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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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부정 감정의 독침을 맞은 병·······

  ·······있는 그대로 현실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지점부터 치유가 일어납니다. 어떤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평가하고 비판하는 틀에 얽매여 있는 한 마음의 병은 근본적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아니 도리어 더 굳센 힘으로 옭죄어 듭니다.

  부정 감정 에너지만큼 더 큰 힘이 어디 있을까요? 웬만한 이성, 의지를 단 한 방에 쓰러뜨리지요. 게다가 반복되어 일단 습관을 형성하면 더욱 큰 세력으로 자랍니다. 그것은 전천후의 인지 도식이 되어 모든 부정적 생각을 자동으로 일으킵니다. 자기혐오, 수치심, 죄책감, 열등감, 파괴적 희생.

  우울증에 휩싸여 고통 한가운데 계신 벗이여, 무엇보다 먼저 이렇게 하십시오. 그대의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고 천천히 말해줍니다.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원하든 아니든, 인정하든 아니든 그대의 삶에 이미 자리 잡은 우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 어떤 평가도 금한 채 고요히 고개만 끄덕여주세요. 바로 그 찰나, 우울은 적에서 동지로 변신을 시작합니다.(64-66쪽)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설마 지금 죽겠나.’ 하면서 태평하게(!) 살듯, ‘설마 암에 걸리겠나.’ 하면서 태평하게(!) 살아가는 게 우리 일상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류의 1/3에 가까운 23억이 암으로 투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멸절의 징후입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과학·의학·약학의 눈부신 발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왜 아직 인류는 암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자본이 의·약학과 병원을 점령하여 암을 산업으로 키우고 있는 것이 직접적 원인임은 물론입니다. 암을 완치하는 의·약학적 기술 개발은 수천 조에 달하는 암 시장을 포기하는 일이므로 자본이 이를 좌시할 리 없습니다. 수술, 방사선, 화학요법 따위로 시장 규모 늘이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근본적 원인이 있습니다. 암 증상 자체를 병으로 보고 이를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취급하는 의학적 인식론의 오류가 그것입니다. 암은 이치상 일종의 방어반응, 아니 어쩌면 자연치유반응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암을 유발한 원인을 찾아 생명의 방어력 또는 자연치유력을 북돋우는 길을 찾는 것이 발본의 치료입니다. 서구의학은 결코 이런 사유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암은 부정해야 할 어둠이며 적이며 악이며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직 째고 자르고 쏘고 차단하는 전투만을 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들의 이런 부정에 대한 비타협적 공격, 긍정에 대한 강박적 집착이 인류를 결국 멸절시키고 말 것입니다.


부정은 세계 진실의 한 축입니다. 부정은 실재입니다. 부정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엄연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데서 모든 문제의 해결이 시작됩니다. 암이라는 부정이 그러하듯 우울증 또한 부정감정의 무한증식이 요체입니다. 우울증은 “자기혐오, 수치심, 죄책감, 열등감, 파괴적 희생” 들과 같은 부정감정이 팽창되어 격정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그런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고 나서는 그런 자신을 다시 혐오하고, 수치스러워하고, 책망하고, 업신여기고, 희생시킵니다. 무한증식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서양 의학이 우울증을 대하는 자세는 암을 대하는 자세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부정감정을 없애기 위해 약물로 뇌에 화학요법을 쓰고, 긍정주의에 입각한 ‘수술’ 식, ‘방사선’ 식 인지행동요법을 씁니다. 이 요법들이 반생명적이라는 사실은 암에서와 동일합니다. 아픈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 우울증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려면 이 주류적 방식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긍정주의라는 사기를 거두고 자기 삶에 이미 들어와 있는 부정의 실재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비켜서주어야 합니다. 참된 긍정은 긍정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긍정은 부정까지 함께 끌어안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大긍정입니다. 대大긍정이 참 긍정입니다. 참 긍정은 우울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무한증식을 막아 본디 모습 본디 규모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우울이 없는 삶은 광기로 가득 찰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울과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기품 있는 삶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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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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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똑똑하고 착해서 걸리는 병·······

  꽤 오래 전에 만난 젊은 여성 우울증 환자 한 분이 기억 속에 선명합니다. 그 분은 몸에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흔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자신이 못나서 부모님께도, 형제들한테도 너무나 미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분은 전혀 못나지 않았습니다. 잘난 것을 드러내지 못하는 삶을 오랫동안 살아서 스스로 또는 가족이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잘난 것을 드러내지 못했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 착해서입니다.

