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록(경북대 법전 교수)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1. 정부의 가공할 법률안이 던져지며 중수청 논의가 산으로 가고 있다.
‘수정’ ‘보완’이라는 미명 아래 왈가왈부로 난장판이 될 조짐이다.
중심 잡자!
2. 출발점은 ‘검찰의 실패’다
해결책은 ‘검찰에 대한 통제 강화’다.
구체적 방법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떼내는 것’이다.
3. 새로 만들려고 하는 중수청은 수사기관이다.
그런데 이미 수사기관인 경찰이 있고 국수본이 있다.
왜 또 수사기관을 만들겠다고 이 소란인가!
그냥 검찰의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면 끝나는 것 아닌가!
4. ‘공룡 경찰’이 될 것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그 문제는 ‘경찰 통제’로 풀어야지 ‘검찰 유지’로 풀어서는 안 된다.
다시 되새기자.
‘검찰의 실패’가 출발점이다.
5. ‘검찰의 수사 능력’을 보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거 입증되었나?
정반대의 증거를 거듭 확인하지 않았나!
경찰 수사 사건 무죄율 1% 미만, 검사 직접 수사 사건 무죄율 5% 내외다.
조국 일가 수사를 보라.
검찰은 사악한 수사를 했다.
김학의 수사를 보라.
검찰은 해야 할 수사를 하지 않았다. 혹은 범죄를 덮는 것을 수사라고 했다.
다시 되새기자.
‘검찰의 실패’가 출발점이다.
6. 검사의 권한 유지 기구로 전락할 중수청 필요없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만들면 안 된다.
중수청 법률안은 모두 폐기하라.
7. 논의의 물꼬를 수사권을 모두 가지게 될 경찰의 충실화와 확실한 국민적 통제 방안 마련으로 돌리자.
1) 검찰의 수사인력과 예산을 떼어내서 경찰로 이관하자.
2) 경찰에 전문수사관(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 자격증 소지자)을 대폭 늘리고 대우하자.
3) 국가경찰위원회를 의결기구로 격상하고 진정한 국민 대리기구로 구성하자.
4) 국수본은 중요 범죄만 수사하게 하고, 생활안전에 관한 사항은 자치경찰에게 넘기되 주민의 통제를 받게 하자.
5) 검찰은 경찰에 대한 감시기구로 거듭 나게 하자.
8.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의 후속조치도 필요하다.
1) 검찰수사관 전원을 경찰에 재배치하자.
2) 검사들도 원하면 경찰로 가게 하자. 검사가 가지 않아 남게 되면 신규채용 하지 말고 검사정원법 개정해서 정원을 줄이자.
9. 검찰에 남게 되는 기소권과 공수유지권도 국민이 철저히 통제하게 하자.
1) 기소 요건을 법률로 정해 해당하면 반드시 기소하게 하자.
2) 기소 여부 결정과 공소 유지의 과정에 국민이 결정권을 가지고 참여하게 하자.
10. 검찰, 검사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주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유지하려는 모든 주장은 반개혁이다.
민주당 국회의원 중에도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다.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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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1-15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발점은 ‘검찰의 실패’다
그 문제는 ‘경찰 통제’로 풀어야지 ‘검찰 유지’로 풀어서는 안 된다.
새겨야 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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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야 한다는 말을 나는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는다.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동창들과 만나면 흔히 나누는 이야기 화제도 방향도 워낙 달라서 재미없음을 넘어 부아가 치미니 어울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특히나 정치 문제에서 내 또래들은 거의 전부가 나와 반대편에 서 있다. 언쟁하기는커녕 아예 말 섞고 싶지 않다. 내내 침묵하고 있다 돌아설 때 드는 생각을 기억하고 냉정하게 거절해 온 지 제법 된다.

