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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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의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아노말리 anomalie: n. 이상, 변칙, 모순

그러고 보면 이 단어만으로도 무언가 통제 불가능한 메커니즘을 말하기에, 소설의 소재로 충분히 선택할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마 다음 설명을 들어보면 도대체 어떻게 된 이야기인지 궁금해질 것이다.

2021년 3월, 뉴욕행 여객기가 난기류를 만나 위기를 겪고 무사히 착륙한다. 그리고 세 달 뒤, 동일 기종의 여객기가 동일 지점에서 난기류를 만나고 동일한 기착지를 향한다. 도플갱어처럼 똑같은 사람들을 싣고서… 사건을 인지한 미국 정부는 여객기를 공군 기지에 비상 착륙시키고, 극비리에 과학자들을 소집한다. (책 뒤표지 중에서)

아주 먼 과거도 아니고, 3개월 전의 나와 만나다?

그러고 보면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면 좋을까, 같은 생각은 해본 적이 있지만, 나는 지금으로부터 딱 3개월 전의 나와 조우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호기심을 못 이기고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되었냐고?

이 책을 한참이나 책장에 꽂아두었다. 그러고 보니 그게 3개월 전쯤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이 책을 펼쳐든 것이 3개월 전의 내 마음과 연결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그때의 그 마음으로 이 책을 꺼내들었다.

이 책은 공쿠르상 수상작인데, 공쿠르상은 상금이 10유로밖에 안 되지만 수상작이 되면 날개 돋친 듯이 팔리기 때문에 공쿠르 시즌은 프랑스 서점가의 대목이라고 한다.

코로나 시대의 공쿠르상은 예년보다 석 주 늦게, 거리 두기 방침에 따라 온라인 줌으로 수상작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아노말리는 밀리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과연 공쿠르상 수상작 중에서도 불티나게 팔린 이 소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이 소설 『아노말리』를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에르베 르 텔리에. 1957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소설, 희곡, 시를 쓰는 작가이자 수학자이며, 기자, 언어학 박사이다. 국제적 실험 문학 집단인 울리포의 회원이며, 2019년부터 울리포 회장직을 맡고 있다. 2020년 여덟 번째 장편소설 『아노말리』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같은 해 메디치상, 르노도상, 데상브르상 후보에도 올랐다. 『아노말리』는 프랑스에서만 110만 부 이상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 45개 국가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책날개 중에서)





작가가 어떤 집단에 속해있느냐가 당연하겠지만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울리포 즉 잠재적 문학의 작업실 집단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울리포는 1960년대 프랑스에서 문인과 수학자를 중심으로 결성된 문학적 실험 집단이다. 이들은 일견 창작의 자유를 방해하는 듯 보이는 제약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문학을 일상적 기능의 속박에서 해방하고 새로운 잠재력을 끌어내려 했다. 울리포는 수학, 과학, 생물학, 음악 혹은 뚜렷한 규칙성을 띠는 놀이 등에서 제약을 찾아내어 창작의 도구로 활용했다. (475쪽)

작가가 어디에 속했는지, 그리고 제약을 도구로 사용하는 문학의 전문가라는 점을 알고 이 소설을 읽어나가는 것이, 낯선 느낌을 조금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독특한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수학자여서 그런지 예를 들어 235쪽에 보면 수학 방정식이 하나 나오는데, 수학 방정식을 소설 속 이야기가 펼쳐지는 데에 도구로 쓸 생각을 했다니 기발하다.



 

보통은 소설을 읽을 때 스포일러를 조심하면서 배경지식을 최소화하여 읽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난해함이 느껴져서 첫 번째 독서 시도에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그럴 때에는 억지로 읽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편인데, 그것은 미래의 내가 좀 더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시 기회를 잡았을 때 나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과학적 사실에 놀라면서 읽어나갔다.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은 있을 법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읽다가도 어느 순간에 수긍하며 빠져들게 되면 그렇게 반갑다. 그것이 소설의 묘미이다. 이 소설 역시 그랬고, 이것이 공쿠르상 수상작의 힘인가보다.

