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옛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1989년에 만났으니 긴 인연이다. 백두산 천지와 술 한 병 찍은 사진을 첨부하고 선생님과 함께하려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식 건배주 들쭉술 들고 갑니다.’라고 썼다. 제자도 제자지만 말로만 듣던 들쭉술이라니 반갑기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런 만남은 유쾌란 표현에 욱여넣기 힘들 만큼 기분을 흔들어 띄운다.

 


그도 세월 바람에 앞 머리카락 대부분을 내어준 나이가 됐다. 내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니^^ 같이 늙어간다고 말해도 될 성싶다. 여러 해 외국살이하다가 최근 아주 돌아와 제천 어디쯤 정착했다. 큰돈은 아니지만, 노후 걱정 없을 정도는 돼 느긋하다. 그래서 뜻 맞는 사람들과 백두산 여행도 했다. 여행 중 우연히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다 문득 나를 떠올렸다 한다.

 

재학 중 입대해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 절차를 밟으러 학교에 왔다가 현수막을 보고 홀린 듯 이끌려 내 강의를 들은 그는 바로 거기서 기존 가치가 무너지고 새 삶이 열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렇게 출발한 선연은 그 20년쯤 뒤 다른 모습으로 재현됐다. 혼신으로 쌓아 올린 경력과 부가 단칼에 날아가 자살로 내몰릴 때 나를 찾아와 기적처럼 안정을 찾으며 회복됐다.

 

그때 선생님 아니셨으면 저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나는 들쭉술 한 잔 그득히 따라주며 말했다. “네 복이야.” 이어서 그가 말했다. “문형배에게 김장하 어른보다 제게 선생님은 더 육중한 어른이신데 제가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서 선생님을 빛나게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가 그득히 따라주는 들쭉술 한 잔 받으며 내가 말했다. “내 몫이야.”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로이카 2025-09-05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선생님이시군요. ^^
 



 

종묘 넘어 급기야는 달까지 모독한 명신이 광란에 맞서 광장을 향하는 발걸음이 오늘로 35번째다. 서투른 주제에 끝까지 사특함을 극단으로 구사하며 야비다리 치는 그를 그냥 본디 그런 년이야!’ 하고 넘길 수 없어 구속수감 이후 잠시 쉬다가 다시 나온다. ·타가 오지 않는지, 알량한 주술을 여전히 신봉해선지, 그 상판에서는 마약 그림자 빼곤 짐작 불능한 표정만 질질 배어 나온다. ·괴 이전 야생 풍모를 떠올리며 상상해 보지만 당최 그 언행을 따라잡을 도리가 없다.

 

한풀 꺾였다면서도 펄펄 끓어대는 날씨뿐만 아니라 시커먼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이글거리는 촛불들도 여전히 뜨겁다. 촛불들은 마치 나머지 엿새가 휴일이고 이 한 날이 평일이라는 듯, 여기가 마치 몸 바칠 직장이기라도 한 듯 집중하고 몰입한다. 늘 그래 왔지만, 오늘따라 부쩍 궁금해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여기서 펼치는 삶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민주주의가 자신에게 무엇인지, 누구나 말하는 행복을 이 순간 구가하는지···. 궁금증이 무슨 통증처럼 속살을 파고든다.


 

이 궁금증이 실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나를 향한다. 변방 무지렁이로 서성대는 주제인 내게도 만만치 않은 질문인데 행진 선두와 중심에 선 저들에게야 얼마나 육중한 질문일까. 문득 가슴에 차오르는 뜨거운 물기운을 느낀다. 차마 눈물로 빚어지지는 못한 채 먹먹한 덩어리로 한참을 머무른다. 이러다간 홀로 소주 한잔 청하지 싶어 살며시 대열을 벗어난다. 행진을 계속하는 촛불들이나 거기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나나 크게 보면 모두 떠도는 존재다. 목적지를 누가 알겠나.

