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일에 걸쳐 ‘씻김굿’(20일)과 ‘내림굿’(20일), 그리고 ‘솟을굿’(8일)이 진행되었다. 49일째(8월 8일) 새벽에 통각(統覺)이 일어났다. 50일째 아침부터 한나절, 해방과 재설정을 상징하는 희년(jubilee) 걷기로 대연지수(大衍之數)에 감응했다. 내 삶 모든 각성·치유·영령 제의 막이 내렸다.
걷기 장소는 60여 년 전 서울 와 처음 살기 시작했던 성북구 삼선동과 돈암동 일대, 삼선초등학교,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틈만 나면 달려갔던 백악 기슭 정릉 숲이다. 해방과 재설정 의식이라면 지구별에 도착해 10년간 자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간평리 오대천 노누라지 일대와 월정초등학교를 걸어야 마땅하지만 시절이 하 남루하다 보니 오지랖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정릉은 그냥 숲이 아니다. 조선 최초 능으로 개국에 지대한 공을 세운 태조 계비 신덕왕후 묘역이다. 태종이 미워해 본디 정동에 있던 묘를 파서 사실상 폐릉 상태로 내쫓은 곳이 바로 여기다. 지난 60년, 올 때마다 나는 그 역사를 가슴에 깊숙이 안아 삭혀냈다. 마치 내 인생인 듯이.

6백 년 전 왕후가 영면에 든 숲과 남루한 내 현실 모습은 그야말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지만 기이하게도 나는 여기서 아늑한 고향에 닿는다. 엄마 냄새를 향한 그리움 대신 숲 냄새에 심취한다. 나무가 엄밀하게 건네는 말을 듣는다. 상실과 질병으로 얼룩진 시간이 말갛게 되돌아오는 풍경을 본다. 금천 노누라지 건너 4백 세 느티나무께 감사 인사 올리고 물소리 장단에 나온다.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성북천을 건너면 야트막한 언덕길 너머 삼선초등학교가 있다. 내가 1965년 가을 전학해 와 다녀서 졸업한 모교다. 이 아련한 공간에 다시 와 아득한 시간을 통짜배기로 느끼는 까닭은 여기 드리운 어둠을 가로질러 건너온 존재로서 온전한 빛을 살아가기 위해서다.
가난과 모멸에 결박된 채 학교를 오가던 삼선동과 돈암동 골목길을 걷는다. 6학년 때 육성회비 9개월 치를 내지 못해 졸업장을 받지 못했던 일, 그 가난을 근거로 중학교 배정 원서를 쓸 수 없었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물론 모두 지나갔다. 거기서 나는 해방되었다. 상처받지 않았던 태초 모습처럼 살아갈 수 있다. 그 자유를 얻고 기리기 위해 50일 동안 통엄한 시공을 지나왔다.
백악산 동북 줄기가 동남쪽으로 흐를 때 성북천과 정릉천을 양쪽에 거느린다. 이 두 지천은 청계에서 만난다. 그 사이 능선·기슭인 삼선동 일부, 돈암동, 정릉이 노누라지를 형성하는 셈이다. 노누라지 정령 green shaman은 내 팔자 맞다. 팔자대로 살아서 여기에 와 닿은 거다. 목숨껏 한껏 솟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