앞부분이 살짝 몰입도를 떨어뜨렸지만 '난기류'부터는 본격적으로 속도를 얻어 한달음에 가보게 되었다.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스토리도 따라가고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SF와 형이상학적 미스터리가 우아하게 혼합되었다.

착륙 후에도 한참이나 머릿속을 맴돌 상상의 비행 같은 소설.

_워싱턴 포스트

이 소설을 읽다 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 술술 읽히는 소설만 잡고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흡인력 있게 술술 읽히는 소설도 좋지만, 때로는 지식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생각의 틀을 깨주는 소설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동일한 승객들을 태운 동일한 비행기가 두 번 착륙했다고요?" (책 뒤표지 중에서)

이 말이 처음 접했을 때에는 나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상 현실로 가능성을 보여주는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나 자신의 '분신'과도 대면하는 듯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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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2 - 전2권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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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백만장자의 공짜 음식》은 1,2권으로 된 이미진 장편소설이다. 《파친코》 저자 이민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출발점이라고 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디아스포라는 신앙적, 경제적, 정치적 이유 등으로 고향을 떠나 타지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파친코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교포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그린 소설이라면,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미국이라는 기회의 땅으로 가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분투하는 삶을 이야기해준다.

그들은 현재보다 나은 삶을 위해 가는 것인데 그곳에서도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된다는 것을 상세하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민진.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경계인으로서의 날카로운 시선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으로 복잡다단한 역사와 인간의 본질을 포착하며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을 잇는 작가'라는 찬사 속에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이민진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예일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후 조지타운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했으나, 건강 문제로 그만두게 되면서 오랜 꿈이었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작가는 2007년 첫 장편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으로 독자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다. 199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국인 이민자 가족을 다룬 소설은 이민 2세대의 정체성 혼란과 부모 세대와의 갈등, 불안한 미래를 앞두고 방황하는 젊음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의 특수한 정서와 한인 사회에 속한 여성의 삶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점을 인정받으며 평단과 대중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두 번째 장편소설 《파친코》는 작가가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혼신의 노력을 쏟아부어 완성한 대작으로, 영미문학이 그동안 주목하지 않은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삶을 다루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7년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아마존, BBC 등 75개가 넘는 주요 매체에서 앞다투어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고, 전미도서상과 데이턴문학평화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파친코》는 33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작가의 책들은 대한민국 바깥의 한국인, 뿌리는 같지만 삶의 형태와 형식을 달리하는 재외동포를 새롭게 조명하면서 문학적 성취까지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뉴욕주 작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으며, 한국에서는 《파친코》로 만해문예대상, 디아스포라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의 완결작이 될 세 번째 장편소설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책날개 작가소개 전문)




먼저 작가가 '친애하는 한국 독자들에게'라는 글에서 하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주인공에게 케이시 한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동기를 알려준다.

그 글을 보고 나면 케이시 한이 어떤 인물인지 눈앞에 그려질 것이다.

더 이상 그냥 이름만이 아니라, 발랄하고 꿈이 가득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그곳에서 살아간 한 인물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이 소설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능력은 저주일 수 있다.' (13쪽)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구체적으로는 책 뒤표지에 있는 말을 보면 된다.

당신이 가진 것 없는 이민자의 딸이라면

부모와 다른 눈부시고 화려한 인생을 꿈꾼다면

능력은 저주일 수 있다 (책 뒤표지 중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소설을 읽어나가며 파악할 수 있다.

이전에 《파친코》를 통해 일본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의 디아스포라를 보았다면, 이번에는 미국 땅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현재를 볼 수 있었다.




기회의 땅으로 간 한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 삶을 생생하게, 아주 세밀하게 엿보는 듯한 책이다.

대화를 통해서도 성품과 인격, 생활상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도록 작중 인물들도 선정을 잘 했다.

그들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 그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풀어나간 소설이다.




또한 이 책의 제목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의미가 와닿으니 이 책의 제목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었다.

"어느 팀이든 계약을 체결하면 부서 전 직원에게 점심을 사게 돼있어요. 우리가 지난주에 계약 하나를 마무리했죠. 뭄바이 외곽의 대형 발전소.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인도 음식으로 한턱내는 겁니다. 알겠죠? 일본 담당 팀이 계약을 마무리하면 스시를 먹겠죠."

