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하지 마라 - 논문 읽어주는 유튜버, 품격있는 성형(成形)에 대해 말하다.
이원 지음 / 엔파인더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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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 의사가 쓴 책 제목 치고는 파격적이다. '성형하지 마라'라니 적어도 성형외과 의사라면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이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거기에서부터 호기심이 생겼다.

아, 그런데 자세히 보니 '성형' 한자가 다르다. 거기에서 낚였다. 띠지에 웃고 있는 저자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일단 나도 웃고 시작한다.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하며 일단 책을 펼쳐볼 수 있도록 하는 제목이니, 이리저리 생각 많이 했을 듯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띠지에 보면 '성형외과 의사들은 보면 안되는 책!'이라고 하니 그 설명에 더 궁금해졌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성형하지 마라』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원. 성형외과 전문의이다. 현재 성형외과를 운영하며 다양한 환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총 4 챕터로 구성된다. 챕터 1 '당신은 아름답습니까?', 챕터 2 '미(美)인 보다 미(敉)인을 꿈꾸다', 챕터 3 '뇌는 섹시하게, 가슴은 따뜻하게', 챕터 4 '아름다움에 품격을 더하다'로 나뉜다. 나는 기꺼이 성형외과를 선택했다, 성형은 느린 수술이다, 성형은 창의적인 행위다, 성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미에도 주관이 필요하다,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싸구려 수술에 마음을 팔지 마라,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의사가 된다, 품격 있는 아름다움을 선택하라, 연령대에 맞는 시술을 하라, 진짜로 예쁜 눈 만들기, 품위를 높여주는 코 만들기, 엘레강스한 가슴 만들기, 쁘띠성형 제대로 하기, 성형 재수술 이렇게 하라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한없이 자신을 쪼그라들게 생각하는 분들은 아무리 기막힌 성형수술을 한다고 해도 1% 흠잡을 곳에 평생 매어 산다. 연예인 아바타처럼 살고 싶어하는 이들은 결코 좁혀지지 않은 간극 때문에 불평과 원망 속에 자신을 깎으며 살아간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게 된 분임에도 SNS 댓글 하나에 상처받아 여전히 성형외과를 전전하며 기어코 손 댈 곳을 찾는다. 만들어진 틀에 자신을 담는 성형(盛型)에 갇혀 사는 것이다. (13쪽)

제목에서 말하는 '성형(盛型)'이 이 의미의 '성형(盛型)'이고, 성형수술의 '성형'은 '성형(成形)'이다. 이 글을 보니 성형외과 의사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자마자 다짜고짜 연예인처럼 만들어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할까. 성형수술이라는 수술 기술은 물론 마음까지 성형하는 능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일이 아니겠다.




이 책에는 저자가 성형외과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비롯해서 환자들과의 일화 등 편안하게 들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러니 성형에 관심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이 책을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있겠다.

저자는 성형외과를 운영 중인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논문도 많이 쓰고 유튜브도 하느라 바쁜데 이번에 책도 낸 것이다. 덕분에 인지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도 재미있게 술술 읽히니 말이다.

진정성을 바라볼 수 있도록 눈을 크게 떠라.

가치를 포용할 수 있도록 가슴을 열어라.

세상의 편견에 콧대를 높여라.

이제는 찐성형을 선택하라. (책 뒤표지 중에서)

진정한 성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다양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이다. 은근히 재미있고 폭넓은 이야기가 펼쳐져서 성형을 고려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성형외과의가 들려주는 성형수술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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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삭스 지리 기술 제도 - 7번의 세계화로 본 인류의 미래 Philos 시리즈 7
제프리 삭스 지음, 이종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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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뒤표지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인류는 기후변화와 팬데믹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생존 지침서! (책 뒤표지 중에서)

솔직히 이 말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이 책이 나를 이렇게 휘어잡을지.

왜, 그런 책이 있지 않은가. 극찬이 가득하니 오히려 펼치기 주저하게 되는 느낌말이다. 이 책이 그랬다. 읽어보고 싶으면서도 읽기를 주저했다. 그렇게 올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되고 보니 드디어 펼쳐들었고, 나는 이 책에 훅 빨려 들어갔다. '오오, 이 책이 이런 거였어?'

