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하든 당연하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최근까지 전혀 내 관심 밖이었다. 이는 필경 자칭 과학이라 하는 양의학에 코웃음 날리는 심사가 허울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번져서지 싶다. 전혀 엉뚱한 계기로 처음 그곳을 찾았다. 옥상 공원 전망 좋다는 말을 듣고 거기서 백악산과 경복궁을 볼 심산이었다. 내려오다가 별생각 없이 역사관을 일별했다. 아무 느낌이 나지 않는 나열처럼 다가왔다. 겉만 훑은 채 내려왔다. 입구에서 어떤 충격과 맞닥뜨리기 전까지 나는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을 일거에 뒤집어버린 충격은 이명박이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건립하도록 했다는 모멸 어린 사실이었다.


 

이명박이 입김이 쐬어진 대한민국 역사라면 분명한 뒤틀림이 도사리고 있을 터이다. 다음 주에 나는 작심하고 다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찾는다. 좀 더 정색하고 좀 더 천천히 더듬어간다. 나중에 다시 보면서 정확히 판단하는 데에 필요한 자료를 사진에 담는다. 문제점을 나누어 정리하기 전에 가장 큰 느낌 한 가지를 먼저 이야기한다. “이 역사박물관은 박정희에게 바친 오마주라고 할 만하다.” 토건형 머리에 박정희를 우상으로 굳건히 모신 이명박이라면 대한민국 역사 중심에 그를 좌정시킬 명분은 충분하다. 이는 동작동 국립현충원 전체 형국이 박정희 묘소를 기축으로 짜인 느낌을 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느낌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곳에 드리워진 저급하고 치졸한 음모 그림자를 감지한다. 박정희를 부풀리면 당연히 우그러뜨리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시간 순서를 따라 그저 눈에 띄는 대로만 제시하더라도 이렇다: 3·1혁명, 임시정부, 국권 상실기 동안 개인 또는 조직이 한 무장 투쟁, 군정, 이승만 정권 성립 과정과 실정, 박정희 쿠데타 과정과 실정, 전두환 반란·집권 과정과 실정. 중요한 진실은 아예 누락시킨 흔적이 뚜렷하다. 무엇보다 서사 전체에 흐름과 동이 없고 시대별 배열에서 멈춘 부박한 풍경 때문에, 자꾸만 혀를 차게 된다. 올바른 생각하는 사학자 단 한 명이라도 이 일에 참여시켰을지 의문이다.

 

목소리 지니지 못한 무지렁이라 아무 힘도 쓸 수 없으니 더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이나 하며 돌아선다. 깊은숨 쉬고 나서 되돌아보다가 기이한 표지석을 본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라고 붓글씨로 쓰고 서명했는데 대한민국역사박물관글씨와 서명한 글씨가 다르다. 누가 써주거나 집자한 글씨에 서명만 한 거다. 실소를 금하기에는 사태가 너무 어맹뿌스럽다. 본명 음각, 아호 양각 형식 갖춘 낙관이 있다는 사실마저 웃음을 자아낸다. 글씨 수준으로 봐서 진품인지 의심스럽기도 하거니와 아호가 청계라는 사실에 더욱 배꼽이 요동한다. 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홀가분하게 작별할 며리를 찾았으니 미련 없다.


 

나와서 소주 한잔 마시며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더 확실한 증거와 맞닥뜨린다. ‘기레기출신으로 엄청난 관운을 누린 김진현이란 자가 쓰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펴낸 잡서 대한민국 100년 통사 1948~2048이다. 제목 자체가 황당하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출발했다는 뉴라이트 주장에다가 역사라면서 2048년은 또 뭔가. 이승만과 박정희를 두둔하고, 5·18을 반동·반역이라 매도하고, 심지어 민주주의조차 왜곡했다. 사진 자료에서 독도를 삭제했다. 역사학과 아무 관련 없는 부역 정권 전직 관료에게 대한민국 역사 집필을 맡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측은 명백한 매국·반란 집단이다. 이참에 갈아엎어야 한다.


 

지난 3년여 제국주의를 한무릎공부하며 강력한 시간속에서 뒹굴었다. 제국에 부역해 떵떵거리며 주류로 군림해 온 매국 엘리트가 얼마나 어떻게 나라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아버린 이 시간은 맹렬하게 아프고 쓰라린 독극물이었다. 그 와중에 일제에 무릎 꿇은 악귀 명신이 패거리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고 나는 그때부터 이제까지 광장을 배회하고 있다. 오늘로 네 번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밟고 치욕을 곱씹으며 나 또한 무지렁이나마 불가피한 부역자임을 통감한다. 통감으로 묻는다: 각성한 부역자가 설 곳은 어딘가. 그곳을 제대로 찾아왔는가. 거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기이하든 당연하든, 내 제국주의 공부 길과 부역자 각성은 숲에서 열렸다. 눈 덮인 골짜기에서 길을 잃고 생사를 넘나들다가 홀연히 깨달은 진실이었다. 이후 자연과 문명, 숲과 인간 사회·역사 사이를 가로지르며 예 엎드리고 낙 놀았다. 그 과정에서 시나브로 헨둥하게 내가 풀빛 무당이라는 일심에 도달했다. 내가 설 곳은 그러므로 마주 가장자리, 그러니까 변두리다. 사람 성공에 온통 녹아들 수도, 숲 번성으로 통째 스며들 수도 없는 운명이 자리 잡아야 할 틈새다. 그 틈새라야 옹글고도 괭한 화쟁(和諍) 무애자재(無碍自在) 삶을 닦아갈 수 있다. 여생은 그렇게 겸허와 자긍을 함께 안아 기려 보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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