"그렇군요."

"웃긴 건 이 사무실에는 연봉이 무려 일곱 자리나 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백만장자들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접시를 채운다는 거예요. 부자들은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거든요." 월터는 어깨를 으쓱했다. 말투에 비난하는 기색은 없었다. 아니, 그의 음성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제야 좀 알겠다는 듯한 씁쓸한 감탄이 어려 있었다. (162쪽)

케이시의 아버지는 세탁소를 하시는데,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에 공짜 점심 같은 건 없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러니 케이시는 다소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바라보던 세상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가며 사회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세대 차이기도 하고 문화 차이이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인식하며 기존의 틀을 깨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기본적으로는 이민자들의 삶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입장에 놓여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 사회에서 고정관념처럼 굳어있는 세대 간의 격차를 깨는 시간도 보내게 된다.


 

 

사람들은 기회의 땅으로 간다. 잘 살아보기 위해서 간 것이다. 하지만 삶은 녹록지 않았다.

거기에서 성공할 수도 있지만 부단히 고생만 하다가 끝나는 삶도 있다. 이 책에는 이민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삶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애환의 삶을 잘 녹여내어 쓴 소설이어서 현장감이 있게 읽어나갔다.

말이 어눌해서 걸핏하면 바보 취급받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케이시 한도, 계급과 인종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국 사회의 엘리트로 도약하겠다고 이를 악문 '테드 김'도 어딘가에, 우리와 매우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그 어떤 한국인들보다 이런 한국인들에게 목소리를 내라고 권유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488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태어나서부터 성장까지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는 소설이다. 지금껏 이민자들에 대해 잘 몰랐다면, 이 책을 계기로 그들의 삶과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의 시작이다. 이미 소설 《파친코》의 인기로 그 책을 먼저 읽어보았지만, 이 책은 그 시작점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리고 현재 작가는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완결작이 될 세 번째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하니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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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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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학평론가 신형철 에세이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가 있어서 관심을 가졌고, 시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하여 읽어보기로 했다. 안 그래도 요즘 시 감상에 관심이 생겼는데, 문학평론가가 들려주는 시 이야기 시화詩話가 궁금하여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무슨 이야기가 전개될지 이 책의 여정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신형철. 문학평론가. 2005년 계간 『문학동네』에 글을 발표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관심사는 예술의 윤리적 역량, 윤리의 비평적 역량, 비평의 예술적 역량이다. (책 속에서)

내가 조금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 그랬던 시들 중 일부를 여기 모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 책의 가장 심오한 페이지들에는 내 문장이 아니라 시만 적혀 있을 것이다. 동서고금에서 산발적으로 쓰인, 인생 그 자체의 역사가 여기에 있다. (8쪽)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된다. 책머리에 '내가 겪은 시를 엮으며'와 프롤로그 '조심,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를 시작으로, 1부 '고통의 각', 2부 '사랑의 면', 3부 '죽음의 점', 4부 '역사의 선', 5부 '인생의 원'으로 이어지며, 부록 '반복의 묘'와 에필로그 '돌봄, 조금 먼저 사는 일에 대하여'로 마무리된다.

이 책에는 공무도하가, 욥기, 에밀리 디킨슨의 시 두 편,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네트」, 김시습 「나는 누구인가」, 한강 「서시」,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밥 딜런 「시대는 변하고 있다」, 이성복 「생에 대한 각서」,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공무도하가

백수광부의 아내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이 책에서는 「공무도하가」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우리 최고最古의 노래여서만은 아니며, 가장 오래된 인생과 그 고통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 감상을 시작으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함께 집중해본다.

그 옛날의 공무도하가 이후 수천 년이 흘러 지금도 다양한 모습으로 재탄생되었는데, 이상은은 <공무도하가>를 불렀고, 김훈은 『공무도하』를 썼고 진모영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를 찍었다.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각별하게 전해져내려오는 깊고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시여서 그럴 것이다.