이 책은 《빈곤의 종말》 《지속 가능한 발전의 시대》에서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대책에 천착해온 글로벌 리더 제프리 삭스가 내놓은 6년 만의 신작이라고 한다. 지금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 올 한 해만 정리해 보는 게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쫙 훑어보면서 우리 인류의 앞으로의 미래를 예상해본다. 이 책 《제프리삭스 지리 기술 제도》를 읽으면서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제프리 삭스. 국제금융, 거시경제 및 재건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경제학자·평화주의자·환경운동가인 제프리 삭스 교수는 하버드대학과 컬럼비아대학의 교수를 지내며 경제학을 가르치는 것 이외에도 가난의 종식, 핵 없는 세상, 지속 가능한 발전, 환경오염의 해결 등 우리 시대의 문명과 위기에 대하여 많은 예언적 처방을 내려온 행동가로 명성이 높다. 이 책은 삭스가 2017년 5월 옥스퍼드대학에서 세계의 지리 환경과 인류 문명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연설했던 세 번의 강연을 엮어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옮긴이의 글 발췌)

세계화의 역사는 인류의 영광스러운 업적, 잔인함, 스스로 가한 해악 등의 역사이고, 동시에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발전을 성취해온 아주 복잡한 역사이다. 세계화는 자연 지리, 인간의 제도, 기술적 노하우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다. 나는 이 책이 전 지구적 상호연계성의 오랜 체험을 이해하게 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생활과 사회를 형성해온 세계화의 역할을 더 잘 알게 해주는 밝은 빛이 되기를 희망한다. (23쪽 발췌)

이 책은 총 9장으로 나뉜다. 1장 '세계화의 역사', 2장 '호모 사피엔스의 세계화: 구석기 시대, 인류 최초의 세계화가 시작되다', 3장 '농업의 세계화: 신석기 시대, 정착하여 땅을 일구다', 4장 '말이 주도한 세계화: 기마 시대, 말이 세계를 연결하다', 5장 '정치의 세계화: 고전 시대, 동양과 서양이 만나다', 6장 '제국주의의 세계화: 해양 시대, 제국의 야망이 충돌하다', 7장 '기술과 전쟁의 세계화: 산업 시대, 패권국가가 등장하다', 8장 '불평등의 세계화: 디지털 시대, 불평등이 심화되다', 9장 '21세기 세계화를 위한 조언'으로 나뉜다.



먼저 이 책의 제목에 있는 '지리, 기술,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본문이 시작되며 바로 들려준다. 약 7만 년 전에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다른 지역으로 흩어진 이래 인류는 언제나 세계화를 지향해왔는데, 시대에 따라 세계화의 특성은 바뀌었다고 말한다.

인류가 통과한 7번의 세계화를 잘 짚어보면 우리의 현재 위치와 가까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는 뜬금없는 무언가가 툭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흐름에서 연장선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니 우리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며 우리의 가까운 미래를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먼저 지리, 기술, 제도에 대해 짚어주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인류는 아주 먼 과거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곱 번의 뚜렷한 세계화의 시대들을 통과했다. 일곱 번의 세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연지리, 기술, 제도가 상호작용하면서 전 지구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여기서 자연지리란 기후, 동식물, 질병, 지형, 토양, 에너지 자원, 광물, 자원, 생명의 조건 등에 영향을 미치는 지구의 여러 과정을 망라하는 것이다. 기술은 우리의 생산체계와 관련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가리키며, 제도는 정치, 법률, 사회에 적용되는 문화적 사상과 실천을 지칭한다. 지리, 기술, 제도는 놀라울 정도의 신축성과 가변성을 갖고 있으며, 서로 강력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통하여 각종 사회를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지리, 기술, 제도의 상호작용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21세기에 진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변화를 잘 헤쳐나가는 기본적인 길잡이가 되어준다. (26~27쪽)




이 책은 한 편의 영화 같달까. 현재의 목소리가 과거 회상 신으로 들어가서 짧은 시간 내에 핵심을 훅 훑어주는 느낌말이다. 그렇게 현재로 다가오면서 현재 모습도 궁금해지고 가까운 미래에 어떨지도 예측해 보고 그러는 것 말이다. 인간의 역사나 큰 틀에서 인류의 역사나 영화를 보듯 짚어보면 생동감 있게 다가올 것이다. 그 느낌으로 읽어나가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 '흥미'가 '재미'라기보다는 '극대화'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일곱 번의 세계화를 훑으면서 과거부터 현재로 이어진다. 핵심을 짚으며 책 속에서 인류의 거대한 역사가 꿈틀거린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세계화의 일곱 번째 시대에 도착했다. 이 시대에는 디지털 기술이 글로벌 경제와 지정학을 다시 만들어낼 것이다. 경제의 모든 부분은 디지털 기술의 영향을 받을 것이고, 글로벌 권력관계는 다시 한 번 변동을 겪게 될 것이다. 새롭고 복잡한 글로벌 무대는 글로벌 경제 성장에 동반되는 생태적 위기로 인해 더 복잡해질 것이다. 글로벌 관점에서 볼 때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주된 도전은 너무나 분명하다. 경제적 집중의 과정을 계속하면서도 국가들 사이의 점증하는 불공평, 바뀌고 있는 지정학적 균형관계, 그리고 점점 위태롭게 되는 환경의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 (262쪽)



