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 지금 죽어가는 거, 맞죠?
(1) 이걸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다 해결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다 괜찮다고, 이젠 즐기라고.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아닌가 봐요. 여전히 남들에게 짐만 되는 거 같고, 남들에게 폐 끼치는 것만 같고, 난 뭘 해도 남들 발뒤꿈치도 못 따라 가고....... 맨 날 얻어먹는 건 친구의 짜증과 잔소리. 진짜 힘드네요....... 세상에 저 혼자인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희 엄마랑 아빠는 제가 4살 때 이혼하셨어요. 이혼하시고 나서 아빠가 새엄마를 데려오셔서 전 그분이 제 엄만 줄 알고 살았거든요. 근데 제가 초2가 될 때 아빠 카드를 1억인가 2억 정도 쓰고 도망갔어요. 그 후 엄마랑 다시 만나고 학교는 10번 정도 이사 다니다가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정착하구요. 그리고 5학년 때 확실하게 이혼하셨습니다, 두 분. 아빠랑 둘이 살고 있는데, 아빠가 굉장히 착하셔요. 착하셔서 그게 더 슬퍼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애들한테 거의 하루하루 매일 맞았어요. 싸대기에 종아리, 어깨, 주먹, 발차기....... 진짜 수도 없이 맞았습니다. 멍이 새파랗게 들 정도로, 선생님들이 때리는 것보다 훨씬 더 세게....... 엄마나 아빠에게도 그렇게 맞아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맞으면서 하루하루 공포로 살았습니다. 아빠가 굉장히 소심하시고 착하셔서 스스로 나서는 걸 꺼려하시고 뒤로 피하시고 그래서 제가 말씀 제대로 드리기도 꺼림칙해지고.......
그동안 너무 힘들었는데 6학년 때, 이제 막 중1 올라갈 때 풀려났거든요. 그리고 중1때 진짜 행복했어요. 진짜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때를 말하라면 중1 때를 말할 정도로 너무 행복했어요. 중2로 올라와서, 악몽이 다시 시작된 거죠....... 중2 끝나갈 쯤에 친한 친구에게 배신 맞고, 또 여기저기 맞고.......그러고 나서 칼을 들었거든요? 식칼을 들고 손목도 긋고 약도 30알정도 무식하게 삼켜대고....... 근데도 안 죽더라고요. 도중에 식칼로 심장 찌르려다가 무서워서 떨어뜨리고....... 전 진짜 인생 낙오자인가 봐요.
현재는 중3인데요. 친구고 뭐고 이제 친구 따윈 어떻게 되도 상관없어요. 아빠가 많이 아프셔요. 올해 53세이시거든요? 다른 애들이 볼 땐 할아버지죠.^^ 근데 어깨도 아프시고, 일하다가 많이 다쳐서 돌아오기도 하고....... 그런데도 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5학년 때....... 그 무서운 걸 전 못 이겨서, 공부엔 손도 못 댔고요. 지금까지 고등학교를 포기할까 도 수십만 번은 생각했어요. 자퇴 하고 그냥 알바나 하면서 아빠가 돌아가실 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텨볼까, 하면서 아빠 돌아가시면 저도 따라죽으려고 몇 번이나 생각했어요. 진짜 사람들한테 미움 받는 것도 너무 싫고 대인기피증에, 무대 공포증이 있거든요. 얼마 전에 노래 비슷한 것을 나갔는데 진짜 올라서는 그 순간에 다리가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정말 심각하게 떨리는 거예요. 다리가 너무 심하게 떨려 가지고 앞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정도로.......
이제 그만 편해지고 싶은데 제 주변은 절 그렇게 안 둬요. 제가 죽으면 애들은 고소해 할까요, 안 그래도 전교에서 미움 받는 저인데 진짜 너무 힘들어요. 안 그래도 돈도 없어가지고 공부도 못하고 친구들도 이렇고 가정문제도 이렇고 건강문제도 이렇고....... 진짜 죽고 싶을 만큼 너무 힘들어요. 너무 죽고 싶어요. 각오는 되어 있어요. 근데 제 주변인들이 절 가만히 안 둬요. 죽고 싶은데 못 죽겠어요. 저 같이 쓸모없는 인간이 또 있을까요? 학교에선 그저 애들 내신이나 깔아주는 멍청한 년....... 진짜 살기 싫어서 너무 힘들어요. 이 우울증 치료 할 방법이 없을까요?
2009년 여름 올려진 글입니다. 한 마디로 “죽고 싶어도 못 죽겠어”서 이어지는 시간의 고통을, 16세 소녀가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네 살 때 마음을 다친 이후 거듭되는 상처로 이 소녀의 영혼은 몇 개의 화석으로 존재할 따름입니다. 지금 여기 생기발랄하게 자라고 있어야 할 16세 소녀 아닌, 상처 받을 때마다 거기서 성장을 멈춘 어린 영혼들의 화석이 이 소녀의 내면 풍경을 형성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화석은 흔적일 뿐입니다. 화석은 생명이 아닙니다. 이 소녀는 사실상 죽어 있습니다. 생물학적 생명도 시나브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연은 다르지만 울부짖는 아이들의 생명은 성장을 멈춘 채 그저 어떤 기능만 유지되고 있을 뿐입니다. 설혹 우울증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래서 그 아이가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않더라도, 전체적 인격이 자라지 않고 특정 기능만 발달하고 완성된 다음 멈춘다면, 그게 다라면, 그 아이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적어도 사람으로서 산다는 것은 결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무엇입니다.
