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내희(전 중앙대 교수/ '문화연대' 공동대표)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지난 수백 년, 콜럼버스 일행이 바하마 제도의 산살바도르—원주민 언어로는 과나하니—섬에 상륙하며 개시된 유럽의 아메리카 침공(1492년)을 기점으로 500년이 넘는 기간 세계질서는 서유럽 중심의 서방 세력이 지배해 왔다. 서방이 15세기 말에 바로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18세기까지도 중국의 청과 인도의 무굴제국, 그리고 오스만제국 등 세계에는 유럽의 개별 국가들을 능가하는 군사적 경제적 힘을 보유한 세력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발견의 시대’ 이후 ‘기타 세계’, 즉 수많은 비유럽 지역과 사회들을 침략하며 식민지로 삼고 수탈과 착취를 자행하는 제국주의적 지배를 이어온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일찍 발달시킨 서유럽 세력이다. 그 결과 지난 500년 이상의 근대 역사에서 서구 문명이 헤게모니를 행사해 왔고, 그런 흐름은 미국이 서구 세력의 적자로서 세계 헤게몬으로 군림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과거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에 이어 헤게모니 국가로 등극한 20세기 중반 이후 온갖 패악질과 침략 행위 등 초-국제법적 행태를 일삼아 왔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남미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 내외를 불법 납치하여 자국 법정에 세우는 만행을 저질렀고,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며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암살했다.
하지만 서방 세력이 세계질서를 유린할 수 있던 제국주의적 지배의 역사는 끝나고 있다. 자신의 동맹과 속국들로 형성된 집단 서방을 주도·지휘하며 세계의 지리정치경제적 질서를 통제하려는 미국의 일극 지배는 이제 글로벌 다수 국가 또는 비서방 세력의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한 상태다. 최근 자신이 주도한 동유럽과 서아시아에서의 두 전쟁에서 미국과 그 동맹이 형편없는 패퇴를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런 점을 방증한다.
2022년 2월에 시작되어 여태 지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해서 일어났다는 것이 집단 서방이 ‘사실’인 양 세계적으로 유포한 내용이다. 하지만 전쟁의 근본 원인은 미국 중심의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부추겨 러시아를 압박한 데서 찾는 것이 마땅하다. 우크라이나에서 신나치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게 만든 2014년의 마이단 쿠데타를 획책한 것이나, 이후 일어난 우크라이나 내전 종식을 위해 맺은 민스크 협정을 어기고 우크라이나의 군사화를 추진해 러시아를 협박한 것은 미국과 서방 세력이다. 하지만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를 분해해 서방의 자원 식민지로 만들고자 러시아의 전략적 패퇴를 노리며 자신들이 유발한 전쟁에서 미국과 나토 및 EU,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무참한 패배를 앞두고 있다. 개전 4년 반이 지난 지금도 서방의 주류 언론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압도하거나 적어도 전황을 교착상태로 이끌고 있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그런 가짜뉴스와는 달리, 우크라이나는 지금 동서남북, 육해공 전면에서 수세에 몰려 조만간 수도 키예프가 러시아의 공격권에 들어갈 전망이며, 바다로의 진출이 막힌 내륙 국가로 전락할 처지에 빠졌다. 이는 미국과 서유럽 군사 강국들이 전력을 다해 지원한 결과라는 점에서 서방 군사력의 한계를 뚜렷이 보여준다.
미국의 쇠퇴는 올 2월에 이스라엘과 함께 벌인 대이란 전쟁에서도 역력히 드러났다. 미나브의 초등학교를 폭격하여 어린 여학생 170여 명을 죽이고, 이란 지도부에 대한 ‘참수작전’을 통해 최고지도자와 그의 어린 손녀를 살해하고, 병원과 사원, 체육시설 등 이란의 민간 시설을 대거 파괴하며 전쟁을 시작한 미국은 이란 공격의 실질적 목표인 석유 자원 약탈 야욕은 숨긴 채, 이란 지도부 제거 및 정권 교체, 핵 프로그램 종식, 군사적 위협 제거 및 군사 인프라 파괴 등을 공식적 목표로 내세웠으나, 어느 것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다. 반대로 페르시아만 일대에 배치된 미군기지들의 고가 레이더 시설과 각종 군사 자원이 이란의 막강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아 대거 파괴되고 미군 병력이 피신해야 하는 수모를 당했을 뿐이다. 