아무래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의 모습을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가까운 미래가 궁금하기도 해서 그 부분을 더욱 집중해서 읽게 된다. 그리하여 세계화의 일곱 번째 시대에 도달한 8장부터가 하이라이트이지만, 1장부터 거쳐온 지식이 있기에 핵심이 더욱 빛난다. 순서대로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와 모험을 통해 지리, 기술, 제도의 상호작용을 겪어왔다. 위대한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우리가 "석기 시대의 정서, 중세의 제도, 신과 같은 기술"을 갖고 21세기에 들어섰다고 말했는데, 정말로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때때로 우리는 서로 간의 이해관계를 전보다 더 명확하게 깨닫고 있다. 이와 함께 인류의 희망은 공동의 역사와 인간 본성에서 오는 교훈을 활용하여 세계적 규모의 새로운 협력 시대를 구축하는 일에 있다. (326쪽)



지난 7만 년의 변화를 관통한 단 한 권의 책!

인류의 역사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만을 탁월하게 정리해놓았다.

_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저자

적당히 긴장감도 있고, 속도감에 스릴 넘치기도 하다가, 꼭 짚어보아야 할 핵심은 놓치지 않는 시간을 이 책을 읽으며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가까운 미래를 위해 어떤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할지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해준다. 7만 년의 세월을 한 권으로 담았다면 읽어볼 만하지 않겠는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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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2021-12-2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선물받고 엄두가 안나서 펼쳐보지 않았는데 시작해 봐야겠네요….
 

알라딘에서 상자가 왔다. 얼마 전에 주문했던 책이 왔다고만 생각했다. 이미 받아서 책장에 꽂아놓고, 사은품 피너츠 피규어 독서등까지 챙겨놓고 말이다.

아참, 알라딘 굿즈 때문에 책을 사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지난번처럼 독서등 같은 굿즈는 정말 좋았다고 한마디 하고 시작해야겠다. 독서등 하나만 있을 때에는 그림자 생기는 구역이 있었는데, 두 개 켜놓으니 그런 거 없어서 더 좋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론이 길어졌다. 오늘은 앤 상자에 담겨 온 알라딘 선물이다. 알라딘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어 받은 선물이다. 알라딘 상자를 열고 보니 앤 상자로 한 번 더 가려져있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상자를 보고 옆에서 엄마가 갑자기 "먹자!"라며 상자를 여시는데, 아, 이거 먹는 거 아니고 알라딘에서 온 거라고 한 박자 늦게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무슨 과자 선물세트나 초콜릿 같은 거 들어 있어도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건 아니고, 짜잔~! 무민과 스누피를 만날 수 있다.




 

파란 봉투에 알라딘 서재지기의 편지가 들어있다. 반가움. 내년에도 또 받기를 바라며 꾸준히 열심히 서평을 올려야겠다. 이 선물은 꾸준함에 대한 상이니 알라딘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면 일 년 동안 그래도 무언가는 열심히 꾸준히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책 살 것이 눈에 띄면 일단 알라딘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마음에 드는 굿즈 발견 시 장바구니 뒤져서 주문하면 끝! 그래도 굿즈가 매번 마음에 드는 게 아니라 몇 번 거르고 그랬는데, 그래도 집에 굿즈는 늘고 있다.

그러는 데다가 이렇게 서재의 달인으로도 뽑아주시니 정말 신나서 내년에도 알라딘 꾸준히 이용해줄테닷!





