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토폴? 글쎄...잘 모르겠어요...". 톨스토이 작품을 좋아한다는 사람들도 생소한 세바스토폴. 그러고 보면 톨스토이 중단편선 류의 책들 중에도 <세바스토폴 이야기>를 수록한 책은 드뭅니다.긴 중편 정도의 길이인 이 작품은 크림 전쟁 당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세바스토폴 요새에서 저항 중인 러시아군과의 공방전(1854~1855)을 다룬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톨스토이는 이 당시 포병장교로 직접 참전했기 때문에 전투 묘사가 매우 실감납니다.이 소설이 발표되자 알렉산드르 1세는 자신이 직접 읽고 감명받은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읽기를 권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나중에 톨스토이는 반전평화주의자로 알려졌기 때문에 전제군주에게도 호소력이 있는 소설을 쓴 적이 있다는 사실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톨스토이가 참전한 경험을 소설화했다니까 어떤 사람들은 <전쟁과 평화>를 떠올리기도 하겠지만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한 때는 1812년이니까 톨스토이가 이때 참전했을 리는 없지요.그러고 보니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저항에 결국 물러나고 맙니다만, 크림전쟁 때는 다릅니다.결국 세바스토폴 공방전에서 러시아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국의 포위전법에 패배하고 마니까요.그리고 세바스토폴을 빼앗긴 러시아는 흑해 일대에서 당분간 힘을 못쓰게 되고 맙니다.
지금 세바스토폴은 우크라이나 영토에 있습니다만 워낙 지정학적 중요성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이곳을 우크라이나로부터 임대해서 군사기지로 쓰고 있습니다.우크라이나는 오랜 세월 동안 독립된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야 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춘 지 이제 20여년이 지났습니다.하지만 세바스토폴이 있는 크림반도는 러시아인이 더 많습니다.그래서 제정러시아 때부터 러시아 왕족과 귀족들의 휴양지로 애용되었습니다.우리나라 사람들이 국사 시간에 지나가듯 살짝 배우는 얄타회담이 열린 얄타도 세바스토폴 부근에 있지요.소치와 함께 대표적인 흑해 연안의 휴양지입니다.
나폴레옹 전쟁과 크림전쟁 이후에도 러시아는 2차대전에서 독일군의 침입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듯이 서쪽에서 오는 침략자들에게 피해를 많이 봤습니다.그래서 그런지 냉전이 끝난 지금도 우크라이나나 벨로루시 같은 주변 국가들이 러시아에서 이탈하려고 하면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우크라이나 서부는 1차대전 이전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 속했고 러시아보다는 중부유럽에 더 기울어진 성향을 보입니다.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중심지인 테르노폴리 역시 서부 우크라이나에 있습니다.하지만 지정학적인 복잡함 때문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역시 매우 다양한 색깔을 띄고 있습니다.
내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차대전 당시 동유럽 및 소련 전역을 공부한 것이 계기입니다.러시아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나치독일과 제휴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있었고, 이들 중에는 악명 높은 홀로코스트에 부역한 이들이 있었습니다.가끔 가다가 숨어있는 나치전범을 잡았다는 외신을 보면 우크라이나 출신들이 꽤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밀리터리 매니아들 중에는 단편적인 지식만을 취하여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대부분이 2차대전 때 친나치였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하지만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도 워낙 다양한 분파가 있어서 유대인이면서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로 활약한 이들도 있습니다.그리고 2차대전 초기에는 나치와 손잡고 소련에 맞서 싸우다가 나치독일의 인종주의에 반감을 지니고 나중엔 나치독일에 맞서 싸운 이들도 꽤 많습니다.로맹 가리가 2차대전에 참가한 경험을 그린 <유럽의 교육>에도 나치독일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이는 우크라이나 전사가 나오는 것도 그런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치 올림픽이 한창 열기를 더해가는 와중에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는 유혈충돌이 벌어져 시가지가 폐허가 되고 있었습니다.결국 반정부파가 수도를 장악하자 야누코비치가 달아난 곳이 러시아였음은 매우 상징적입니다.서구성향이 강한 우크라이나 서부를 중심으로 하는 정파가 권력을 잡은 것입니다.우리나라 신문에서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이런 저런 기사들이 요 며칠 쏟아지고 있습니다만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이번에 새로 들어선 내각에 유대인들이 꽤 있는 것에 대한 키예프 시민들의 반응입니다."왜 이렇게 유대인이 많냐!"며 반발하는 이들과 "우크라이나 사람이면 됐지 왜 유대인이라는 걸 지적하느냐!"며 이에 맞서는 흐름이 눈에 띄더군요.
동유럽의 반유대주의는 악명이 높습니다.흔히들 포그롬이 남긴 악명 때문에 러시아의 반유대주의에만 비난이 쏟아지는 경향이 많은데 그외에 발칸반도와 중부유럽(헝가리 폴란드) 그리고 우크라이나 일부에도 반유대주의 성향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이번에 새로 집권한 정파는 10년전 오렌지혁명으로 집권한 경험이 있지만 그때 당시 유센코 총리가 친나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일부를 국가적 영웅으로 언급한 적이 있어서 우울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푸틴의 대국주의와 친러파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의 행태가 전제적이라고 해서 서부 우크라이나에 기반을 둔 오렌지혁명파가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는 사실도 눈여겨 봐야하는 이유입니다.자칫 민족주의의 열기를 타고 극우세력들이 득세할 우려도 있으니까요.
오랜만에 냉전시대 소련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을 다룬 프레드릭 포사이드<악마의 선택>을 읽고 있습니다.포사이드는 반소반공 정신이 강하지만 실력있는 작가라서 이 소설에도 냉전시대 막바지의 복잡한 국제정세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아마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속셈을 이처럼 자세하게 다룬 정치스릴러물은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포사이드의 소설 중에는 냉전 시절 나온 좋은 작품이 꽤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자칼의 날>을 빼놓고는 번역본이 절판 상태입니다.이 소설에 나오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반유대주의자는 없고, 타타르족 출신이 한 명 나옵니다.이번에 러시아군이 장악한 크림반도에는 소수의 타타르족이 살고 있습니다만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더 글이 복잡해질 것 같아 이만 가름하지요.
***2차 대전 당시 우크라이나를 그린 소설
아나톨리 쿠즈네초프 <바비 야르>. 바비 야르는 키에프 인근 계곡인데 이곳에서 유대인 학살이 일어남.이 소설은 나치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인들에 초점을 두었다.현재는 구하기 힘들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모든 것이 밝혀졌다>. 2차대전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을 파헤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젊은이가 알아낸 진상은? 우크라이나 현대사를 알 수 있는 작품.젊은 작가의 최근작(2002년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