그럼에도 부모는, 어른들은, 그들이 움켜쥔 이 사회는 한사코 아이들을 그렇게 몰아가고 있습니다. 일등, 일류대학, 대기업, 부자, 권력자, 유명 스타.......이런 것들만이 가치라고 세뇌하고 있습니다. 남을 짓밟고 죽여서라도 이런 것들을 누리는 것이 인간의 덕목이라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 누림이 곧 인격이라, 인간의 근본이라 훈계하고 있습니다. 그 틈새에서 우리 아이들은 병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2) 인격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면 그건 죽어간다는 뜻 아닐까요?
참으로 물색없는 소리라고 생각하실 테지요. 그러나 의사로서, 특히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라는 사실 만큼은 부인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모든 정신적 고통은 인격 발달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입니다.
인격은 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관계 맺을 때 풍겨 나오는 향기입니다. 그 향기는 내면이 꽉 들어차서 밖으로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참되고 착하며 아름다운 체취입니다. 그것은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취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의 지배 신념은 돈이, 명예가, 권력이 바로 인격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인격이 없는 것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세속종교가 인간의 격을 파괴한 자리에 극단적 성공 프로세스를 가져다 놓습니다. 그 극단적 성공 프로세스는 극단적 기능을 추구합니다. 인격 발달의 균형을 무참히 깨뜨립니다.
아이들이 삶의 한가운데서 이런저런 상처를 받을 때,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흔들릴 때, 생명의 전체적인 관점을 통해 균형을 잡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어른들이 도리어 공부, 피아노, 노래, 발레, 골프....... 이런 기능으로 아이들을 내몰아버립니다. 어른이 되면 “그까이 꺼” 인격쯤은 다 저절로 된다고 부추깁니다.
하지만 이렇게 깨져버린 균형은 결코 저절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 부분이 어린아이인 채, 화석인 채, 아니 죽은 채 기괴한 어른으로 변해 갈 따름입니다. 사실, 그 부분이 너무나 소중한 부분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살아 있으나 죽은 “좀비”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 악마적 문명의 가장 큰 희생으로서 우울증이 존재합니다. 그 우울증이 목하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맹렬한 기세로 덮쳐가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돈, 명예, 그리고 권력을 쥐는데 능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확산되는 치명적 염증입니다. 그 염증은 이들을 더욱 깊은 자기모독의 늪으로 끌고 내려갑니다. 대체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어떻게 이 치명적 염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인지.......
[질문]
정말 주체할 수 없이 우울해요. 우울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 18살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처음에는 우울증인지도 몰랐어요. 학교 다니는 것, 일상생활 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어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학교 다닐 때에는 학교 가는 것도 너무 싫고 친구들하고 얘기하는 것도 싫고 활동하는 것도 너무 싫고 그냥 모든 게 다 싫었어요.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친구들 보면, 이해가 안 갔어요, 신기하기도 했고요. "뭐가 저렇게 즐겁지?" 그러다가도 그런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나도 저렇게 행복하면 좋겠다, 라고요.
도대체 왜 학교를 다녀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느 것 하나도 즐겁거나 재밌지도 않고, 항상 기운이 다 빠져서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어요. 눈도 또렷하게 뜨는 게 너무 힘들어서 항상 눈에 힘이 풀려있었고, 모든 게 다 지겨웠고 회의감마저 들었어요. 정말 학교에 있을 때면 매순간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너무 우울해서 집에 가고 싶어도 10시까지 야자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항상 공부에 집중도 못하고 10시까지 버텨내느라 힘들었어요. 고3때에는 너무 우울하다보니까 대학에 관심도 없었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모의고사 점수에 연연하지도 않았어요. 수능 전날도, 수능 당일 날도 저는 하나도 떨리지 않았어요.
선생님의 권유로 수시, 정시 합해서 13군데 대학에 원서를 넣었는데, 작년에 비해 수험생이 10만 명 정도 많아진 탓에 입시혼란이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적정 하향지원이라고 했던 학교에서 다 떨어지고, 13군데 다 떨어지고, 결국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적어도 1군데는 붙고, 단계별 전형에서도 1차 합격은 다 한 번씩들 해봤는데, 그래서 면접도 보러가고 그랬는데, 저는 1차 합격조차 한 번도 못해봤어요 다른 친구들보다 내신 성적도 조금 높고, 상향 지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절망감에 빠지고 좌절하고 스스로 패배자라고 생각하면서 정말 나는 왜 이럴까, 구제불능이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자꾸 이렇게 힘들어지기만 하는 거지? 사는 게 너무 싫었어요.
