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학 연구자 이소영이 쓴 『식물에 관한 오해』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훼손하기 좋을 만한 대상을 눈으로 고르는 데에 종 특유의 똑똑함을 발휘한다.” 나는 이 한 문장을 발견하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고 대뜸 알아차린다. 이 책을 발견하는 과정에 식물과 그 이전 생명들이 지은 팡이실이(hyphaeing), 곧 networking이 작동했음 또한 알아차린다.
30분가량 숲을 걷는 출근길 가에 오동나무 노거수가 있다. 언젠가부터 그 앞에 후계목 한 그루가 자라고 있어 유심히 보면서 지나다녔다. 변화 과정이 눈에 띌 때는 사진에 담아 두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듬지가 뜯겨 나간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다. 놀라움보다 먼저 솟구친 감정은 맹렬한 분노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커다랗게 소리치고 말았다. “어떤 새끼야?!”
남은 줄기는 서서히 푸른빛을 잃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보니 잘려 나간 바로 아래 양쪽에서 새 줄기 둘이 돋아 자라나고 있었다. 감동에 겨워 손뼉을 쳤다. 다음 순간, 걱정이 들이닥친다. 얘들도 누군가 꺾어버리지 않을까? 얼마 뒤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더 세게 욕을 퍼부어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하릴없이 다음 봄을 기다린다. 생명은 포기하지 않으니까.

이듬해 봄. 밑동 길지를 택한 새 줄기가 중력과 맞짱 뜨며 옹골차게 수직으로 솟아오른다. 그리고 셋으로 분기한다. 이번만큼은 안 된다. 나는 그들이 사람 눈길을 끌지 않도록 다른 풀과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위장해 준다. 그러나 그게 통할 리 없다. 또 불길한 생각에 빠져드는 나를 어쩌지 못한다. 걱정은 또 그렇게 현실이 되고 만다. 새 줄기 셋이 몽땅 잘려 나갔다.


“왜 자꾸 이러는데?!” 빽 소리를 친다. 순간, 동일인 소행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렇다면 이는 분명한 살해 의도를 가지고 저질렀음이 틀림없다. 이번에는 정말 궁금했다. “정말 왜 이럴까?” 즉답을 찾지 못한다. 이런저런 추론과 상상을 해보지만, 며칠 동안 속만 시끄러울 뿐이다. 그러다가 광화문 교보에서 『식물에 관한 오해』와 마주한다. 그 의문과 무관했음은 물론이다.
전혀 다른 생각으로 읽어 거의 끄트머리 <왜 식물에 낙서를 할까>에 다다른다. 낙서도 훼손이고 훼손 극한은 살해니까 큰 문맥에서는 앞에 인용한 문장 하나쯤 예상하지 못할 바 아니나, 바로 앞뒤를 잇는 치밀 문맥상으로는 오히려 없어야 매끄러울 문장이 보편 경구처럼 좌정하고 있다. 저자가 어떤 의도로 썼는지 짐작은 할 만 하지만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돌출성이 크다.
이 큰 돌출성이야말로 내게는 벼락같은 화두로 작용한 선물이었다. 마치 장량을 깨우치기 위해 던져놓은 황석공(黃石公) 신발이나 시각 같다고나 할까. 나는 이 문장을 부둥켜안고 사유를 재우친다. 단도직입 번역한다. “인간은 특악한 훼손(살해) 본성을 지닌다.” 그 본성은 고대와 근대 두 번에 걸친 광범위한 이주 정착형 제국주의 물결이 구성하고 극한으로 증폭시켰다.
제국주의는 인간이 지닌 공동체 본성을 파괴한다. 공동체 본성은 상생 평등 네트워킹이다. 상생 평등 네트워킹을 일극 지배 계급구조로 대체한 제국은 필요 넘어 축적하기 위해 제국 바깥 모든 세계를 함부로 대놓고 훼손하고 살해한다. 진보, 성장, 그리고 구원이란 주술을 써먹더니 이제는 쾌감만을 위해서도 타자를 훼손하고 살해한다. 훼손과 살해는 익숙한 생활 양식이다.
숲을 걷는 인간에게 길가 어린 오동나무 한 그루란 대체 무엇인가. 그 인간은 왜 거듭해서 그 어린 생명을 훼손하고 우듬지를 살해했을까. 그 작은 나무가 위험해선가. 그 짓이 건강에 좋아선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혹 그 짓이 재미있어선가. 부자 동네 아파트에서 병아리를 떨어뜨려 죽이는 아이들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훼손과 살해는 제국 일상 속 ‘목록’ 행위다.
근원으로 다가가 생각하면 생명은 다른 생명을 살해함으로써 제 생명을 유지한다는 진실에 닿는다. 이 불가피성에 짝하여 불가결한 대칭 진실을 유념할 일이다. 생명을 위한 일이 아니라면 살해는 엄금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최소한의 살해를 최대한의 예를 갖추어 행해야 한다. 제국 주구가 된 인간만이 탐욕과 오락을 한껏 부추기는 살해를 자행한다. 엎어야 모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