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종친회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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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며 궁금했다. 하긴 그 옛날에는 노비가 더 많았을 텐데, 노비 종친회는 없으니 말이다.

나름 흥미로운 제목이어서 어떤 이야기를 엮어갈지 궁금했다.

오늘날에는 모두가 자신의 신분을 떠난다

그들 모두는 상승했거나 아니면 상승했다고 믿는다

_쥘 미슐레 『민중』

그런데 이 책 시작부터 '아, 그렇네. 맞네' 생각하며 읽어나갔으니, 특히 추석명절을 막 지내고 나서 그런지 더욱 공감하며 읽었다.

시작 부분을 살짝 살펴볼까.

'조상 잘 둔 사람은 명절에 해외여행 간다'라는 개똥같은 말이 언제부터 퍼졌는지에 대해 봉달은 한쪽 다리를 덜덜 떨며 생각에 잠겼다.

'죽고 없는 조상신에게 때마다 전이며 생선, 과일까지 바치고 절을 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살림을 조롱하는데서 시작된 말이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개똥같단 말이야...빨간 날에 민족 대이동 하는 우를 범하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인데.'

이번엔 반대쪽 다리를 떨며 생각했다.

'진짜 조상 잘 둔 사람은 남들 다 일 하는 평일에 놀러 다니지.' (9쪽)

'봉달'이라는 캐릭터가 시작부터 강렬하게 등장한다. 머릿속에는 대략의 생김새가 짐작이 되면서 그가 펼치는 이야기가 기대되는 것이다.

이 책 『노비 종친회』는 펼쳐들자마자 나를 이야깃 속으로 풍덩 빠져들게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고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세계로는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와 『악플러 수용소』, 『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기다렸던 먹잇감이 제 발로 왔구나』 등이 있으며, 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녹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또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단법인 이효석문학선양회와 황토현 문학상, 의정부전국문학상 등에서 수상한 바 있다. (책날개 중에서)

목차는 1장 '수단', 2장 '입보', 3장 '시조', 4장 '대동'으로 구성되며, 용어 소개로 마무리된다.



위에 언급한 '봉달'은 평일 오전 해외여행에 들뜬 중산층 가족을 보며 생각에 잠긴 것이었고, 그는 회사가 망해서 도피 중이었다. 하지만 혼자 홀연히 사라져버리면 자식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살하려고 선산을 찾는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애써 닦아내고 천천히 끈에 목을 거는데, 어라? 가만있어 보자.

'사망보험금이...자살할 경우에도 나오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황소같이 큰 눈만 끔벅이던 그때,

"시방 이게 누구여? 너 봉달이 아녀?" (15쪽)

선산의 위치는 전북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그러니 소설 속 대화는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하게 음성지원되는 듯 리듬을 타고 흘러간다.

그의 이름은 헌봉달. 죽으려고 선산을 찾았다가 얼떨결에 집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방송에서 옛날 골동품이나 기록물같은 거 있으면 무료로 감정해준다고 해서 집안을 찾아보았는데, 문서 하나를 발견했다. 발견한 문서를 가지고 어머니와 함께 가품명품 방송에 갔는데, 충격사건!

그 문서는 공명첩으로 판명된 것이다.

"쌀 열두 가마를 바치고 받은 정3품 통정대부."

그런데 여차여차하여 헌씨 종친회를 세웠고, 헌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가입을 했고 봉달은 이 모임의 수장이 되었다.

그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에 웃다가 진지해졌다가를 반복하며 작가의 톡톡 튀는 글 속에 푹 빠져드는 시간을 보낸다.

"어이, 조선에 진짜 양반은 십 퍼센트도 안 됐답디다. 근데 지금 보쇼. 개나 소나 지네가 양반이래. 그중에 절반 이상이 족보 위조했을 테고, 나머지는 어쩌다 방계에 방계로 이어졌을 테고, 그마저도 천민 평민 할 거 없이 피가 섞였을 텐데. 이제 와서 양반? 순수혈통? 나도 충고 하나 하겠는데, 그런 개소리 할 시간에 아나 떡이나 잡숴." (209쪽)



그런데 실제로 헌 씨가 있나? 막 인터넷 검색을 해보게 만든다. 실제 상황처럼 생생하게 느껴져서 이 책 속의 사람들이 실제로 어딘가에 있을 듯한 느낌이 드는 것 아닌가.

고호 작가의 전작 『악플러 수용소』도 독특한 설정이면서도 상당히 현실감이 느껴지는 픽션이었는데, 이 소설도 그랬다. 그러면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야기를 놓지 못하게 된다. 이 작가를 기억해두어야겠다.

통통 튀는 전개에 웃으면서 읽다가도 웃픈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한없이 가벼운 듯하다가도 진지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독자를 이끌어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소설이니 읽어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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