애초 미국은 안보 보장을 약속하며 페만 제후국들(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에 군사기지를 건설했으나, 그들 국가는 영토 일부를 미국의 대이란 공격 발진 기지로 내준 탓에 미사일 공격의 주된 대상으로 전락해 산유 및 정유시설 피격, 호르무즈 해협 통제로 인한 수출길 봉쇄, 석유 수출과 연동된 페트로달러 체제의 해체 위기, 식수 안보 위협 등을 겪게 되었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한 대가로 엄청난 후유증을 겪은 페만 국가들은 이제 지역 내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더 이상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미국이 먼저 이란에 휴전 협상을 요청하고, 이란의 요구를 담은 양해각서(MOU)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전쟁을 끌수록 이란의 전략적 승리와 자국의 패배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은 양해각서를 무시하며 여전히 이란 응징을 떠든다. 하지만 패트리엇 등 정밀유도 미사일이 바닥나고 인도양에 배치된 항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병사들의 자살 시도 증가가 보고되는 등 미군의 전쟁 수행 능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바야흐로 서세동점의 시대, 즉 서방 제국주의가 세계질서를 유린하던 역사적 시대는 저물고 있다.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시작된 일극적 세계질서의 시대—미국이 ‘규칙-기반 국제질서’를 내세우며 초강대국으로서 세계를 호령하던 시대—역시 종언을 고하는 중이다. 그 대신 ‘다극 질서’가 떠오르는 역사적 변곡점을 맞아 미국은 지금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근래에 미국이 글로벌 다수 국가에 폭력적 침탈을 일삼는 것도 자신의 헤게모니가 이전 같지 않아서 비롯된 행태일 것이다. 하지만 동유럽에서 나토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패전을 거듭하며 내륙 국가로 전락할 처지에 빠졌고, 서아시아에서 미국이 자국의 ‘공격견’ 이스라엘과 힘을 합쳐 이란을 침공했으나 이란의 완강한 저항을 맞아 진퇴양난에 빠진 것을 보면, 일극적 세계질서는 한계에 봉착했음이 분명하다. 이는 세계질서가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징표가 아닌가 한다. 헤게몬이 일방적으로 국제질서를 유린하던 제국주의적 질서가 후퇴하면, 세계는 더 평화롭고 더 정의로우며, 공영 발전을 이룰 더 좋은 조건을 맞을 수도 있다.
미국 주도 서방 세력의 군사적·지정학적 패퇴 밑바탕에는 일극적 세계질서 아래 작동해 온 경제적 모순이 자리한다. 오늘날 제국주의의 쇠퇴는 서방 자본주의가 추구한 축적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강력한 징후다. 최근 중국의 굴기로 대표되는 브릭스(BRICS) 등 비서방 다수의 경제적 부상도 그런 점을 말해주고 있다. 다극 질서의 부상은 단순히 패권의 이동을 넘어, 세계 인류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사회적 물질대사’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물질대사, 즉 화폐가 화폐를 낳는 가공자본의 투기적 순환(M—M’)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반면, 브릭스가 추진하는 다극 질서는 산업자본의 운동이 중심이 되는 실물적 자본 순환(M—C—M’)이 지배하는 질서다.
양자의 차이는 명확하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금융적 대사는 차관 형태의 부채와 이자율이라는 추상적 굴레로 교역 관계를 압도한다. 미국은 경제 위기에 처한 국가에 자국이 유일한 거부권을 행사하며 통제하는 IMF의 구제금융을 빌미로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해, 천연자원과 핵심 공적 자산을 강제로 민영화하게 만든다. 한국도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각종 공적 자산을 민영화했고, 또 외국 금융자본을 위해 국내 금융시장을 대폭 개방해야만 했다. 미국은 IMF 등을 통해 획득한 각종 자산, 자원에서 발생하는 현금 흐름을 증권화하여 월가의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탈취 기제를 작동시킨다. 그 과정에서 피수령국에 강제되는 살인적인 재정 긴축은 공공부문 사영화와 노동 유연화를 낳아 소자본을 파산시키고 하층 노동자 계급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IMF 위기를 겪으며 한국의 인민도 그런 고통을 충분히 겪었다. 미국 금융자본의 행태는 구제금융 수령국의 사회적 기반을 유린하며 그 인민의 삶을 처참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미국 내부에서도 탈산업화와 실질임금 하락이라는 참담한 부작용을 동반한다. 이 과정에서 대금융자본가에 의한 세계 부의 탈취가 일어나는 점도 외면할 수 없다. 오늘날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갈수록 부가 극소수의 수중에 집중되는 추세다. 일론 머스크라는 개인의 보유 자산이 1조 달러를 넘어섰다는 믿지 못할 보도가 최근 나온 바도 있다.