 

그나마 정색하고 좀 일찍 귀가하는 까닭은 엊그제 이사를 해서 집안이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정리해 놓으면 내일 일이 쉬워지고 그렇게 내일 하루 정리하면 마무리를 앞당길 수 있으리라. 70년 동안 이사 횟수가 35번을 썩 넘겼으니 한 집에서 2년을 채 살지 못한 셈이다. 그야말로 방랑 인생이다. 고단하지만 나는 이 삶을 반제국주의 생활 양식으로 섭새김하며 나아간다. ‘개인사가 정치사다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든 날카롭다. 발 베일 터이니 그 칼날 위에 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좋아한다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만큼 나는 술을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대뜸 술부터 떠올린다. 서양 사람 기준으로 보면 알코올 중독 표지겠지만, 나는 행복하게 음식 먹는 자리에 술을 금상첨화로 얹는다. 술을 마시려고 좋은 안주 찾는 일은 없다. 결국 내 음주는 반주다. 백반집에서 저녁 식사할 때 반주를 곁들인다.

 

가끔은 남겨 놓았다가 다음날 마시기도 한다. 어느 날인가 기억에 의존해 술 냉장고 문을 여니 같은 상품 거의 같은 양 남겨진 술병이 둘 있다. 신경 쓰지 않고 둘 중 하나를 집어와도 별일 없을 테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내 성품 따라 잠시 망설인다. 이내 구별 방법이 떠오른다. 남길 때 술병 뚜껑에 하는 작은 내 행동 덕분이다.

 

뚜껑을 온전히 분리할 때는 날카로운 톱니 모양 이음새가 남는다. 이치상 그 이음새는 바깥으로 휘어진다. 자칫하면 손을 벨 수도 있다. 살짝 두드려 안쪽으로 조금 밀어 넣으면 안전하다. 오래된 내 습관이다. 이런 습관을 지닌 사람이 나 말고는 없으리란 전제하에 둘을 비교한다. 비교는 적중한다. 사소하지만 내밀한 슬기로 여긴다.


 

내가 이런 습관을 쟁여놓은 곡절이 있다. 영유아기부터 나는 내 삶 모든 과제를 거의 혼자 힘으로 해결해 왔다. 부모가 이끌고 함께 하고 뒷감당해 주지 않아서다. 예컨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대학과 대학원을 네 곳 나왔는데 부모가 등록금 준 적은 두 번뿐이다. 늘 모든 상황에 주의하고 대비해야 했으므로 내게 신중은 디폴트다.

 

물론 이 디폴트는 비대칭 대칭으로 작용한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준 기본 동력이기도 하고 나를 깊은 우울장애에 빠지게 한 병인이기도 하다. 성할 땐 신중이지만, 아플 땐 결정 장애. 이 줄타기가 주는 곤경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칠십 년 동안 갈마들며 이 둘은 결국 내 인격 기조를 이룬다.

 

남겨진 술을 천천히 마시면서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본다. 여느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한 삶은 아니다. 여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성취가 있다. 그 성취는 내밀하면서도 객관 근거를 지닌다. 그 근거에 여느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 따름이다. 유감없음을 넘어 사뭇 감사하다. 내가 나일 수 있었으므로. _()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원예학 연구자 이소영이 쓴 식물에 관한 오해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훼손하기 좋을 만한 대상을 눈으로 고르는 데에 종 특유의 똑똑함을 발휘한다.” 나는 이 한 문장을 발견하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고 대뜸 알아차린다. 이 책을 발견하는 과정에 식물과 그 이전 생명들이 지은 팡이실이(hyphaeing), networking이 작동했음 또한 알아차린다.

 

30분가량 숲을 걷는 출근길 가에 오동나무 노거수가 있다. 언젠가부터 그 앞에 후계목 한 그루가 자라고 있어 유심히 보면서 지나다녔다. 변화 과정이 눈에 띌 때는 사진에 담아 두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듬지가 뜯겨 나간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다. 놀라움보다 먼저 솟구친 감정은 맹렬한 분노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커다랗게 소리치고 말았다. “어떤 새끼야?!”

