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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 온정에 목마른 병·······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의 무의식에는 세상 사람이 온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와 주기를 바라거나 그러리라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 즉 버림받은 존재성 위에 자리한 자기 부정, 또 그래서 생긴 진정성 애착이 빚은 감정 상태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온정에 가득 차 있지 않습니다.·······치유는 뭉클한 온정과 가혹한 비정非情 사이, 건강해서 너무나 담담한, 심지어 서늘한 거래去來를 통해 일어납니다.(59쪽)
어제, 2016년 1월 15일에는 진료를 조금 일찍 끝내고 <416가족의 밤>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참석했다기보다 낌새도 없이 스며들었다가 흔적도 없이 빠져나왔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제 눈에는 변호사 권영국, 배우 권효해, 그리고 416연대 박래군이 들어왔지만 그들의 눈에는 제가 들어갔을 리 없습니다. 한 쪽 구석에서 경매, 공연을 지켜보았습니다. 분위기는 매우 흥겨웠고 온기로 가득 찼습니다. 약간의 돈으로 ‘기억하기 위한’ 물품을 구매하였습니다. 저녁 먹기 위해 들어간 근처 식당에는 유족 몇 분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그 분들의 농담과 웃음소리가 제 마음을 톡톡 두드리며 지나갔습니다. 막걸리 한 잔 시원히 들이켜서 속을 쓸어주자 이내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그저 장사치의 마음으로 만들었을 데면스런 음식을 먹고 그저 뜨내기손님의 마음으로 담담히 일어났습니다. 오늘, 삶은 또 그렇게 “뭉클한 온정과 가혹한 비정非情 사이”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흔히 동반되는 질환 가운데 하나가 혈관운동신경성비염입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말하자면 이것은 몸이 차서 생기는 매우 귀찮고 성가신 병입니다. 우울증 환자의 몸이 찬 것은 그 마음이 시린 데서 연유합니다. 곡절이 무엇이든 우울증 환자의 마음 온도는 매우 낮습니다. 그 근본에는 물론 “자기부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시린 마음에 휩싸여 오도카니 앉아 있는 차가운 몸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것이 바로 혈관운동신경성비염입니다.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의 주된 증상은 연거푸 들이닥치는 재채기와 말갛고 싸늘하게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콧물입니다. 둘 다 몸을 따스하게 해주기 위한 방어 작용입니다. 몸과 마음이 이렇게 서로 맞물리면서 “온정”을 고대합니다. 그러나 온정은 궁극의 해결이 아닙니다. 온정에 대한 목마름이 격화된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야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야 “비정非情”과 당당히 마주설 수 있습니다.

비정은 강고한 실재입니다. 비정은 국가로, 국가가 제정한 법으로, 법이 부여한 힘으로, 힘에 따른 살해로 우울을 광범위하게 생산·분배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대놓고 자행하고 함부로 부인하여 비정의 실재를 지웁니다. 거꾸로 안보, 청년 일자리, 국민 행복 따위의 속임수를 써서 온정의 가짜 실재를 띄웁니다. 비겁한 저널리즘은 보도를 가장한 홍보·계도, 통속한 드라마, 이른바 ‘먹방’을 비롯한 각종 잡담 프로그램으로 비정의 실재를 지웁니다. 거꾸로 해피엔딩, 힐링, 웰빙 따위의 속임수를 써서 온정의 가짜 실재를 띄웁니다. 우리는 그 동안 대통령선거부정-세월호사건-중동독감대란-역사교과서획일화책동-일본군성노예문제야합으로 이어지는 실재 비정의 공격에 형언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내상을 입었습니다. 내상이 더 깊어져 치명적으로 되기 전에 치유에 나서야 합니다. 답은 하나뿐입니다. “서늘한 거래去來”! 저들 살인집단이든 ‘됐다, 그만하자.’ 집단이든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온정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