반면, 브릭스 및 글로벌 남부 국가들 내부의 교역은 가공자본의 폭주가 억제되고 구체적인 사용가치의 교환을 중심에 두는 실물 중심의 지정학적 형태를 띤다. 이러한 실물적 교역망 구축은 근본적으로 그들 체제가 비자본주의적이어서라기보다, 서방의 고압적인 금융 제재 및 달러 무기화에 맞서서 자국의 산업자본과 실물경제를 방어해야 하는 지정학적 생존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최근 급증하는 러시아와 중국 간의 교역 방식을 살펴보자. 러시아가 중국에 주로 수출하는 것은 에너지다. 양국의 교환에서 러시아는 이 에너지(C)를 수출하여 획득한 자국 통화나 위안화(M)로 중국의 실물 공산품(C)을 수입한다. 이 교환에서 화폐(M)는 표면적으로 구체적 사용가치의 맞교환을 성사하는 회계적 수단으로만 기능한다는 점에서, 가치 증식(M—C—M’)의 강박보다는 본원적인 단순 상품유통(C—M—C)이나 물물교환(C—C)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실물적 성격이 짙다. 2024년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제16차 브릭스(BRICS)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제안하여 현재 설립 준비 중인 브릭스 곡물 거래소는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와 최대 소비국인 중국·인도가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의 달러화 가격 지표에 의존하지 않고, 물리적 물량과 필요에 기반해 직접 곡물과 비료를 거래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할 전망이다. 컴퓨터 모니터 위에서 현란하게 나타나는 달러(M) 수치가 세계 빈국 인민의 기아 상황을 규정하는 식량 가격을 지배하는 작태가 M—M’의 논리로 실물을 통제하는 구조라면, 브릭스 곡물 거래소는 곡물 가격의 결정 기준을 가상의 신용에서 물리적 물량과 신체적 필요, 즉 사용가치의 실물적 기초 위로 옮겨오는 제도적 장치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급증한 중국과 아프리카 국가들 간의 교역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방의 고압적인 금융 제재를 무력화하기 위해 통화 스와프와 직거래 비중을 높이며 달러 패권을 우회하는 이 대안적 교역의 전형적 사례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시코마인스(Sicomines) 합작 사업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이 구리와 코발트 같은 천연자원을 담보로 제공하고, 중국이 그 대가로 도로·철도·발전소 등 필수 인프라를 지어주는 이 교환 방식은 투기적 가공자본 운동(M—M’)과는 전혀 다르게 물물교환(C—C)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실물적 성격이 짙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교역 역시 자국의 산업적 축적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완벽히 비자본주의적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순환 구조(M—C—M’) 안에서 화폐는 자기 증식하며 지대를 수취하는 가공자본으로 군림하는 대신, 양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용가치의 생산과 조달을 위한 매개체로 철저히 통제된다. 금융자본주의의 추상적이고 파괴적인 폭력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궤적이다. 결국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의 쇠퇴, 그리고 브릭스를 위시한 비서방 다극 질서의 수립은 폭력적인 M—M’의 굴레를 끊어내고 실물과 사용가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와 대안적 물질대사가 싹트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일극 질서가 해체되고 다극 질서가 수립되면 새로운 세계질서가 만들어지고 평화공존의 시대가 열릴까? 오늘날 다극 질서를 추진하는 브릭스 등 글로벌 다수 국가의 부상이 지난 500년 이상 세계를 유린해 온 서방 제국주의 지배를 극복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현실이 어떻게 전개될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미국이 제국주의적 야욕을 버리지 않고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세계대전을 일으킬 우려도 없지 않다. 게다가 다극 질서가 구축된다고 해서 좋은 세상이 저절로 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다극 질서를 추진한다는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는 소련의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수용했고, 인도에서는 신자유주의적 파시즘의 지배가 진행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국가의 권위주의적 지배가 작동한다. 그래도 M—M’의 약탈적 자본 운동이 지배하는 것보다는 그 내부에 C—M—C와 C—C 순환을 내장한 M—C—M’의 순환이 지배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길을 앞당기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 질서 아래 사회적 물질대사를 지배하는 M—M’ 순환이 전적으로 투기적이고 약탈적이라면, 다극 질서를 지향하며 이뤄지는 물질대사(M—C—M’)는 사용가치의 생산과 그것을 둘러싼 교역을 활성화하는 경향이 있다.
단, 비자본주의적인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앞당기려면 다극 질서를 추진하는 각국에서 내부 개혁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거대 국가 자본의 주도로 구축되고 있는 이 대안적 실물 인프라와 자산들이 훗날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통제’로 넘어갈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될 때만 다극화는 진정한 체제 변혁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이스트번 메자로스가 한 말을 기억하고 싶다. 메자로스는 『자본을 넘어(Beyond Capital)』에서 오늘날의 사회적 물질대사 양식을 지배하는 자본의 지배를 넘어서려면 “공동체적 생산과 소비의 물질적·제도적 형태를 실천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핵심이며, 그래야만 “대중 속에서 사회주의적 의식의 발전이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이때 기존의 구질서가 가동시킨 “위로부터의 의사결정 구조”(레닌주의 정당, 현실 사회주의 국가 등)가 수행할 수 있는 “역사적 기능은 자율적 자기-관리의 탄생을 돕는 산파 역할”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중국이다. 중국의 사회주의 국가는 대중의 사회주의적 의식 고양을 위해 자신의 역사적 기능을 “자율적 자기-관리의 탄생을 돕는 산파 역할”에 국한할 수 있을까? 즉 국가로서의 자기 해체를 주도할 수 있을까? 결국 그 대답은 권위주의적 국가의 선의가 아니라, 국가 주도의 톱다운 경제 구조 아래서 억눌려 온 기층 노동자들의 투쟁과 협동조합적 실천 등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얼마나 거세게 자율적 관리를 요구해 낼 것인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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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혁(성형외과 전문의)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SNS, 인별이나 스레드 등에 이런 말들이 참 많았다. "내가 그 시절에 살았더라면, 일제는 싫지만 그래도 체제에 순응하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았을 것같다. 내가 독립운동가가 될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독립운동 영웅 vs 체제 순응 일반"이라는 이분법적 선택으로 당시 상황을 재단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우리가 위인전에서 보아 온 영웅들은 몇몇 안 되는 소수일 뿐이지만, 영웅이 아니었던 사람들도, 적어도 소극적으로라도 일제에 저항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사실 대다수였다고 봐야 한다. 이들은 당연히 이름도 남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정신까지 망각해선 안 된다.