 

남은 줄기는 서서히 푸른빛을 잃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보니 잘려 나간 바로 아래 양쪽에서 새 줄기 둘이 돋아 자라나고 있었다. 감동에 겨워 손뼉을 쳤다. 다음 순간, 걱정이 들이닥친다. 얘들도 누군가 꺾어버리지 않을까? 얼마 뒤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더 세게 욕을 퍼부어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하릴없이 다음 봄을 기다린다. 생명은 포기하지 않으니까.



이듬해 봄. 밑동 길지를 택한 새 줄기가 중력과 맞짱 뜨며 옹골차게 수직으로 솟아오른다. 그리고 셋으로 분기한다. 이번만큼은 안 된다. 나는 그들이 사람 눈길을 끌지 않도록 다른 풀과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위장해 준다. 그러나 그게 통할 리 없다. 또 불길한 생각에 빠져드는 나를 어쩌지 못한다. 걱정은 또 그렇게 현실이 되고 만다. 새 줄기 셋이 몽땅 잘려 나갔다.



 

왜 자꾸 이러는데?!” 빽 소리를 친다. 순간, 동일인 소행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렇다면 이는 분명한 살해 의도를 가지고 저질렀음이 틀림없다. 이번에는 정말 궁금했다. “정말 왜 이럴까?” 즉답을 찾지 못한다. 이런저런 추론과 상상을 해보지만, 며칠 동안 속만 시끄러울 뿐이다. 그러다가 광화문 교보에서 식물에 관한 오해와 마주한다. 그 의문과 무관했음은 물론이다.

 

전혀 다른 생각으로 읽어 거의 끄트머리 <왜 식물에 낙서를 할까>에 다다른다. 낙서도 훼손이고 훼손 극한은 살해니까 큰 문맥에서는 앞에 인용한 문장 하나쯤 예상하지 못할 바 아니나, 바로 앞뒤를 잇는 치밀 문맥상으로는 오히려 없어야 매끄러울 문장이 보편 경구처럼 좌정하고 있다. 저자가 어떤 의도로 썼는지 짐작은 할 만 하지만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돌출성이 크다.

 

이 큰 돌출성이야말로 내게는 벼락같은 화두로 작용한 선물이었다. 마치 장량을 깨우치기 위해 던져놓은 황석공(黃石公) 신발이나 시각 같다고나 할까. 나는 이 문장을 부둥켜안고 사유를 재우친다. 단도직입 번역한다. “인간은 특악한 훼손(살해) 본성을 지닌다.” 그 본성은 고대와 근대 두 번에 걸친 광범위한 이주 정착형 제국주의 물결이 구성하고 극한으로 증폭시켰다.

 

제국주의는 인간이 지닌 공동체 본성을 파괴한다. 공동체 본성은 상생 평등 네트워킹이다. 상생 평등 네트워킹을 일극 지배 계급구조로 대체한 제국은 필요 넘어 축적하기 위해 제국 바깥 모든 세계를 함부로 대놓고 훼손하고 살해한다. 진보, 성장, 그리고 구원이란 주술을 써먹더니 이제는 쾌감만을 위해서도 타자를 훼손하고 살해한다. 훼손과 살해는 익숙한 생활 양식이다.

 

숲을 걷는 인간에게 길가 어린 오동나무 한 그루란 대체 무엇인가. 그 인간은 왜 거듭해서 그 어린 생명을 훼손하고 우듬지를 살해했을까. 그 작은 나무가 위험해선가. 그 짓이 건강에 좋아선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혹 그 짓이 재미있어선가. 부자 동네 아파트에서 병아리를 떨어뜨려 죽이는 아이들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훼손과 살해는 제국 일상 속 목록행위다.

 

근원으로 다가가 생각하면 생명은 다른 생명을 살해함으로써 제 생명을 유지한다는 진실에 닿는다. 이 불가피성에 짝하여 불가결한 대칭 진실을 유념할 일이다. 생명을 위한 일이 아니라면 살해는 엄금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최소한의 살해를 최대한의 예를 갖추어 행해야 한다. 제국 주구가 된 인간만이 탐욕과 오락을 한껏 부추기는 살해를 자행한다. 엎어야 모두 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