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의 세계 트리플 15
이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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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 이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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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친님의 피드를 보고 따라 사서 읽은 책. 전작 <브로콜리 펀치>에 대한 호평을 워낙 많이 듣기도 했었던 데다가 알라딘에서 이번 신작 구매 시 ‘친필 사인본’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건 운명이다’ 싶어 바로 구매하였는데, 그런 충동구매한 내 자신을 아주 칭찬하고 싶다. (예전 <호르몬을 그랬어> 리뷰에서 언급했듯이 ‘트리플 시리즈’로 출간된 책들은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절대로 새 책을 구매하지 않고 중고책으로만 읽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이번에는 알라딘 마일리지가 7000원 가까이 쌓여있었다. 정작 통장에서 빠져나간 내 돈은 4000원도 되지 않으니 나름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것이라고 합리화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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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고, 수록된 작품들 모두가 좋았다. 이 단편들은 공통적으로 비현실적, 초현실적인 존재들이 등장하거나 그를 배경으로 삼고 있어서, 마치 얼마 전 ‘올해의 책 어워즈’로 꼽은 <아홉수 가위>가 떠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아홉수 가위>가 떠올랐던 것은 소재의 공통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결말 덕분이었다. 그것은 비단 억지스러운 해피 엔딩이 아니다. 조금은 ‘미완’인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도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작품 속 주인공이 불행한 상황에만 틀어박히지 않을 수 있다는 미래를 품는 마무리였다는 것이 독자들(특히 나)을 행복한 기분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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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단편들의 내용을 요약했다가 자칫하면 스포일러를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가장 마음이 동했던 한 단편에 대한 감상을 짧게 적어볼까 한다.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단편은 바로 ‘페어리 코인’이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사람을 너무도 쉽게 믿는 태도’를 보이는데, 어쩐지 자꾸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특히 초등학교 때)의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정서적으로 많이 휘둘렸던 것 같다. 친구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며 내 마음을 스스로 소모했던 그때의 내가 참 안쓰러운데, 그 감정이 이 단편을 읽으면서 다시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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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런 태도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쉽게 믿고 마음을 내주는 편이다. ‘사람을 믿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컸지만, ‘의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성인이 되어 종종 느끼곤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어쩐지 조금 속상하기도 하다. 

🗣 분명히 우리는 사기를 당했고 누가 그랬는지, 어떻게 그랬는지도 훤히 아는데 법도, 제도도 우리 편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착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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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런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서 최신 문학작품들의 경향으로 이어졌다. 이번에 읽은 <모든 것들의 세계>, 그리고 앞서 언급한 <아홉수 가위>를 비롯해서 최근의 문학계에는 SF 혹은 환상문학 계열의 소설들이 인기를 많이 끌고 있는 듯하다. 이런 비현실적인 소재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지금의 세상살이가 너무도 각박하고 힘든데, 그걸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이겨내기가 어려워서 ‘초현실적’ 소재를 끌고 와서 상상 속에서나마 그걸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게 꼭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입맛이 조금 씁쓸해지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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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단지 소재나 결말이 마음에 들어서 뿐만이 아니라,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추운 겨울날에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책 한 권 읽는 건 어떨지 권하고 싶다.

🗣 그러니까 큰 사랑을 되갚을 걱정 없이 받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증명받는 일이 얼마나 나를 값어치 있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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