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산과의사 - 개정판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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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의·······의료적 통제는 의료 역할의 타락·······이다.(119쪽)


지극히 진부한 말이지만 출산을 의료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은 출산을 병으로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산모와 아기를 병자로 다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병 아닌 것을 병으로 만들어 의료에 강제로 복속한 문명의 폭력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의료의 타락입니다. 또한 그 타락을 말없이 수용하는 사람들의 타락입니다.


타락은 벼락처럼 왔습니다. 1956년 저를 낳은 어머니와 그에게서 태어난 저는 병자가 아니었습니다. 1994년 제 딸을 낳은 제 아내와 그에게서 태어난 제 딸은 병자였습니다. 40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세상은 홀라당 뒤집혀버렸습니다. 무서운 기세로 진행된 의료화는 마침내 인간의 생사 전체를 점령했습니다. 타락은 전방위·전천후로 씌워진 굴레입니다.


굴레 씌워진 상태로 인간은 파멸과 개벽 사이에 섰습니다. 파멸의 조짐과 개벽의 조짐은 구별이 안 됩니다. 파멸은 당하는 것이고 개벽은 당기는 것입니다. 당하는 인간은 노예이고 당기는 인간은 자유인입니다. 노예는 눈을 감은 자고 자유인은 눈을 뜬 자입니다. 눈을 뜨면 타락한 자신과 타락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보고서야 어찌 그냥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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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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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 중의 여성이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기도하듯이 엎드린 자세일 때에 더 쉽게‘다른 세상’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115쪽)


마라톤 선수가 극한 고통 끝에 겪게 되는 황홀경runner's high이 있습니다. 참선 수행 끝에 겪는 오도의 법열도 본질이 다르지 않습니다. 깊은 학문적 연구와 사색 끝에 겪는 지평 열림의 환희 또한 같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고귀한 것은 아기를 낳는 어머니가 겪는 황홀경mother's high입니다. 전3자는 개체적 사건일 뿐이지만 어머니의 경우는 공동체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장 고귀한 황홀경으로 들어가는 ‘현관’은 어둡습니다, 좁습니다, 아프게 통과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엎드린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직립하는 인간에서 네 발로 걷는 동물의 상태, 그러니까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숙인 자세입니다. 만일 이것이 기도하는 자세라면 위대하여 높이 계신 신에게 표하는 겸손이 아니라 인간은 본디 엎드려 걷고, 기고, 흔들며 나아가는 존재, 심지어 땅속으로 뿌리 내려 한 생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서 아득히 낮은 연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진실의 흐름 전 과정에 바치는 겸허입니다. 어머니의 엎드림이 지시하는 인류 최후의 영성은 낮은 존재를 향해 무한히 번져가는 겸공謙恭입니다. 소소小小하고 미미微微한 존재에 기꺼이 스며드는 생명 감각입니다. 짓밟히고 버려지는 존재에 흔쾌히 깃드는 애틋함입니다. 참된 숭고는 위대함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소소하고 미미한 신으로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갑니다.


산업 출산이 파괴한 것은 이루 다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이 다름 아닌 이 소소하고 미미한 신의 길입니다. 사실상 전지전능한 인간집단이 사이비 전지전능의 신화를 만들어낸 어리석은 종교집단과 야합하여 세계를 허황되게 크고 훌륭한 내러티브 안에 가두어버렸습니다. 개나 소나 대박의 꿈에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물론 그 종착역은 파멸뿐입니다.


살 길은 오직 

이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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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시 아버지의 참여는 확실히 산업 출산의 일면이다.(104쪽)


·······-아버지의 참여가 출산을 돕는가, 방해하는가?

·······진통 중의 여성이 이성의 활동을 줄이고 ‘다른 세상’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는 바로 그때에 많은 남성들은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를 멈출 수가 없다.·······(105-106쪽)


·······-출산 시 아버지의 참여가 그 후의 성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현대적 기준으로 멋진 출산을 하고 몇 년 후 이혼하는 부부의 수가 많·······다.·······아기를 낳는 것이 그들의 동지애를 강화시켜주었으나 성적 매력은 사라지는 것 같다.(107-108쪽)


·······-모든 남성들이 출산에 참여하는 동안 겪을지 모르는 강한 정서적 반응에 대처할 수 있는가?