'나는 내 뜻대로 안 된다. 너도 내 뜻대로 안 된다. 그러므로 인생은 우리 뜻대로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나는 수천 년 전의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들어본 적 없는 그 먼 노래가 환청처럼 들린다. 나는 백수광부다. 나는 그의 아내다. 나는 곽리자고다. 나는 여옥이다. 나는 인생이다. (36쪽)


 

이 책을 통해 모르는 시도 접하고, 아는 시도 다시 접한다. 지금껏 알고 모르고는 상관이 없다. 저자의 시선으로 다시 풀어내는 관점을 볼 수 있어서, 시 감상을 달리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었다.

나도 이 시를 고등학생 때부터 감상해왔지만, 볼 때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르기는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또다시 달리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독법 말고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는 데에는 미국의 평론가 데이비드 오어가 2015년 출간한 『가지 않은 길 - 모두가 사랑하고 대부분 오해하는 시에서 미국을 발견하기』가 그런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문소영 칼럼 「오해되는 시, 가지 않은 길」을 통해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면 감상의 폭이 달라지고 확연히 넓어질 것이다. 시는 그래서 오묘하고 신비로운 세계인 것 같다.


 

이 책의 띠지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이라는 직업'을 가진 모두를 위한 책!

이 책은 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있다. 내 시선보다 조금은 더 섬세하게, 더 넓은 시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짚어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 해당 시에 대한 감흥이 달라진다.

누군가 짚어주어야 비로소 알게 되는 인생의 묘미를 보여주는 책이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이 책에 그런 문장이 하나라도 있다면 저는 얼마나 좋을까요.

_신형철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라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맴돈다. 어쩌면 나도 어렴풋이 알 듯했던 것을 이렇게 문장으로 표현해주니 비로소 내 마음도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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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운은 좋은 사람과 함께 온다 - 정신과 의사가 알려주는 운이 좋은 사람들의 비밀
정신과 의사 토미 지음, 안소현 옮김 / 서삼독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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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싫은 사람과 억지로 관계를 쌓지 마세요'라는 소제목을 보고 나서였다.

어려서부터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커왔고, 언제 어디서든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 두루두루 잘 지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억지로 하지 말라니! 그 말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이 책은 '운'이라는 이야기를 정신과 의사가 들려준다고 하여 기존의 책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좋은 사람과 좋은 운을 쌓으면서 살아야 한다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좋은 운과 좋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 책 『좋은 운은 좋은 사람과 함께 온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정신과 의사 토미. 트위터 팔로워 38만 명, 2030 독자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정신과 의사. 일본 정신보건 지정의, 정신신경학회 전문의로 15년간 정신과 클리닉을 운영하며 지금까지 15만 명 이상의 내담자를 만났다. (책날개 중에서)

저는 타고난 운이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수많은 환자를 상담해온 정신과 의사로서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타고난 운이 아닌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한 영역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 영역 안에서 '인생이 잘 풀리는 비밀'을 알려드리려 합니다. (8쪽, 저자의 글 중에서)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저작의 글 '정신과 의사인 내가 '운'에 대해 고민한 이유'를 시작으로, 1장 '정신과 의사의 질문: 운 좋은 사람은 따로 있는 걸까요?', 2장 '정신과 의사의 진단 1 " 내가 누구인지 아는 순간, 좋은 운이 열린다', 3장 '정신과 의사의 진단 2 : 부정적인 감정이 나쁜 운을 부른다', 4장 '정신과 의사의 처방: 좋은 운은 좋은 사람과 함께 온다'로 이어진다. 스페셜 1 '매일매일 기운이 솟아나게 하는 해피 액션 9', 스페셜 2 '상담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 9', 스페셜 3 '정신과 의사가 전하는 열두 달 행운의 만트라'로 마무리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나는 운이 안 좋은데 저 사람은 항상 운이 좋아." 이렇게 자주 투덜대고 있다면 본인을 먼저 돌아보라는 것이다.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말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어느 정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이에 대해 부러워하는 어떤 포인트에서 그저 "저 사람은 운이 좋다"라고 치부한 것은 아닌지 이 책에서 돌아보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저 운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해왔는지 과정을 먼저 보세요. 그들이 어떻게 물고기를 잡는지 따져 보아야 합니다. 적절한 장소에 그물을 잔뜩 쳐놓으면 물고기가 적어도 한 마리는 잡힙니다.