 

 

알라딘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어 선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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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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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파리 리뷰>를 처음 접했다. 문학잡지 <파리 리뷰>가 생소했지만 어떤 잡지인지 알고 나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학잡지 <파리 리뷰>는 1953년 창간 이후 소설의 실험실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우리 편집자들은 이야기를 쓰는 방식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운동이나 학파만을 신봉하지도 않습니다. 언어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탁월한 작가는 모두 자신만의 규칙과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믿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성공한 작품만을 모은 선집이 아닙니다. 장르의 대가 열다섯 명에게 <파리 리뷰>가 발표한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고르고, 그 소설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서술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어떤 작가는 고전을, 어떤 이는 우리에게조차 새로운 이야기를 골랐습니다. 우리는 이 작품집이 젊은 작가에게, 그리고 문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유용하게 읽히길 바랍니다. (파리 리뷰 편집부)

소설이라는 장르는 정말 읽고 난 후의 기분이 극과 극을 달린다. 기대 이상의 작품을 만나면 뿌듯하지만,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작품 앞에서는 한없이 답답함을 느끼고 그 책을 읽은 시간이 아깝기도 하다.

'내가 어떻게 시간을 투자했는데….' 생각하며 진퇴양난의 고민 앞에 빠지고 만다. '더 읽으면 혹시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과 '더 읽어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탄생부터가 다르니 흥미롭다. 열다섯 명의 작가에게 그동안 <파리 리뷰>에 실렸던 단편소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한 편을 고르고 그 소설이 탁월한 이유를 서술해달라는 부탁으로 탄생했다고 하니, 무언가 검증을 거쳐서 탄생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관심이 간다. 적어도 나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며 호기심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 책은 <파리 리뷰>가 2012년 미국에서 출간한 《Object Lessons: The Paris Review Presents The Art of The Short Story》에 실린 스무 편의 단편소설 중에서 열다섯 편을 추려 옮긴 것이라고 한다. 어떤 소설이 내 마음에 다가올지 기대하며 이 책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에는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어렴풋한 시간>, <춤추지 않을래>, <궁전 도둑>, <하늘을 나는 양탄자>, <에미 무어의 일기>, <방콕>, <펠리컨의 노래>,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 <늙은 새들>, <라이클리 호수>, <플로베르가 보낸 열 가지 이야기>, <거짓말하는 사람들>, <스톡홀름행 야간비행> 등 총 15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어떤 이야기를 골라도 나름의 독특한 개성이 있지만, 나는 초콜릿 상자의 각기 다른 초콜릿을 선택해서 먹는 기분으로 소설을 골라 읽어보았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이렇게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같이 생생한 글을 읽고 싶으면 <어렴풋한 시간>을, 평범한 일상을 환상으로 만드는 세밀한 감각의 축적이 궁금하면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선택해서 읽어보면 되겠다.

그러다가 그냥 처음부터 하나씩 꺼내읽게 된다. 작품 자체에서 무언가 난해했다면 작품 해설을 읽으며 알아가기도 한다.



열다섯 개의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다. 대가들이 쓴 열다섯 편의 소설은 단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독서 경험이, 단편 창작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다. 다양한 색채의 단편소설 컬렉션을 찾고 있는 당신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_최은영

그러고 보니 열다섯 나라, 열다섯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라는 표현이 맞아떨어진다. 나도 그런 기분으로 읽어나갔다. 한 작품마다 하나의 세상이 열린다.

가끔은 한 소설이 끝나고 울림이 너무 커서 다음 편을 펼쳐읽는 간극이 커지기도 했다. 가끔은 소설 자체보다 해설이 좋아서 다시 소설로 돌아가 처음부터 읽어나가기도 했다.

이 책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단편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으로 공부해 보면 소설 작법에 도움을 많이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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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사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김정완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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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는 바로 이 문장에서였다.

사우디에서 이방인 한국 여자로 산다는 것,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진짜 사우디 이야기 (책표지 중에서)

궁금했다. 그냥 딱 떠오르는 이미지와 비슷할까, 완전히 다를까? 그것은 직접 살아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 책에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하리라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글은 한국 여자가 사우디의 수도인 리야드의 디큐에서 살면서 사우디의 안과 밖에서 보고 느꼈던 짧은 관찰입니다. 2008년 2월 1일부터 시작하여 3년 2개월 6일 6시간 걸렸던 사우디 생활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날을 세었냐고 신기해하는데 저는 그 말이 더 신기했습니다. 한국과 너무 다른 낯선 나라인 사우디에서 매일매일 날 세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쓰던 시간은 2014년이었는데 사우디에서 사용하는 달력으로 1435년에 해당합니다. 사우디와의 시차를 물으면 실제 시간 대신에 "대략 8백 년?"이라고 농담 삼아 말할 때 월력의 차이만은 아니었습니다. (5쪽)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된다. 1장 '두 번째 결혼이 시작된 나라, 사우디', 2장 '사우디에 입문하다', 3장 '어린 왕자를 찾아 떠나는 사막 여행'으로 나뉜다. 불길 속에 가둔 소녀들의 영혼, 페튜니아가 전하는 진실, '헨젤과 그레텔'이 살던 곳, 자전거 타는 여자, 우리 동네 대사관 순례기, 스타벅스는 룸살롱, 암시장에서 만나는 빨간 장미와 크리스마스트리, 이슬람 이전의 두 도시 이야기, 사우디를 떠나는 신고식, 경찰에 체포된 나라에서 한국 문화를 가르치다 등의 글이 담겨 있다.