  착하면 왜 잘난 것을 드러내지 못할까요? 일상에서 착한 것은 도덕이나 윤리교과서에서와 달리 약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똑똑하다는 것은 머리가 좋다, 공부 잘한다, 수완이 좋다는 것과 연결된 개념이 아닙니다. 세상을 너무나 깊은 의미로 바라본다는 것과 연결된 개념입니다. 결국 삶의 정교한 스킬과 거리가 먼 유형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주위 사람들은 “영특하고 착하다”며 늘 등을 토닥여줍니다. 그러나 사실은 늘 인간의 역학관계에서 밀리고 끌려 다니기만 할 뿐입니다. 양보, 배려, 희생, 침묵, 초월, 결백, 도덕적 감수성, 거절 결핍 등의 가치들이 덕목으로 자리 잡습니다. 드디어 생활의 기조로 만성적 우울증이 정착됩니다.·······

  똑똑하고 착한 것은 너무 깊고 약한 것입니다. 이 세상과 불화하는 까닭입니다. 이 근본적 불화를 우울증이라 부를 때 우울증은 결국 소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승자와 강자만이 긍정 가치인 지금 여기에서 ‘똑똑하고 착한’ 사람은 과연 무엇으로 그 존재를 지탱해야 할까요?(62-64쪽)


우리가 쉽고 간단하게 우울증이라 부르지만 내밀하게 또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이것은 전통적인 서구(의학적) 개념 틀에 쏙 들어가는 단일 질병이 아닙니다. 질병 인지 모멘트를 중심으로 파악할 때, 가벼운 우울정서의 지속에서 정신병적 우울상태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납니다. 복잡다기한 원인이 뒤엉킨 일종의 증후군syndrome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분류 기준상 정반대인 질병과 일치하는 증상들도 지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실제 임상에서 똑같은 환우를 볼 기능성은 거의 전혀 없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각각의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증상들의 교집합이 많음에도 결국 그 핵심은 우울증이 아닌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증상들이 매우 단순하고, 그래서 아주 전형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바로 이런 전형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똑똑하고 착한 것”입니다.


우울증 앓는 사람이 “똑똑하고 착한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똑똑해서 착한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참으로 똑똑한 사람은 착합니다. 똑똑하지 못한 사람은 착하지도 못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착하지 않으면 참으로 똑똑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똑똑하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맡지 못하는 냄새를 맡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꿈꾸지 않는 것을 꿈꾼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의미를 민감하고도 깊게 추적합니다. 의미 추적은 상상력 없이 불가능합니다. 우울증의 사람은 상상력의 사람입니다. 너무나도 상상력의 사람이어서 아픈 것입니다.


평론가 황현산 선생의 트위터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빈약하고 저열한 상상력은 늘 악의를 동반한다. 세상에 대한 배려와 선의 자체가 상상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참으로 정확한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상력에서 세상에 대한 배려와 선의가 나온다는 진실은 곧 바로 똑똑해서 착하다는 이치와 일치를 이룹니다. 진정 똑똑한 사람은 세상에 대한 배려와 선의를 지닌having, 아니 사는doing 사람입니다. 공동체의 공적 어젠다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핍박당하는 사람,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의 편에 서는 사람입니다. 빈약하고 저열한 상상력으로 세상을 착취하고 악의에 찬 사람과 불화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지나쳐 병든 사람이 바로 우울증 앓는 사람입니다.


