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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 모든 마음병의 침전물·······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가 아닙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고갱이, 가장 무거운 지점에 자리 잡은 본질적인 병입니다. 적어도 자기 생명을 각성하는 존재인 인간인 한 그 지점에 침해를 당한 병이 바로 우울증이기 때문에 우울증은 성찰적 생명의 가장 심층에 자리한 병입니다. 어쩌면 모든 병의 침전물이 바로 우울증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이렇게 깊은 병이 그토록 쉽게 걸릴 수 있는 것일까요? 인간 생명은 관계적 소통으로써 발현되는데, 우울증은 바로 이 관계적 소통의 핵심 기전에 문제가 생긴 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관계적 소통, 즉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알아차리고, 바꾸고, 심지어 버리고, 거꾸로 확장도 합니다.
이 역동성이 차단될 때 관계적 소통에서 상처 입은 무력한 생명이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이 바로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규정하여 상처를 정당화하는 길입니다. 바로 이 자기 부정의 도상에 주저앉은 병이 우울증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은 쉽게 걸리지만 뼈골을 파고드는 가혹한 병입니다.(61쪽)
이제는 삼척동자조차 입에 올리는 우울증은 회자될수록 오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서양식 명칭 자체도 그렇거니와 정신과 양의사서껀 얄팍한 쪼가리 정보의 백화점인 대중매체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대는 소리가 그렇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오해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우울증은 기분mood의 문제다.”
기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기분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기분이라는 표층은 마음의 심층과 절연된, 그러니까 훌러덩 벗겨내면 그만인 껍데기가 아닙니다. 기분에 스며있는 마음 생명의 요체를 포착하지 못하면 그저 프로작 의지해 한 생을 허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분만 조작하겠다는 프로작은 결국 기분도 아작낼 것입니다.
기분은 마음 생명의 최전선입니다. 본진의 전령입니다. 우울한 기분은 생명의 깊은 위기를 전해주는 파발입니다. 우울한 기분만 걷어내어skimming 우울증 치료하겠다고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반생명적 협잡입니다. 이 또한 서구 진통제의학의 한 지류입니다. 진통에 중독되게 하여 생명에서 생명다움을 수탈하는 책략입니다.
우울한 기분을 대뜸 걷어내지 않고 느긋이 품어 안으면 마음 생명의 이야기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비로소 참된 치료가 시작됩니다. 참된 치료는 이야기로 시작되고 이야기로 끝납니다. 이야기가 치료입니다. 이야기가 생명입니다. 아니, 생명이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거세하는 화학합성약물은 살인병기입니다.
지난 주말, 살인병기가 주류로 자리 잡은 우울증 판에 오아시스 같은 소식을 들고 60대 중반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네 차례 상담 받고나서 한 동안 뜸했던 분입니다. 아무 소용없다면서 안 가겠다 버티던 어느 날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순간, 그것이 상담 효과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예약을 다시 잡고 달려왔습니다. 거듭 고개를 숙였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 분은 오랫동안 학대를 내면화하면서 살아온 결과 간헐적 격분증후군에 시달렸는데 최근 어떤 결정적 시점에서 격분을 제어하는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제어는 지난날의 무조건적 억압과 다릅니다. 자기부정에 따른 전략 부재 상태의 억압과 격분 사이를 널뛰듯 넘나들다가 중도의 진실 한 자락을 붙잡은 것입니다.
상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는 고통을 스스로 드러내어 말하는 그 자체의 치유력입니다. ‘비상한’ 말에 대하여는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또 하나는 상담을 청한 사람이 상담에 응한 사람의 말과 몸짓을 새겨 넣는mirroring 것의 치유력입니다. 찰나적인 느낌과 흉내의 각인 치유력을 서구 정신의학은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해서 일어난 변화는 기분전환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아까 중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중도는 존재의 심연에 닿아 있는 진실을 포착하는 문제입니다. 생명의 가치와 고통의 의미를 묻는 문제입니다. 서구 정신의학과 다국적 제약회사의 프로작에 생명의 가치와 고통의 의미 문제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실로 한 생각 크게 돌이킬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