일제 강점 말기로 갈수록 3.1운동처럼 대중적인 대규모 집회나 노출된 독립 운동이 급감하고 대다수 민중이 체제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소극적 저항이나 비밀 지원조차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형태를 바꾸어 밑바닥에서 집요하게 항일 저항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우리 조상들은 겉으로는 일제의 잔인한 압박과 통제에 따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물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일제의 전시 동원과 강압에 침묵으로 거부하거나 태업으로 맞섰다.

일제가 놋그릇, 숟가락, 곡식, 짚신까지 공출해 가자, 농민들은 곡식을 땅속에나 벽 속에 숨기고 놋그릇도 산속에 들어가서 묻어 버렸다.(일제의 전쟁에 도움을 주느니, 차라리 내가 안 쓰고 만다는 것이다.)
쌀 공출에 있어서도 일부러 나쁜 품질의 곡식을 내놓는 등 소극적 비협조 운동이 전국적으로 만연했었다. 이걸 독립운동이고 영웅적 행동이라고 역사에 기록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름도 없이, 제대로 된 조선인이라면 일제의 전쟁 놀음에 가담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대세였다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때 징용이나 학병. 징병 통지서가 나와도 조선 민중은 잘 응하지 않으려 했다. 산속으로 깊이 숨어들어가 피신을 하거나, 병을 핑계로 도피하는 청년들이 수두룩했다. 전북, 전남, 강원도 등의 깊은 산중에는 징용을 피한 청년들이 무리를 이뤄 은신하기도 했다.

창씨 개명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거에 앞장서서 자기 이름부터 일본식으로 고친 자들은 친일행각을 했다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부분의 조선 민중은 이를 마지막 날까지 미루거나, 일제 당국을 비꼬는 이름 - 예를 들어 '개자식'이라는 뜻을 담거나 - 자신의 가문 성씨를 잊지 않겠다는 은밀한 뜻을 넣은 이름으로 신청하곤 하였다.