목하 대한민국은 한줌의 무리, 그러니까 늘 악의를 동반한 채 빈약하고 저열한 상상력으로 매판하고 독재하며 분단을 고착시키는 권력집단과 그 마름들이 절대다수의 건강한 상상력의 사람들을 죄다 너무나도 상상력의 사람인, 우울증 환자로 몰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250명의 아이들을 바다에 빠뜨려 죽였습니다. 중동독감을 방치·확산시켜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역사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돈 몇 푼에 덮었습니다. 급기야 행정부 수반이 수천만 시민을 노예 노동으로 내몰기 위해 거리 서명에 나서 입법부를 겁박하고 있습니다.


그대여, 진지하게 생각해보십시오. 그대는 지금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까. 손을 내밀어 우울증을 앓는 이웃과 함께 하십시오. 아픔의 연대는 이내 치유의 연대가 될 것입니다. 치유 연대는 우울을 통째 내다버리지 않습니다. 건강한 우울을 보존합니다. 건강한 우울로 상상합니다. 그 상상으로 우리 생명공동체에 대한 배려를, 선의를 한껏 고양시킵니다. 자주, 민주, 통일을 꿈꿉니다. 백전백패합니다. 백전백패 양의 축적이 최후 일승 질의 전환을 낳습니다.


문득 작가 커트 보니것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우울하지 않으면, 당신은 진지한 작가가 될 수 없다.”


이렇게 한 단어만 바꾸겠습니다.


“우울하지 않으면, 당신은 진지한 시민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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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마음병의 침전물·······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가 아닙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고갱이, 가장 무거운 지점에 자리 잡은 본질적인 병입니다. 적어도 자기 생명을 각성하는 존재인 인간인 한 그 지점에 침해를 당한 병이 바로 우울증이기 때문에 우울증은 성찰적 생명의 가장 심층에 자리한 병입니다. 어쩌면 모든 병의 침전물이 바로 우울증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이렇게 깊은 병이 그토록 쉽게 걸릴 수 있는 것일까요? 인간 생명은 관계적 소통으로써 발현되는데, 우울증은 바로 이 관계적 소통의 핵심 기전에 문제가 생긴 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관계적 소통, 즉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알아차리고, 바꾸고, 심지어 버리고, 거꾸로 확장도 합니다.

  이 역동성이 차단될 때 관계적 소통에서 상처 입은 무력한 생명이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이 바로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규정하여 상처를 정당화하는 길입니다. 바로 이 자기 부정의 도상에 주저앉은 병이 우울증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은 쉽게 걸리지만 뼈골을 파고드는 가혹한 병입니다.(61쪽)


이제는 삼척동자조차 입에 올리는 우울증은 회자될수록 오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서양식 명칭 자체도 그렇거니와 정신과 양의사서껀 얄팍한 쪼가리 정보의 백화점인 대중매체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대는 소리가 그렇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오해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우울증은 기분mood의 문제다.”


기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기분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기분이라는 표층은 마음의 심층과 절연된, 그러니까 훌러덩 벗겨내면 그만인 껍데기가 아닙니다. 기분에 스며있는 마음 생명의 요체를 포착하지 못하면 그저 프로작 의지해 한 생을 허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분만 조작하겠다는 프로작은 결국 기분도 아작낼 것입니다.


기분은 마음 생명의 최전선입니다. 본진의 전령입니다. 우울한 기분은 생명의 깊은 위기를 전해주는 파발입니다. 우울한 기분만 걷어내어skimming 우울증 치료하겠다고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반생명적 협잡입니다. 이 또한 서구 진통제의학의 한 지류입니다. 진통에 중독되게 하여 생명에서 생명다움을 수탈하는 책략입니다.


우울한 기분을 대뜸 걷어내지 않고 느긋이 품어 안으면 마음 생명의 이야기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비로소 참된 치료가 시작됩니다. 참된 치료는 이야기로 시작되고 이야기로 끝납니다. 이야기가 치료입니다. 이야기가 생명입니다. 아니, 생명이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거세하는 화학합성약물은 살인병기입니다.