45살이 되던 날 생일선물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긴 까만 드레스와 보자기보다 더 큰 까만 스카프였는데, 그게 검정 아바야와 검정 히잡이었고, 두 번째 결혼과 함께 저자의 인생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얼결에 담요 같은 아바야를 펼쳐서 입었습니다. 인습과 습속이 사회 문화와 야합할 때 잔인한 권력이 됨을 모르지도 않는 한국 여자 하나가 자기 나라의 인습을 떠나 서양인 남자와 재혼하여 아랍이라는 곳에서 한번 살아보겠다며 도착한 나라,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일체의 타협이 없다는 엄격한 율법의 나라가 맞이한 환영인사는 "아바야!"였고 그 단어는 사우디에 살면서도, 떠나서도 결코 제 사랑을 받지 못했던 단어였습니다. (22쪽)

아무것도 모른 채 사우디로 간다면 이런 느낌일까. 아니, 이렇게 상세하게 눈앞에 펼쳐놓은 듯 글로 그려내지는 못할 것 같다. 그곳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보더라도 대략 그림이 그려지도록 그렇게 글을 쓰고 있다. 사우디라는 공간이 내 눈앞에 뚝 떨어진 듯, 아니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사우디로 뚝 떨어진 듯, 그런 느낌으로 그렇게 이 책을 읽어나갔다.




겨울 햇살이 광화문에 내려앉던 날, 혼인신고를 한 후 눈 덮인 정동길을 걸어 미술관에 갔습니다. 미술관 마당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실 때 남편이 난데없이 "집 앞에 스타벅스'도' 있어" 합니다. 사우디, 그곳이 살만한 곳임을 강조하는 말이었습니다. '스타벅스 가서 책 보고 커피 마시면 된다'는 말에 일상의 평범한 일이겠거니 생각하고 온 나라였습니다. 실제 와서 보니 스타벅스'만' 있었습니다. 사우디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남편이 그토록 자랑하던 집 앞의 스타벅스에 갔습니다. (185쪽)

그곳의 스타벅스는 커튼 하나에 테이블 하나라고 한다. 룸살롱이 아닌가 헷갈리는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의 소제목 「스타벅스는 룸살롱」을 보며 무슨 의미인가 했는데, 바로 테이블마다 커튼을 쳐두어서 옆 룸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커피 마시는 일이 졸지에 숨어서 들키지 않게 조용히 해야 하는 비밀스런 일이 된 셈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편에게 사우디 생활이 어땠냐고 물어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사우디에 대해 알고 싶으면 여자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자가 다니지 않는 거리, 여자의 아바야 옷깃에도 불타오르는 '남자의 눈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정의 내리는 폭력이고 억압이었습니다. 사우디살이는 사우디의 현지 여성에게도 간단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여덟 살의 이혼을 예상할 수도 있고 사촌 간의 결혼일 수도 있고 첫 날밤에 처음 보는 남자와의 결혼일수도 있고, 한 남자를 세 명의 다른 여자와 공유하는 결혼일 수도 있고,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결혼인 미스야(Misaya)일 수도 있었습니다. 명예살인조차 낯설지 않은 사우디에서 여자로 산다는 일은 도전임에 분명했습니다. (6쪽)

저자는 이 책을 2014년에 처음 썼고, 2019년에 출간된 책을 지금 내가 읽은 것이다. 지금은 사우디도 아랍에미리트마저도 떠났지만, 인생의 동서남북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이 글을 썼다고 말한다. 그때그때 적어두어서 이렇게 생동감 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하나같이 몰랐던 것을 새로 알아가는 느낌이어서 흥미로웠다. '거기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아니거든. 내 이야기를 따라와봐.'라며 밤새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 '어머, 정말?' 반응하며 들어나간다. 술술 풀어내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나갔다.

이 책에는 누군가가 들려주는 어느 기간의 기록이 있다. 결코 평범하지 않다. 쉽게 경험할 수 없고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이야기 하나하나에 놀라운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생생하게 풀어낸 그 이야기에 여운이 길게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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