일제가 언론을 장악하고 미군과의 전쟁에서 계속 승리하고 있다며 학도들 전쟁 참여를 독려하고 있을 때, 우리 조상들은 겉으로는 믿는 척했지,만 결코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 소리방송이나 임시정부의 단파 라디오 방송을 몰래 듣고 "일본이 미국에게 밀리고 있고 곧 망한다"는 소문들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일제는 이런 운동에 굉장히 고민이 깊었고 어떻게든 색출하려 난리를 쳤었다.

1944년 몽양 여운형 선생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망 바로 밑에서, 조선내 전국적 비밀 조직을 결성한다. '조선 건국동맹'이다. 이 밑에서 농민 동맹, 학병 거부 운동, 유사시 무장 투쟁까지 준비했다. 이 조직은 광복 직후 즉각적인 국가 건설 활동으로 이어졌다. 맥아더 미 군정이 이를 무시하고 억눌렀을 뿐이다. 이런 건국동맹에 참여하고 또 자금을 보태고, 아니면 적극 참여를 못한다 해도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조선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째서 자기 조상들이 민족적 자긍심을 모두 버리고 매국의 뒷줄에 쫄래쫄래 서 있었다고 자꾸 말하고 싶어하는 걸가? 어째서 당시에 친일매국이 대세였다고 자꾸 무지하고 무식한 말들만 자꾸 늘어놓는 건가? 우리 조상들은 강제적으로 병합을 당했을 뿐, 절대 일본이 우리 모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우리 말과 우리 글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극소수의, 영웅적 행동을 할 수 있던 분들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하지만, 영웅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비타협적으로 태업하고 일제의 동원과 공출에 저항하며 속으로 언제나 우리 민족만의 국가를 염원하며 살아갔다. 그런데 그 후손이라는 것들이 "당시엔 다 친일 했지 뭐" 이따우 소리나 하면서 너절하게 SNS에 글을 ㅆ부린단 말인가? 따라서 위와 같은 조선 민중의 분위기 속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의 가장자리에라도 이름이 올랐다면 이는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런 언급들 - "내가 그때 살았더라도, 과연 내가 뭘 했겠느냐, 체제 순응하고 친일 할 수밖에 없었떤 거 아니냐?" 이런 건 역사에 대한 무지이기도 하지만, 패배의식이기도 하다. 분명히 한국은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라고 하고 문맹률도 최저에 속하지만, 정작 자신이 속한 집단, 민족이 살아온 지난 일에 대해서는 무지와 패배주의 따위로 함부로 입을 놀리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것이다.

하영의 발언도 결국 무지와 역사의식의 빈곤에서 비롯된 것이다. 차제에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간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부러울 것 없이 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 사람이 저토록 우리의 아픈 역사에 대한 문제 의식이 전무했다는 건, 우리 모두가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역사 과목을 교육시킬 때 학교에서는 교육의 방향을 완전히 수정해야 하겠다. 하영의 사건이 심각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철학도, 역사의식도 전무한 빈껍데기뿐이라는 걸 알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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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일에 걸쳐 ‘씻김굿’(20일)과 ‘내림굿’(20일), 그리고 ‘솟을굿’(8일)이 진행되었다. 49일째(8월 8일) 새벽에 통각(統覺)이 일어났다. 50일째 아침부터 한나절, 해방과 재설정을 상징하는 희년(jubilee) 걷기로 대연지수(大衍之數)에 감응했다. 내 삶 모든 각성·치유·영령 제의 막이 내렸다.

 

걷기 장소는 60여 년 전 서울 와 처음 살기 시작했던 성북구 삼선동과 돈암동 일대, 삼선초등학교,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틈만 나면 달려갔던 백악 기슭 정릉 숲이다. 해방과 재설정 의식이라면 지구별에 도착해 10년간 자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간평리 오대천 노누라지 일대와 월정초등학교를 걸어야 마땅하지만 시절이 하 남루하다 보니 오지랖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정릉은 그냥 숲이 아니다. 조선 최초 능으로 개국에 지대한 공을 세운 태조 계비 신덕왕후 묘역이다. 태종이 미워해 본디 정동에 있던 묘를 파서 사실상 폐릉 상태로 내쫓은 곳이 바로 여기다. 지난 60년, 올 때마다 나는 그 역사를 가슴에 깊숙이 안아 삭혀냈다. 마치 내 인생인 듯이.