지난 주말, 살인병기가 주류로 자리 잡은 우울증 판에 오아시스 같은 소식을 들고 60대 중반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네 차례 상담 받고나서 한 동안 뜸했던 분입니다. 아무 소용없다면서 안 가겠다 버티던 어느 날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순간, 그것이 상담 효과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예약을 다시 잡고 달려왔습니다. 거듭 고개를 숙였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 분은 오랫동안 학대를 내면화하면서 살아온 결과 간헐적 격분증후군에 시달렸는데 최근 어떤 결정적 시점에서 격분을 제어하는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제어는 지난날의 무조건적 억압과 다릅니다. 자기부정에 따른 전략 부재 상태의 억압과 격분 사이를 널뛰듯 넘나들다가 중도의 진실 한 자락을 붙잡은 것입니다.


상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는 고통을 스스로 드러내어 말하는 그 자체의 치유력입니다. ‘비상한’ 말에 대하여는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또 하나는 상담을 청한 사람이 상담에 응한 사람의 말과 몸짓을 새겨 넣는mirroring 것의 치유력입니다. 찰나적인 느낌과 흉내의 각인 치유력을 서구 정신의학은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해서 일어난 변화는 기분전환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아까 중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중도는 존재의 심연에 닿아 있는 진실을 포착하는 문제입니다. 생명의 가치와 고통의 의미를 묻는 문제입니다. 서구 정신의학과 다국적 제약회사의 프로작에 생명의 가치와 고통의 의미 문제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실로 한 생각 크게 돌이킬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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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에 목마른 병·······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의 무의식에는 세상 사람이 온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와 주기를 바라거나 그러리라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 즉 버림받은 존재성 위에 자리한 자기 부정, 또 그래서 생긴 진정성 애착이 빚은 감정 상태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온정에 가득 차 있지 않습니다.·······치유는 뭉클한 온정과 가혹한 비정非情 사이, 건강해서 너무나 담담한, 심지어 서늘한 거래去來를 통해 일어납니다.(59)

 

어제, 2016115일에는 진료를 조금 일찍 끝내고 <416가족의 밤>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참석했다기보다 낌새도 없이 스며들었다가 흔적도 없이 빠져나왔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제 눈에는 변호사 권영국, 배우 권효해, 그리고 416연대 박래군이 들어왔지만 그들의 눈에는 제가 들어갔을 리 없습니다. 한 쪽 구석에서 경매, 공연을 지켜보았습니다. 분위기는 매우 흥겨웠고 온기로 가득 찼습니다. 약간의 돈으로 기억하기 위한물품을 구매하였습니다. 저녁 먹기 위해 들어간 근처 식당에는 유족 몇 분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그 분들의 농담과 웃음소리가 제 마음을 톡톡 두드리며 지나갔습니다. 막걸리 한 잔 시원히 들이켜서 속을 쓸어주자 이내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그저 장사치의 마음으로 만들었을 데면스런 음식을 먹고 그저 뜨내기손님의 마음으로 담담히 일어났습니다. 오늘, 삶은 또 그렇게 뭉클한 온정과 가혹한 비정非情 사이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흔히 동반되는 질환 가운데 하나가 혈관운동신경성비염입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말하자면 이것은 몸이 차서 생기는 매우 귀찮고 성가신 병입니다. 우울증 환자의 몸이 찬 것은 그 마음이 시린 데서 연유합니다. 곡절이 무엇이든 우울증 환자의 마음 온도는 매우 낮습니다. 그 근본에는 물론 자기부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시린 마음에 휩싸여 오도카니 앉아 있는 차가운 몸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것이 바로 혈관운동신경성비염입니다.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의 주된 증상은 연거푸 들이닥치는 재채기와 말갛고 싸늘하게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콧물입니다. 둘 다 몸을 따스하게 해주기 위한 방어 작용입니다. 몸과 마음이 이렇게 서로 맞물리면서 온정을 고대합니다. 그러나 온정은 궁극의 해결이 아닙니다. 온정에 대한 목마름이 격화된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야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야 비정非情과 당당히 마주설 수 있습니다.

