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이 책을 추천받아서 읽고자 했을 때에는 어쩌면 내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읽었는지, 읽다 말았는지, 제목만 보고 그대로 반납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은 정말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 이 때문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이런 명저가 또 있을까 싶은데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한낱 종이 쪼가리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책과 잘 맞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인생을 좀 더 살았고, 일상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아주 작은 것에도 '다행이다, 감사하다', 그런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책을 읽을 때가 온 것이다.

얼마 전 빅터 프랭클 책을 읽을 기회도 있었고, 그래서 더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지금이다! 지금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면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겠구나!'

그렇게 나는 나름 오래된 숙제처럼 생각하던 이 책을 마음을 먹으니 단숨에 읽어나가게 되었다. 그것은 내 마음이 이 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빅터 프랭클.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에 이은 정신 요법 제3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죽음 속에서 자아를 성찰하고, 인간 존엄성의 위대함을 몸소 체험하였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에는 <제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제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과 함께 1984년 개정판에서 첨가된 <제3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 수록돼 보다 실질적인 치료기법을 누구나 알기 쉽게 해준다. 빅터 프랭클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삶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일깨워 주는 대학자이자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런 그가 강제 수용소에서 한 경험은 이제 개인의 경험이 아닌 인류의 경험이 됐다. 책장을 덮은 지금도 이 책의 감동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제는 모든 독자들과 이 감동을 같이하려고 한다. (옮긴이 서문 중에서, 이시형)

이 책은 총 3장으로 나뉜다. 1984년판에 부친 서문, 옮긴이 서문, 추천의 글을 시작으로, 1장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2장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3장 '비극 속에서의 낙관'으로 이어지며, 저자에 대해, 로고테라피에 관한 참고 문헌 등으로 마무리된다.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보통 사람 이야기, 치열한 생존 경쟁의 각축장,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믿음을 상실하면 삶을 향한 의지도 상실한다, 도살장 아우슈비츠에 수용되다, 집행 유예 망상, 삶과 죽음의 갈림길, 무너진 환상 그리고 충격,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한다, 무감각한 죄수도 분노할 때가 있다, 수감자들이 가장 흔하게 꾸는 꿈, 먹는 것에 대한 원초적 욕구 등의 글이 담겨 있다.



여기에 나온 이야기 대부분은 규모가 큰 수용소나 이름 있는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이 아니다. 대량 학살이 실제로 자행됐던 소규모 수용소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위대한 영웅이나 순교자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관리인 행세를 하며 특권을 누렸던 카포들이나 유명한 수감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저명인사의 시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름도 없이, 기록도 없이 죽어 간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시련,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매에 신분을 구별해주는 특별한 표시조차 달지 못한 채 카포들의 멸시를 받았던 보통 수감자의 이야기이다. (23쪽)

보통 수감자의 이야기라.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집중하게 된다.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서 들려주지 않는다면 그냥 사라지고 말 이야기가 아닌가. 덕분에 오래오래 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는 원래 이 책을 수감 번호만 쓰고 익명으로 내려고 했다고 고백한다. 지극히 내밀한 체험을 털어놓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고를 완성했을 때, 익명으로 책을 출판할 경우 책이 지닌 가치의 반을 잃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려면 용기를 가져야했고, 그 조심스러움과 용기가 고스란히 독자에게도 전달된다.

1984년판 서문에 보면 이미 이 책의 영어판이 73쇄에 이르렀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이 읽었다는 것은 그만큼 담담하게 풀어나가면서도 생생하게 현장을 눈앞에 펼쳐보이는 듯 그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서 저자뿐만 아니라 함께 수용된 사람들의 분위기와 생각을 짐작하며 이 책을 읽어나간다.

충격적이다. 여기에 다 쓰기 버거울 정도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특히 나는 <주검과 수프>를 읽으며 사람들이 어떻게 그러냐고 생각하다가, 이내 그 상황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바꾼다. 그 상황에 처하지 않았으면서 저자의 이야기를 그저 글자 그대로 따라가야 하지, 내가 무언가 판단하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가장 자주 꾸는 꿈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빵과 케이크, 담배 그리고 따뜻한 물로 하는 목욕이었다. 이런 단순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꿈속에서나마 소원을 이루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 꿈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꿈을 꾼 사람들은 꿈에서 깬 다음 수용소 생활이라는 현실로 돌아오고, 꿈속의 환상과 현실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58쪽)

그의 경험은 처절했지만, 나는 나의 경험세계 안에서 글을 읽는다. 내가 평범한 일상을 잃었을 때, 나는 방에서 커피믹스로 커피 한잔 타서 마시며 책을 보는 일상이 그렇게도 그리웠다. 이런 생각들과 겹치며 이 책을 더욱 입체적으로 읽어나갔다.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책 뒷부분에 제2부를 첨가했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문제를 다룬 <제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기록한 <제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에서 도출할 수 있는 교훈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1부와 제2부는 서로 신빙성을 보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8쪽, 1984년판에 부친 서문 중에서)

이 책을 한번 읽고 끝내기에는 아쉬운 것이 2부에 로고테라피의 이론이 상세히 담겨있다는 점에서다. 강제 수용소에서의 일을 상세히 적은 이후에 거기에서 로고테라피를 도출해냈으니, 두고두고 익힐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살아 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195쪽)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의 순간을 접해본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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