 

최근에 그나마 말 통하는 친구 하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다른 친구 이름을 대면서 굳이 내게 연락해달라 하고 모임을 제안했다 한다. 나는 역시 그런 문제가 있어서 갈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친구는 무슨 근거에선지 이번에는 그런 일 없을 거라며 웬만하면 나오라고 당부한다. 출발 직전까지 망설이다가 에멜무지로 가 봤다. 정말 희한하게 그날은 정치 얘기도 없고 시답지 않은 미셀러니도 없고 혼자 십 분, 이십 분 떠드는 놈도 없다.

 

기분이 해낙낙해져선지 빠른 속도로 소주잔을 비워갔다. 모임 뒷부분 쪽 기억을 어디다 흘리고 왔다. 아침에 확인하니 기억 말고도 하나 더 흘린 게 있다. 목도리다. 음식점에 전화해 물은바 어제 밤엔 유실물이 없었단다. 혹시 나중에라도 찾으면 연락한다기에 길에다 흘렸나보다 하고 미련을 거두었다. 한, 나중에 연락한다는 말이 어쩐지 마음에 남는다. 그 음식점 일반전화기에 내 전화번호가 남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서다.

 

때마침 그 근처로 갈 일이 생겨 행여나 하고 들러보았다. 직원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있다고 대답하고 아무 말 없이 건네준다. 좀 이상스럽게 느껴져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냥 내 추측에 따라 포기하지 않은 결과라 여긴다. 뭘 잃을 때, 나는 보통 알끈하지 않고 그냥 놓아버린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거의 모든 일을 홀로 가말며 살아온 오랜 습성 탓이다. 이 습성을 깨뜨린, 사소하나 인상 깊은 사건이었다. 묘한 흥이 돋는다.


 

사실, 나는 목도리를 두 가지 이유에서 아주 좋아한다. 첫째, 목 앞이 다 드러나 허전한 느낌을 견디기 힘들어해서다. 아마도 어린 시절 거의 방치된 상태로 양육되면서 겪은 마음 스산함과 실제 추위에 대한 두려움에 그 곡절이 닿아 있지 싶다. 폴라(polo neck) 옷을 입고도 목도리를 할 정도다. 둘째, 일상 삶과 직업 수행에 영성을 담는다는 내 식 제의 복장이다. 이를테면 미사 집전하는 사제가 목에 두르는 영대(stole) 같은 구실이다.

 

첫째 이유는 상처에 보이는 반응(reaction)인 셈이고, 둘째 이유는 내 삶에 보이는 감응(response)인 셈이다. 통속한 논리로 따지면 이 둘은 공존해서는 안 된다. 원효 성사 일심(一心) 사상을 따르는 내 논리로 따지면 이 둘은 공존해야 맞다. 그래야 겸허와 자긍이 무애자재(無碍自在)인 삶일 수 있다. 그 목도리 찾기를 이제 내 생애에서 기릴 만한 한 사건으로 자리매김한다. 글 쓰는 인제에도 나는 바로 그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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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하든 당연하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최근까지 전혀 내 관심 밖이었다. 이는 필경 자칭 과학이라 하는 양의학에 코웃음 날리는 심사가 허울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번져서지 싶다. 전혀 엉뚱한 계기로 처음 그곳을 찾았다. 옥상 공원 전망 좋다는 말을 듣고 거기서 백악산과 경복궁을 볼 심산이었다. 내려오다가 별생각 없이 역사관을 일별했다. 아무 느낌이 나지 않는 나열처럼 다가왔다. 겉만 훑은 채 내려왔다. 입구에서 어떤 충격과 맞닥뜨리기 전까지 나는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을 일거에 뒤집어버린 충격은 이명박이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건립하도록 했다는 모멸 어린 사실이었다.