 

   

비정은 강고한 실재입니다. 비정은 국가로, 국가가 제정한 법으로, 법이 부여한 힘으로, 힘에 따른 살해로 우울을 광범위하게 생산·분배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대놓고 자행하고 함부로 부인하여 비정의 실재를 지웁니다. 거꾸로 안보, 청년 일자리, 국민 행복 따위의 속임수를 써서 온정의 가짜 실재를 띄웁니다. 비겁한 저널리즘은 보도를 가장한 홍보·계도, 통속한 드라마, 이른바 먹방을 비롯한 각종 잡담 프로그램으로 비정의 실재를 지웁니다. 거꾸로 해피엔딩, 힐링, 웰빙 따위의 속임수를 써서 온정의 가짜 실재를 띄웁니다. 우리는 그 동안 대통령선거부정-세월호사건-중동독감대란-역사교과서획일화책동-일본군성노예문제야합으로 이어지는 실재 비정의 공격에 형언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내상을 입었습니다. 내상이 더 깊어져 치명적으로 되기 전에 치유에 나서야 합니다. 답은 하나뿐입니다. “서늘한 거래去來”! 저들 살인집단이든 됐다, 그만하자.’ 집단이든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온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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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다만 하나의 정신적 장애가 아닙니다. 인류에게 드리워진 가장 짙고도 넓은 멸절의 그림자입니다. 사신死神의 전령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의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자기 파괴의 길을 뫼비우스 띠로 비틀어만 준다면 붓다가 말씀하신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길, 예수가 말씀하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의 길을 열 수 있습니다. 공존과 평화의 지평을 열 수 있습니다. 인류 최후의 과학이자, 종교입니다.(55쪽)


지금 서울 중랑구청에서는 한의대 의료봉사 단체가 두 달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봉사 구조를 처음 만들었고 후배들이 14년째 이어왔습니다. 오늘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잠시 돌아보고 오느라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젊은 여성 승객의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5살 무렵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었답니다. 그 상처에 눌려 고통 받던 오빠는 2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요. 며칠 전 퇴근해 돌아와 보니, 그 동안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던 할머니마저 숨져 있었답니다. 외롭고 무서워 집에 들어갈 수 없다면서 요금이 4만원을 넘어서고 있는데 일어서지를 못했습니다. 마침 걱정하던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기에 그 친구 집에 데려다주었지요. 일어서다가 그는 손을 내밀며, ‘제 아빠가 좀 돼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명함 한 장을 건넸습니다.”


택시에서 내리기 직전 저는 기사 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꼭 아빠가 되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게도 그렇게 생긴 딸이 여럿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제게는 환자로 만나 딸이 된 젊은 여성이 다섯이나 있습니다. 지금은 그들의 부모와 아이들까지 돌보며 메타가족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울증이 맺어준 낮은 연대입니다. 죽음의 비탈길로 내려가다 우연히 잡은 손에서 시절인연이 피어난 셈입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따위가 결코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가슴에 스스로 비수를 찔러 넣는 가혹한 질병입니다. 우울증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자멸할지도 모릅니다. 우울증에 대한 도저한 알아차림은 이제 불가피합니다. 죽음으로 무심코 이끌려가는 자신을 어느 찰나 알아차리고, 단도직입 스스로 육박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삶 너머가 죽음이듯, 죽음 너머가 삶이라는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에서 비로소 죽음 너머 삶의 실체가 바로 타자, 그러니까 ‘너’라는 구체적인 진실이 나옵니다. 우울증을 꿰뚫지 않으면 결코 증득할 수 없는 비밀입니다. 엄밀 과학 예서 더는 없습니다. 경이 종교 예서 더는 없습니다.


극진함으로 손 모읍니다. 부디 그 아픈 젊은이가 택시 기사 분에게 연락하기를! 부디 그 택시 기사 분의 딸이 되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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