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언급한 '봉달'은 평일 오전 해외여행에 들뜬 중산층 가족을 보며 생각에 잠긴 것이었고, 그는 회사가 망해서 도피 중이었다. 하지만 혼자 홀연히 사라져버리면 자식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살하려고 선산을 찾는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애써 닦아내고 천천히 끈에 목을 거는데, 어라? 가만있어 보자.
'사망보험금이...자살할 경우에도 나오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황소같이 큰 눈만 끔벅이던 그때,
"시방 이게 누구여? 너 봉달이 아녀?" (15쪽)
선산의 위치는 전북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그러니 소설 속 대화는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하게 음성지원되는 듯 리듬을 타고 흘러간다.
그의 이름은 헌봉달. 죽으려고 선산을 찾았다가 얼떨결에 집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방송에서 옛날 골동품이나 기록물같은 거 있으면 무료로 감정해준다고 해서 집안을 찾아보았는데, 문서 하나를 발견했다. 발견한 문서를 가지고 어머니와 함께 가품명품 방송에 갔는데, 충격사건!
그 문서는 공명첩으로 판명된 것이다.
"쌀 열두 가마를 바치고 받은 정3품 통정대부."
그런데 여차여차하여 헌씨 종친회를 세웠고, 헌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가입을 했고 봉달은 이 모임의 수장이 되었다.
그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에 웃다가 진지해졌다가를 반복하며 작가의 톡톡 튀는 글 속에 푹 빠져드는 시간을 보낸다.
"어이, 조선에 진짜 양반은 십 퍼센트도 안 됐답디다. 근데 지금 보쇼. 개나 소나 지네가 양반이래. 그중에 절반 이상이 족보 위조했을 테고, 나머지는 어쩌다 방계에 방계로 이어졌을 테고, 그마저도 천민 평민 할 거 없이 피가 섞였을 텐데. 이제 와서 양반? 순수혈통? 나도 충고 하나 하겠는데, 그런 개소리 할 시간에 아나 떡이나 잡숴." (2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