 

이명박이 입김이 쐬어진 대한민국 역사라면 분명한 뒤틀림이 도사리고 있을 터이다. 다음 주에 나는 작심하고 다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찾는다. 좀 더 정색하고 좀 더 천천히 더듬어간다. 나중에 다시 보면서 정확히 판단하는 데에 필요한 자료를 사진에 담는다. 문제점을 나누어 정리하기 전에 가장 큰 느낌 한 가지를 먼저 이야기한다. “이 역사박물관은 박정희에게 바친 오마주라고 할 만하다.” 토건형 머리에 박정희를 우상으로 굳건히 모신 이명박이라면 대한민국 역사 중심에 그를 좌정시킬 명분은 충분하다. 이는 동작동 국립현충원 전체 형국이 박정희 묘소를 기축으로 짜인 느낌을 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느낌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곳에 드리워진 저급하고 치졸한 음모 그림자를 감지한다. 박정희를 부풀리면 당연히 우그러뜨리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시간 순서를 따라 그저 눈에 띄는 대로만 제시하더라도 이렇다: 3·1혁명, 임시정부, 국권 상실기 동안 개인 또는 조직이 한 무장 투쟁, 군정, 이승만 정권 성립 과정과 실정, 박정희 쿠데타 과정과 실정, 전두환 반란·집권 과정과 실정. 중요한 진실은 아예 누락시킨 흔적이 뚜렷하다. 무엇보다 서사 전체에 흐름과 동이 없고 시대별 배열에서 멈춘 부박한 풍경 때문에, 자꾸만 혀를 차게 된다. 올바른 생각하는 사학자 단 한 명이라도 이 일에 참여시켰을지 의문이다.

 

목소리 지니지 못한 무지렁이라 아무 힘도 쓸 수 없으니 더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이나 하며 돌아선다. 깊은숨 쉬고 나서 되돌아보다가 기이한 표지석을 본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라고 붓글씨로 쓰고 서명했는데 대한민국역사박물관글씨와 서명한 글씨가 다르다. 누가 써주거나 집자한 글씨에 서명만 한 거다. 실소를 금하기에는 사태가 너무 어맹뿌스럽다. 본명 음각, 아호 양각 형식 갖춘 낙관이 있다는 사실마저 웃음을 자아낸다. 글씨 수준으로 봐서 진품인지 의심스럽기도 하거니와 아호가 청계라는 사실에 더욱 배꼽이 요동한다. 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홀가분하게 작별할 며리를 찾았으니 미련 없다.


 

나와서 소주 한잔 마시며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더 확실한 증거와 맞닥뜨린다. ‘기레기출신으로 엄청난 관운을 누린 김진현이란 자가 쓰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펴낸 잡서 대한민국 100년 통사 1948~2048이다. 제목 자체가 황당하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출발했다는 뉴라이트 주장에다가 역사라면서 2048년은 또 뭔가. 이승만과 박정희를 두둔하고, 5·18을 반동·반역이라 매도하고, 심지어 민주주의조차 왜곡했다. 사진 자료에서 독도를 삭제했다. 역사학과 아무 관련 없는 부역 정권 전직 관료에게 대한민국 역사 집필을 맡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측은 명백한 매국·반란 집단이다. 이참에 갈아엎어야 한다.


 