 

6백 년 전 왕후가 영면에 든 숲과 남루한 내 현실 모습은 그야말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지만 기이하게도 나는 여기서 아늑한 고향에 닿는다. 엄마 냄새를 향한 그리움 대신 숲 냄새에 심취한다. 나무가 엄밀하게 건네는 말을 듣는다. 상실과 질병으로 얼룩진 시간이 말갛게 되돌아오는 풍경을 본다. 금천 노누라지 건너 4백 세 느티나무께 감사 인사 올리고 물소리 장단에 나온다.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성북천을 건너면 야트막한 언덕길 너머 삼선초등학교가 있다. 내가 1965년 가을 전학해 와 다녀서 졸업한 모교다. 이 아련한 공간에 다시 와 아득한 시간을 통짜배기로 느끼는 까닭은 여기 드리운 어둠을 가로질러 건너온 존재로서 온전한 빛을 살아가기 위해서다.

 

가난과 모멸에 결박된 채 학교를 오가던 삼선동과 돈암동 골목길을 걷는다. 6학년 때 육성회비 9개월 치를 내지 못해 졸업장을 받지 못했던 일, 그 가난을 근거로 중학교 배정 원서를 쓸 수 없었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물론 모두 지나갔다. 거기서 나는 해방되었다. 상처받지 않았던 태초 모습처럼 살아갈 수 있다. 그 자유를 얻고 기리기 위해 50일 동안 통엄한 시공을 지나왔다.

 

백악산 동북 줄기가 동남쪽으로 흐를 때 성북천과 정릉천을 양쪽에 거느린다. 이 두 지천은 청계에서 만난다. 그 사이 능선·기슭인 삼선동 일부, 돈암동, 정릉이 노누라지를 형성하는 셈이다. 노누라지 정령 green shaman은 내 팔자 맞다. 팔자대로 살아서 여기에 와 닿은 거다. 목숨껏 한껏 솟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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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 성패 여부와 무관하게 내 삶은 심층 소통을 향한 상담자·중재자로서 흐름을 이루며 여기까지 왔다. 직업으로 삼기 전에도 신기할 만큼 주위 사람들과 나는 그렇게 마주했다. 마침내 숙의로 마음 치유하는 늦깎이 한의사가 되었고, 거기서부터 내 길은 줄곧 확장되었다. 최근 5년 동안 비인간 생명에까지 그 소통은 번져갔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 식물에 도달했다. 내 일상 경로 주축인 나지막한 산 궉(鴌) 소도(宮)에 사는 물오리나무, 곧 메팥버들이 바로 “그”다.

 

궉궁 메팥버들이 내게 말을 건 첫 번째 통로는 눈이었다. 궉궁 앞을 지나던 중, 마치 바로 직전 그 자리로 왔다는 듯 내 눈을 이끌어 멈추도록 했다: 나 메팥버들이야! 여기를 봐~ 두 번째 통로는 손이었다. 첫 만남에서 그 몸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내가 생명 주파수를 손으로 전달하자 어느 순간 그가 공명 진동을 전해왔다. 이때 접촉을 통해 내 생명 에너지를 받고 있다는 파동 동기화 말고는 다른 감각 메시지가 없었다. 오늘 새벽 드디어 그가 다른 대화를 제시했다.

 

해 뜨기 전, 집을 나설 때 기온이 이미 31도를 웃돌고 있었다. 잠시 망설였다. 숲을 걷지 않고 지하철역으로 바로 가서 체력 소모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 이 폭염이 당분간 계속될 텐데···. 노화가 진행되는 면면을 피부로 느끼는 터라 매사에 이런 걱정을 되풀이하게 된다. 갈림길에 도달했는데 숲 반대쪽 길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떨어진다. 3분 이상 찜통 속에 서 있느니 내게는 영원한 궁금증인 숲으로 가자 한다. 속도를 늦추어 땀 분비를 줄이며 열류를 헤치고 나아간다.

 

숲길을 걸을 때 반드시 멈추어 인사하고 지나가는 나무 몇이 있는데 오늘은 딱 한 나무만 챙기기로 한다. 궉궁 메팥버들이다. 천천히 걷는다고 걸어도 땀이 옷을 끌어당겨 척척 들러붙는다. 가장 짧은 경로를 거쳐 궉궁에 이른다. 메팥버들 앞에 선다. 평소 습관을 돌연 바꾸어 무념무상으로 그저 두 손만 조용히 가져다 댄다. 다음 순간, 메팥버들이 먼저 나지막이 파동을 보내온다. 그다음 찰나, 들려오는 한 소리에 몸이 온통 열린다. “사랑한다고~!” 내 어찌 전율 따위 하랴.

