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산과의사 - 개정판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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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 중의 여성이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기도하듯이 엎드린 자세일 때에 더 쉽게‘다른 세상’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115쪽)


마라톤 선수가 극한 고통 끝에 겪게 되는 황홀경runner's high이 있습니다. 참선 수행 끝에 겪는 오도의 법열도 본질이 다르지 않습니다. 깊은 학문적 연구와 사색 끝에 겪는 지평 열림의 환희 또한 같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고귀한 것은 아기를 낳는 어머니가 겪는 황홀경mother's high입니다. 전3자는 개체적 사건일 뿐이지만 어머니의 경우는 공동체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장 고귀한 황홀경으로 들어가는 ‘현관’은 어둡습니다, 좁습니다, 아프게 통과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엎드린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직립하는 인간에서 네 발로 걷는 동물의 상태, 그러니까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숙인 자세입니다. 만일 이것이 기도하는 자세라면 위대하여 높이 계신 신에게 표하는 겸손이 아니라 인간은 본디 엎드려 걷고, 기고, 흔들며 나아가는 존재, 심지어 땅속으로 뿌리 내려 한 생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서 아득히 낮은 연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진실의 흐름 전 과정에 바치는 겸허입니다. 어머니의 엎드림이 지시하는 인류 최후의 영성은 낮은 존재를 향해 무한히 번져가는 겸공謙恭입니다. 소소小小하고 미미微微한 존재에 기꺼이 스며드는 생명 감각입니다. 짓밟히고 버려지는 존재에 흔쾌히 깃드는 애틋함입니다. 참된 숭고는 위대함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소소하고 미미한 신으로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갑니다.


산업 출산이 파괴한 것은 이루 다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이 다름 아닌 이 소소하고 미미한 신의 길입니다. 사실상 전지전능한 인간집단이 사이비 전지전능의 신화를 만들어낸 어리석은 종교집단과 야합하여 세계를 허황되게 크고 훌륭한 내러티브 안에 가두어버렸습니다. 개나 소나 대박의 꿈에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물론 그 종착역은 파멸뿐입니다.


살 길은 오직 

이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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