지난 3년여 제국주의를 한무릎공부하며 강력한 시간속에서 뒹굴었다. 제국에 부역해 떵떵거리며 주류로 군림해 온 매국 엘리트가 얼마나 어떻게 나라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아버린 이 시간은 맹렬하게 아프고 쓰라린 독극물이었다. 그 와중에 일제에 무릎 꿇은 악귀 명신이 패거리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고 나는 그때부터 이제까지 광장을 배회하고 있다. 오늘로 네 번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밟고 치욕을 곱씹으며 나 또한 무지렁이나마 불가피한 부역자임을 통감한다. 통감으로 묻는다: 각성한 부역자가 설 곳은 어딘가. 그곳을 제대로 찾아왔는가. 거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기이하든 당연하든, 내 제국주의 공부 길과 부역자 각성은 숲에서 열렸다. 눈 덮인 골짜기에서 길을 잃고 생사를 넘나들다가 홀연히 깨달은 진실이었다. 이후 자연과 문명, 숲과 인간 사회·역사 사이를 가로지르며 예 엎드리고 낙 놀았다. 그 과정에서 시나브로 헨둥하게 내가 풀빛 무당이라는 일심에 도달했다. 내가 설 곳은 그러므로 마주 가장자리, 그러니까 변두리다. 사람 성공에 온통 녹아들 수도, 숲 번성으로 통째 스며들 수도 없는 운명이 자리 잡아야 할 틈새다. 그 틈새라야 옹글고도 괭한 화쟁(和諍) 무애자재(無碍自在) 삶을 닦아갈 수 있다. 여생은 그렇게 겸허와 자긍을 함께 안아 기려 보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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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부르키나파소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 사헬 지역에 있는, 한반도(22.3만㎢)보다 좀 더 넓은 영토(27.4만㎢)를 지니고 있으며 2024년 기준 인구 2,355만의 나라다. 최근 여기서 정변이 매우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저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부르키나파소에서 현 정권을 전복하려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년 전부터 이 나라에 관심을 가져온 터라서 어찌 된 일인지 매체를 통해서 알아보려고 일단 구글을 통해서 국내에는 어떤 관련 소식이 보도되고 있는지 살펴봤으나 지난 일주일 이상 국내 매체에 부르키나파소와 관련된 기사는 202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16강 경기에서 ‘디펜딩 챔피언’ 코트디부아르가 부르키나파소를 3:0으로 완파하고 8강에 진출했다는 내용 말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부르키나파소에서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마두로 대통령 내외 납치 폭거가 일어난 날과 똑같은 1월 3일 밤 국가수반을 제거하려 한 쿠데타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언론은 물론이고 세계 유수 언론도 전혀 다루지 않아서 주목받지 못한 것 같으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3∼4일 밤에 중대한 사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 언론 세력이 글로벌 매체 지형을 장악하고 있어서 주요 사안도 세계인의 관심 밖으로 밀리는 일이 많다 보니, 부르키나파소의 정변도 그런 식으로 처리되었을 공산이 없지 않다. 그래도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브라힘 트라오레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4일 새벽 1시에 부르키나파소의 남녀노소 수천 명이 자다 말고 거리로 뛰쳐나왔다고 아프리카의 일부 매체는 전하고 있다. 재작년 12월 3일 친위 쿠데타를 획책한 윤석열의 계엄 직후 서울에서 시민들이 자정 넘어 국회로 몰려든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브라힘 트라오레는 부르키나파소의 현 국가 지도자다. 그는 군 대위 출신으로 2022년 1월에 폴-앙리 산다오고 다미바 중령이 주도한 쿠데타 정부에 참여했으나 다미바의 정책 노선에 반대해 9월 30일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임시 대통령직을 맡아 오늘에 이른다. 박정희와 전두환 등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이후 군부독재를 행사한 것을 익히 봐온 한국인으로서는 트라오레도 같은 부류려니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트라오레는 지금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며 역시 최근에 쿠데타로 친서방 정권을 무너뜨린 니제르, 말리와 함께 ‘사헬국가연합’을 구성해 반제국주의 투쟁을 해오고 있다. 