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것이라고 합리화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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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고, 수록된 작품들 모두가 좋았다. 이 단편들은 공통적으로 비현실적, 초현실적인 존재들이 등장하거나 그를 배경으로 삼고 있어서, 마치 얼마 전 ‘올해의 책 어워즈’로 꼽은 <아홉수 가위>가 떠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아홉수 가위>가 떠올랐던 것은 소재의 공통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결말 덕분이었다. 그것은 비단 억지스러운 해피 엔딩이 아니다. 조금은 ‘미완’인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도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작품 속 주인공이 불행한 상황에만 틀어박히지 않을 수 있다는 미래를 품는 마무리였다는 것이 독자들(특히 나)을 행복한 기분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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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단편들의 내용을 요약했다가 자칫하면 스포일러를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가장 마음이 동했던 한 단편에 대한 감상을 짧게 적어볼까 한다.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단편은 바로 ‘페어리 코인’이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사람을 너무도 쉽게 믿는 태도’를 보이는데, 어쩐지 자꾸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특히 초등학교 때)의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정서적으로 많이 휘둘렸던 것 같다. 친구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며 내 마음을 스스로 소모했던 그때의 내가 참 안쓰러운데, 그 감정이 이 단편을 읽으면서 다시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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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런 태도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쉽게 믿고 마음을 내주는 편이다. ‘사람을 믿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컸지만, ‘의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성인이 되어 종종 느끼곤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어쩐지 조금 속상하기도 하다. 

🗣 분명히 우리는 사기를 당했고 누가 그랬는지, 어떻게 그랬는지도 훤히 아는데 법도, 제도도 우리 편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착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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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런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서 최신 문학작품들의 경향으로 이어졌다. 이번에 읽은 <모든 것들의 세계>, 그리고 앞서 언급한 <아홉수 가위>를 비롯해서 최근의 문학계에는 SF 혹은 환상문학 계열의 소설들이 인기를 많이 끌고 있는 듯하다. 이런 비현실적인 소재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지금의 세상살이가 너무도 각박하고 힘든데, 그걸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이겨내기가 어려워서 ‘초현실적’ 소재를 끌고 와서 상상 속에서나마 그걸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게 꼭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입맛이 조금 씁쓸해지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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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단지 소재나 결말이 마음에 들어서 뿐만이 아니라,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추운 겨울날에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책 한 권 읽는 건 어떨지 권하고 싶다.

🗣 그러니까 큰 사랑을 되갚을 걱정 없이 받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증명받는 일이 얼마나 나를 값어치 있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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