·······가정출산·······상황에서 남성의 산후우울증은·······흔하다·······(108쪽)


30년 전쯤 티베트 의학승인 다이쿠바라 야타로가 쓴 『티베트 의학의 지혜』(나중에 『병을 달래며 살아간다』로 이름을 바꿈)라는 책을 주의 기울여 읽은 적이 있습니다. 출산과 관련된 인상 깊은 내용이 기억납니다. 인디아·티베트 전통 사회에서 출산을 3주 앞둔 여성은 어두운 천막으로 들어갑니다. 빛이 차단된 상태에 적응하여 그 속에서 아기를 낳습니다. 산바라지의 1순위는 아기의 이모, 2순위는 아기의 외할머니입니다. 아기가 처음 대할 때 받는 충격을 덜어주기 위해 엄마와 가장 닮은 사람을 택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버지는 근처에 얼씬도 못 합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저는 22년 전 딸아이의 출산 때 제가 아내 옆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낯선 의사·간호사(심지어 남성간호사)보다는 아비가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딸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초기 100여 일을 제외한 150여 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제 음성으로 태교를 했습니다. 태아는 공감각능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아빠의 모습을 그려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물론 병원은 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나름 분개했습니다. 이제 보면 제가 산실로 들어가지 않은 것은 또 다른 이유에서 잘된 일이 맞습니다.


지금의 산업 출산 시스템 일부가 산모의 정서 안정 등을 근거로 아버지의 출산 참여를 권장하거니와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는 자가당착일 뿐입니다. 산업 출산 자체가 산모의 정서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출산 참여 문제를 논의할 때 아기 입장을 완전히 누락시키는 어른 중심의 프레임이 가장 큰 잘못입니다. 인디아·티베트 전통의 눈으로 볼 때, 어차피 낯선 의사, 간호사가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면 거기서 아버지가 모종의 평안을 가져다주지는 못할 듯합니다. “아버지는 아서라.” 이게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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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학자의 눈으로 출산하는 여성을 보면 산모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약물 주입 없이 혼자서 출산할 때 산모는 자신을 외부세계와 단절시키고자 하는 명백한 경향을 보이는 시기가 있다. 그때에는 일상의 사회적 생활 속에서는 감히 하지 못하는 행동, 예컨대 비명을 지르거나 욕을 하거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전혀 예상 밖의 자세를 취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를 내게 된다. 이것은 대뇌신피질의 통제력을 줄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대뇌신피질의 활동 축소는 실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출산생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면이다. 그것은 출산하는 여성은 첫째로 어떤 종류든 대뇌신피질을 자극하는 것으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뜻인가?(95쪽)


·······조용한 곳·······어두운 곳·······프라이버시가 기본적 필요다.·······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따뜻해야 한다·······아기 피부와 접촉하며 아기 눈을 마주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데 정신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96-103쪽)


출산하는 여성은 생명을 창조하는 신입니다. 비유가 아닙니다. 실재입니다. 신의 생명 창조행위 공간에 멋대로 뛰어든 인간들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신성모독을 범한 자들입니다. 신의 생명 창조 공간은 절대 고요의 공간입니다. 신의 생명 창조 공간은 절대 어둠의 공간입니다. 신의 생명 창조 공간은 절대 내밀의 공간입니다. 신의 생명 창조 공간은 절대 안정의 공간입니다. 신의 생명 창조 공간은 절대 온욱溫奧의 공간입니다. 신의 생명 창조 공간은 절대 접촉의 공간입니다. 거기서는 창조된 아기를 품어 눈을 마주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데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지성소입니다. 인간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극진히 이 지성소를 지키는 것뿐입니다. 20세기 이후 인간은 참람하게도 지성소를 허물고 가짜 생명창조 공장을 세웠습니다.