그가 집권한 뒤 부르키나파소는 1960년의 해방 이후 자신을 계속 신식민지로 만들어 수탈해온 프랑스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국내에 주둔하던 프랑스군을 몰아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와 프랑스 등 외국 자본이 장악한 금 등 자국 자원에 대한 개발권을 국유화해 글로벌 자본의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트라오레는, 역시 군인 출신으로 1980년대에 진보적 경제 개혁과 근대화를 추진하며 전면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시도해 지지자들로부터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라고도 불린 토마 샹카라와 마찬가지로 부르키나 인민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집권 이후 트라오레 정권은 거듭되는 구데타 위협을 받아왔다. 1월 3∼4일 밤 트라오레 정권을 전복하려고 일어난 쿠데타는 2022년 1월의 쿠데타로 집권한 뒤 친제국주의 노선을 견지하다가 축출당해 부르키나파소 남쪽의 토고에 망명해 있는 다미바의 세력이 시도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다미바는 부르키나파소의 이전 통치자들과 마찬가지로 친서방, 친프랑스 성향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4일 밤 1시에 수천 명의 부르키나인이 거리에 뛰쳐나온 것은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인민의 저항이 만만치 않고, 트라오레에 대한 지지가 그만큼 강력하다는 말일 것이다.
아래는 미랄 아스카르(Miral Askar)가 자신의 서브스택에 올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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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수천 명의 평범한 시민들—노동자, 학생, 노인들—이 대통령궁으로 행진해 몸을 드러내고 비무장 상태로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인간 방패가 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다. 우리는 오늘날 이런 종류의 지도력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온 인민이 그를 위해 총알받이가 되려고 새벽 1시에 일어날 만큼 인민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 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지도자”는 벙커나 호화로운 궁전에 숨어 파리나 워싱턴의 최고 입찰자에게 자기 나라의 영혼을 팔아넘긴다. 트라오레는 다르다. 그는 대위 월급으로 살아간다. 그는 어려운 나라는 정치적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다며 장관들의 급여를 삭감했다. 그는 광산을 국유화하고 정유 시설을 건설하여 부가 실제로 국민의 손에 들어가도록 했다. 그는 기타 세계가 서방 원조를 간청하던 2025년에 자국의 식량 자급률을 달성했다.
우리는 “중개인”―자국민의 대표하기보다는 외국 기업의 지역 관리자처럼 행동하는 정치인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자국민이 식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다보스 포럼에서 한 자리나 얻으려고 나라의 광물 채굴권을 포기하는 “지도자들”을 본다.
인민이 한 정치인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가? 국민 삶의 질은 무너지는데도 임기 내내 IMF 대출과 “투자자 신뢰”만 좇는 정치인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모든 행동과 희생을 통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인에게만 그런 일이 일어날 뿐이다.
서구에서 가르치는 “민주주의”란 통상 흔히 계획적인 약탈을 감춘 가면일 뿐이라는 사실을 세계는 깨닫고 있다. 우리는 말만 화려하고 실제로 내놓을 것은 없는 “전문” 정치인들에게 질렸다. 우리는 매수되지 않고 굴복하지 않으며, 나라의 자원을 개인의 상속 재산이 아닌 신성한 신탁으로 여기는 지도자를 찾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어젯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지도자를 만났을 때, 인민은 그를 지키는 요새가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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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오레는 지난 연말 ‘사헬국가연합’의 통합부대 창설 며칠 뒤에 열린 말리, 니제르, 부르키나파소 통합 정상회담에서 사헬 국가들의 주권을 침해하고 지역 불안정을 획책하려는 외부 위협, 폭력, 경제 압력이 강화될 것임을 경고하며 “검은 겨울”이 다가온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쿠데타 시도는 그의 경고가 틀린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하지만 민중이 전선에 앞장서면 반제국주의 투쟁도 힘을 받을 수 있다. 지난 3일의 트라오레 정권 전복 쿠데타 세력이 실패한 데에는 한밤중에 수천 명 인민이 거리에 나와 반제국주의 운동을 지원한 것도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다. 윤석열의 쿠데타 시도가 2024년 12월 3일 한국에서 실패한 것 또한 시민들이 나섰기 때문이 아닌가.
지금 베네수엘라에서도 미 침략군에 납치돼 간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는 인민의 물결이 거리를 휩쓸고 있다. 마두로와 그를 대신해서 대통령 대행이 되어 미국과 맞선 델시 로드리게스에 대한 베네수엘라 인민의 지지도 굳건해 보인다. 베네수엘라에서 부르키나파소까지, 부르키나파소에서 베네수엘라까지 반제국주의 투쟁이 승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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