여러분은 어땠나요?

적절한 장소에 그물을 놓았나요?

아니, 그물을 제대로 놓은 적이 있기라도 한가요?

운 좋은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투덜대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부터 돌아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20쪽)



이 책에서는 운이라는 것을 추상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 운이 들어오도록 할지 함께 생각하게 한다.

직접 펜을 들고 적어나가도록 하기도 하고, 함께 생각해보도록 짚어주기도 한다.

막연하게 운이 좋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안내해 주기에 오히려 현실적이어서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나쁘다는 것은 행운이 따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선택한 행동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행동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지는 법.

행동을 바꿔야 합니다. (73쪽)


이 책에서 금전운, 연애운도 알려주는데, 읽어보니 일리가 있다. 어찌 보면 약간 어이없을 수도 있는데, 생각해보면 현실적인 데에 포커스를 맞춰서 이야기해주니 수긍하게 만든다.

운이 좋은 사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운을 좌우합니다'라는 부분을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가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그러니 어떤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운이 좋아질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좋은 운을 갖고 오는 사람이

포르쉐를 타고 오는 건 아닙니다.

화려한 명품을 두르고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입니다. (130쪽)

함께 하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것을 깊이 통찰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신선했다. 지금껏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눈을 번쩍 뜨면서 볼 수 있는 듯했으니 말이다.

우리가 흔히 '나는 왜 운이 나쁠까?'라든가 '나도 운이 좋아지고 싶다'라는 말을 할 때, 우리 자신의 행동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이 책에서는 객관적으로 짚어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하여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지금 나의 현재에서부터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특히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운을 좌우합니다', '싫은 사람과 억지로 관계를 쌓지 마세요'는 인상적인 글이었다.

깔끔하게 읽으면서도 핵심적인 이야기가 마음을 정돈해주는 책이었다. 곁에 두고 자주 펼쳐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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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원더 아르테 오리지널 14
엠마 도노휴 지음, 박혜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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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에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야 진도를 팍팍 뽑는다.

그런 책을 찾는다면 이 소설 괜찮겠다.

이 소설을 펼쳐들고는 '우와, 이 소설 독특하다!'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스토리는 이렇다. 1850년 아일랜드의 어느 마을, 한 소녀가 몇 개월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도 생존하여 천주교 신자들에게 기적의 상징으로 추앙받기 시작한다. 4개월 전부터 주님의 성수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간호사 리브가 아일랜드로 가고 그 마을의 수녀가 교대로 근무하며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흥미에 불을 지핀다.

과연 애나는 살아 있는 기적일까, 영악한 사기꾼일까. 정말로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기적을 일으킨 것일까?

플로렌스 퓨 주연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원더> 원작 소설!

과연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서 이 책 『더 원더』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엠마 도노휴.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역사, 현대, 단편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무대, 라디오 대본까지 쓴다. 그녀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룸』은 2010년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부커상, 커먼웰스상, 오렌지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책날개 중에서)


간호사 리브가 런던에서 아일랜드로 향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그 당시 이슈가 되고 있는 기적의 소녀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아니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곳에 온 이유가 감시를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냥 관찰하라고 했지만, 어쨌든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진실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더 원더』는 허구의 이야기다. 하지만 거의 50건에 가까운 이른바 '단식 소녀(오랜 기간 음식 없이 생존했다고 칭송받은 아이)'의 사례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런 사례는 16세기에서 20세기 사이 영국 제도와 서유럽, 북미에서 보고되었다. (442쪽)

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는 더욱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소설을 처음 펼쳐들 때의 호기심이 끝까지 읽어나가게 만드는 추진력을 주었다.

과연 기적이자 지극한 선인지, 아니면 추악한 사기극인 것인지, 견딜 수 없이 궁금하게 만들어서 결말까지 내리 달렸다.

흡인력 있는 소설이니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원더>에 대한 호기심도 불러일으켰다.

소설을 먼저 읽어보고 넷플릭스 영화까지 한달음에 감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흥미진진하게 보면서 인간의 두 가지 정반대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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