 

차분하게 시각을 확인하고 기록한다: 2026년 8월 5일 06시 11분. 솟을굿.

 

실은 숲에 들어오기 직전 문득 이런 의심이 들었다. “내가 메팥버들한테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걸까? 어떤 면에서는 다 아는 이야기일 테고, 또 다른 어떤 면에서는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일 테니, 어떤 경우든 무의미하지 않을까?” 그때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막상 그 말을 듣고는 절대 고요로 침잠할 수밖에 없었다. 모름지기 죽고 나서도 나는 그 고요 품에서 ‘사랑한다’ 발화하는 무한한 웅사(雄辭)를 듣고 다시 들어야 하리라.

 

내가 웅사라는 표현을 쓴 며리가 있다. 왜 메팥버들은 “사랑한다!” 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했을까? 이 곡절에 내 천명이 걸려 있다고 나는 차마 생각한다. 이 사랑은 인간이 지녀온 그런 사랑과 차원이 다른 특이점을 통과한 사랑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묵시록 차원 고백과 고함이 절박하게 엮인 최후 신음이며 절규, 심지어 “욕설” 아닐까. 홀라당 뒤집어엎을 최후 화두가 아닐까. 내가 너무 각 잡았나 보다. 안 될 일이다. 소주 한잔하고 다시 글 앞에 앉아야겠다. 喝!

 

한의원 앞 국숫집으로 가서 다스운 국수에 소주 한잔하며 가만히 되짚어본다. 얼마 전, 청딱따구리가 예쁜 소녀 웃듯이 운다는 사실을 알고도 의심했을 바로 그때, 청딱따구리가 날아와 그렇게 울어 답해주었듯, 오늘 새벽 메팥버들도 내 어리석은 의심에 현명하게 답해주었다. 그 대답이 꼭 똑 “사랑한다고~!”였고. 해석 준거는 이거다: 이미 다 아는 사랑도 아니고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랑도 아닌, 사랑. 각을 뭉그러뜨릴수록 각이 잡힌다는 기이한 “촉”이 온다.

 

단도직입으로 나아간다. 나무가 먼저 사람에게 고백한 사랑은 이미 다 아는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랑이란 말인가? 제국주의 시민 인간과 거기 부역하고도 깨닫지 못하는 인간에겐 그렇다. 제국주의에 살상당한 사람과 부역자임을 깨달은 사람에겐 아니다. 후자는 알아듣는다. 알아듣는 사람에게 왜 나무는 “사랑한다고~!”라는 묵시록 차원 어법을 썼을까? 대멸종 카이로스여서다; 시간이 없어서다; 사랑 화신 메팥버들로서 안타까워서다.

 

사랑을 묵시록 차원에서 재정의해야 한다. 사랑, 특히 오늘 대멸종 카이로스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사랑은 우리 세계에서 발원하는 모든 공존·공생 감정을 대표함과 동시에 끌어안는 감정, 나아가 감응이다. 감정과 감응이 분리된 사랑은 메팥버들 사랑이 아니다. 감응은 반제국주의 정치경제학 비판이며 실천 팡이시질이다. 달콤한 긍정, 얄팍한 행복, 몽롱한 합일은 없다. 비인간 생명, 비생명 존재와 함께 행진하는 queer 항쟁 여정이 사랑이고, 그 사랑이 우주다. 그뿐이다.

 

메팥버들이 해준 말을 손으로 감지해 몸에서 온전히 들은 첫 번째 이야기 대강을 이렇게 정리했다. 첫 번째인데 끝 번째처럼 임계 질량을 느낀다. 여기가 언제고 되돌아올 내 영혼 “앉을 자리”다. 주술도 명상도 과학도 아닌 이 범주 인류학 경험으로 향후 내 삶을 이끌리라; 거룩하고도 즐겁게 “사랑한다고~!”를 되새기며 다시없는 겹, 더없는 결로 내 삶을 펼치리라; 남은 날이 얼마일지 모르겠으나 꼭 똑 찰나 카이로스를 살아가리라. 첫 번째 글을 똑 끝 번째처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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