학교를 안 다니면 좀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학교를 안다녀도 여전히 너무 힘들어요. 항상 가슴이 답답하고 뭔가 응어리가 있는 것 같고, 머리가 어지럽고 찌뿌듯하고, 너무 예민해져 있고, 정신이 하나도 없고, 감정기복이 너무 심하고, 사람들이랑 대화할 때에도 항상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있고, 생각하는 대로 말이 딱딱 안 나오고,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마음속은 뭔가 우울하고, 매사에 의욕이 하나도 없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사는 것 자체가 너무 귀찮고, 무엇보다도 매순간 기분이 너무 이상해요. 정말 기분이 너무 이상하고 우울해서 진짜 미쳐버릴 것 같을 정도예요. 기분을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지금 재수를 하고 있는데 솔직히 공부하는 건 하나도 안 힘들어요. 대학 간 친구들 부러워서, 대학 간 친구들처럼 놀고 싶어서 힘든 점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너무 힘든 건, 이런 제 자신이 죽도록 싫다는 거예요. 우울해서 공부에 집중도 안 되고 의욕도 없고, 그런데 남들한테는, 이런 모습 보이기 싫어서, 나약해 보일까봐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데, 그러는 것도 너무 힘들고 지쳐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정말 이런 제 증상들 다 치료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고, 또 내년에는 원하는 대학가서 즐겁게 대학생활도 하고 싶어요. 저도 꿈을 향해서 열심히 살고 싶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답변]
"정말 주체할 수 없이 우울해요."
우울감에 대하여 참으로 선명한 울림을 남기는 표현입니다.
천만 번 공감해요.
우선 따뜻한 가슴으로 그 마음을 ‘꼬옥’ 안아드립니다.
최근 2~3년 동안 일어난 일, 그리고
거기서 비롯한 마음의 움직임을 소상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무엇보다 이렇게 글을 쓰셨다는 것 자체가 크낙한 축복이란 사실을
먼저 알려드리고 싶어요.
왜냐하면 이런 글쓰기가 바로 치유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잘 하셨어요.
또한
"저 좀 도와주세요."
이 한 마디는 ** 님이 그 누구보다 기품 있는 내면을 지녔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증명해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도움을 청하는 일이야말로 매우 성숙한 사회행위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 님은 이런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시는군요.
"내 자신이 증오스럽고 너무 싫었어요."
"이런 제 자신이 죽도록 싫다는 거예요"
"그냥 제 자신이 너무 싫어요."
거듭되는 자기혐오, 듣는 사람의 심장마저 후벼 파버리네요.
아서! 그러지 마세요.
지금 현실을 슬퍼하고, 슬퍼하고 또 슬퍼하더라도
제발 스스로 꾸짖고 때리지는 마세요.
그렇지 않아도 이미 상처가 나 있는데
그 상처를 다시 쑤시면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
자신에게 자비와 친절을 베푸시는 일부터 시작하세요.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꿈을 향해서 열심히 살고 싶어요."라는 희망을
말할 수는 없지 않나요?
있는 그대로, 어디든 쓸모 있는 자신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세요.
거울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하세요.
"**는 **인 **다!"
그렇습니다.
그 누구의 **도 아닌 자신만의 **입니다.
하여, **는 그 누구보다 먼저 은아 자신의 연인이어야 합니다.
**는 그 누구보다 먼저 **에게 연애 감정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현존하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아요.
해석도 평가도 모두 내려놓고, 오직
지금 여기 자신을 지지해주세요.
틀린 것, 잘못된 것, 전혀 없습니다.
지금 여기 자신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0점입니다.
왜냐하면 기준은 오로지 자기 기준, 즉
자기가 처한 현실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오른손을 들어 심장 위에 얹으세요.
그리고 다음 다섯 마디 말을 따라하세요.
하나, **야, 널 아프게 해서 미안해.
둘, 그런 나를 받아들여줘.
셋, 받아들여줘서 고맙다.
넷, 고마운 **, 사랑한다.
다섯, 사랑하는 네게 삶을 모두 맡길게.
밤에 잠들기 직전, 아침에 잠에서 깬 직후,
다정한 목소리로 한 번씩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적은 일상의 밖에서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혼자 힘으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짐작이 갑니다.
자상하고 깊은 상담이 필요할 것 같군요.
함께 그 길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2009년 봄 제게 전해진 한 소녀의 죽음 같은 삶의 보고서입니다. 이 소녀의 삶, 인간으로서 그 품격의 표현은 오직 하나. 대학, 그것뿐입니다. 모든 감정, 모든 사유, 모든 결단이 한 곳에 집중된 까닭에 그야말로 숨이 막히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삶을 단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겪는 시련이라 좋게 말하고 넘겨야 할까요? 과연 그렇기나 할까요? 이 소녀, 인격을 이토록 처참하게 박제로 만들고도 일류대학 가서 돈 잘 벌면 행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