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나온 이야기 대부분은 규모가 큰 수용소나 이름 있는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이 아니다. 대량 학살이 실제로 자행됐던 소규모 수용소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위대한 영웅이나 순교자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관리인 행세를 하며 특권을 누렸던 카포들이나 유명한 수감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저명인사의 시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름도 없이, 기록도 없이 죽어 간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시련,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매에 신분을 구별해주는 특별한 표시조차 달지 못한 채 카포들의 멸시를 받았던 보통 수감자의 이야기이다. (23쪽)
보통 수감자의 이야기라.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집중하게 된다.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서 들려주지 않는다면 그냥 사라지고 말 이야기가 아닌가. 덕분에 오래오래 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는 원래 이 책을 수감 번호만 쓰고 익명으로 내려고 했다고 고백한다. 지극히 내밀한 체험을 털어놓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고를 완성했을 때, 익명으로 책을 출판할 경우 책이 지닌 가치의 반을 잃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려면 용기를 가져야했고, 그 조심스러움과 용기가 고스란히 독자에게도 전달된다.
1984년판 서문에 보면 이미 이 책의 영어판이 73쇄에 이르렀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이 읽었다는 것은 그만큼 담담하게 풀어나가면서도 생생하게 현장을 눈앞에 펼쳐보이는 듯 그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서 저자뿐만 아니라 함께 수용된 사람들의 분위기와 생각을 짐작하며 이 책을 읽어나간다.
충격적이다. 여기에 다 쓰기 버거울 정도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특히 나는 <주검과 수프>를 읽으며 사람들이 어떻게 그러냐고 생각하다가, 이내 그 상황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바꾼다. 그 상황에 처하지 않았으면서 저자의 이야기를 그저 글자 그대로 따라가야 하지, 내가 무언가 판단하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가장 자주 꾸는 꿈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빵과 케이크, 담배 그리고 따뜻한 물로 하는 목욕이었다. 이런 단순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꿈속에서나마 소원을 이루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 꿈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꿈을 꾼 사람들은 꿈에서 깬 다음 수용소 생활이라는 현실로 돌아오고, 꿈속의 환상과 현실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58쪽)
그의 경험은 처절했지만, 나는 나의 경험세계 안에서 글을 읽는다. 내가 평범한 일상을 잃었을 때, 나는 방에서 커피믹스로 커피 한잔 타서 마시며 책을 보는 일상이 그렇게도 그리웠다. 이런 생각들과 겹치며 이 책을 더욱 입체적으로 읽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