공장에서 생산된 인간은 병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장이 날 따름입니다. 고장 나면 수리합니다. 수리가 불가능하면 폐기합니다. 수리와 폐기가 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오늘 여기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단 하나의 길은 지성소를 다시 짓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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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상황은 예상 가능한 것이었고, 지식 부족으로 생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50년 전에 곤충들이 꽃가루받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고, 화학물질들이 (해충뿐만 아니라) 꿀벌 등의 익충들도 남겨두지 않으리라는 것도 이미 명백했다. 물론 소수의 ‘괴짜’ 과학자들이나 아마추어들이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질문들을 신중하게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약탈자 인간Homo super-predator'이라고 부르는 인간 변종은 지구의 미래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고, 후세의 인간들에 대해 아무런 연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허약한, 혹은 약화된 생태적 본능은 사랑하는 능력 손상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본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사랑의 능력은 어떻게 계발되는가?(89쪽)


약탈은 타락의 증거이며 타락은 약탈의 범주입니다. 『자아 폭발』에서 스티브 테일러가 말한바, 인도-유럽어족·셈족 중심의 약탈하는 인간Homo rapiens이 출현한 이래 인류역사는 약탈체계를 구축하려는 타락집단과 이를 저지하려는 타락극복집단의 투쟁으로 엮어져 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합니다. 아니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약탈이 극에 달해 인류는 물론 지구 전체가 파국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약탈하는 인간을 “Homo super-predator”라 부릅니다. 번역자는 “약탈자 인간”으로 표현했지만 이는 오역입니다. super를 누락시켰습니다. ‘초超약탈자 인간’ 또는 ‘초超포식자 인간’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이들은 “지구의 미래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고, 후세의 인간들에 대해 아무런 연민이 없”는 “인간 변종”입니다. 이들의 이런 ‘배 째라’ 식 막지莫知와 후안무치의 탕욕蕩慾이 부른 전천후 약탈은 모든 생명을 멸절의 공포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저 ‘초超약탈자 인간’만의 천국은 당분간 질탕하게 유지될 것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행한 약탈이 결국 자신한테 돌아오는 광경을. 화학물질로 꿀벌을 죽이면 식물의 죽음이 뒤따릅니다. 식물의 죽음은 동물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동물은 식물에 의존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이긴 매한가지인 인간도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약탈에 취한 인간은 이 이치를 외면합니다. 통속 드라마 속 악인의 외침이 들려옵니다.


“아, 난 이 시대가 너무 좋다! 안 되는 게 없잖아?!”


저 포만감과 전능의식의 본질은 대체 무엇일까요? “허약한, 혹은 약화된 생태적 본능”입니다. 타자의 생명을 약탈함으로써 충일해지는 에고는 생명 감각을 둔화시킵니다. 함께 사는 것만이 참된 삶의 길이라는 진실에 마음을 열지 못하게 합니다. 다시없이 파리해진 생태적 본능을 깨워 “사랑하는 능력”을 복원하려면 가장 먼저 약탈자적 자기 현실의 어둠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이 알아차림이 기본적인 것이라고 해서 쉬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중독 상태가 깊기 때문입니다. 어찌 할까요?


흔히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눈 딱 감고 행동부터 바꾸면 생각이 따라 바뀌기도 합니다. 특히 생각이 길고 깊게 고착된 경우라면 이런 전술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아무 망설임 없이 그냥 결핍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흘만 그리하면 홀가분해집니다.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남에게 주는 것입니다. 세 번만 그리하면 홀가분해집니다. 이 행동을 통해 우리는 그 동안 우리가 얼마나 약탈을 가치 삼아 살아왔는지 알게 됩니다. 그렇게 깨달아 그 깨달음대로 행합니다.


저는 잉태되자마자 절대적 결핍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결핍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이 우울증의 진원중 하나가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결핍을 견디는 능력의 근원이 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실제로 저는 결핍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습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힘이 제법 셉니다. 기꺼이 흔쾌히 욕됨으로 나아가는 동력입니다. 기꺼이 흔쾌히 고통당하는 사람을 섬기는 근거입니다.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 하나가 열리는 인생이 적으나마 가르쳐준 사랑의 능력입니다.


“아, 난 이 시대가 너무 궁금하다! 안 되는 게 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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