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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분향소? 거기는 안 가요.”
“왜요?”
“아 글쎄, 안 간다니까요. 잠깐만요. (전화 걸면서) 아니, 왜 손님 목적지가 분향소라고 얘길 안 했어요?”
저는 분명히 분향소 간다고 말했거든요. 우리 반 당직이라서, 분향소 가자고 대리 불렀는데 기사가 안 간다는 거예요. 분해서분해서 살 수가 없었어요.(298쪽-정예진 엄마 박유신)
세계의과대학명부WDMS라는 책을 펴내는 세계의학교육협회WFME라는 단체가 있는 모양이다. 이 단체는 지난 2012년에 한의대를 삭제했고 올해 중의대를 삭제했다고 한다. 한국의 양의사 모임인 대한의사협회는 ‘세계 의학계에서 한의학과 중의학 등 전통의학을 현대의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인식과 평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대변인을 내세워 ‘객관적,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전통의학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오래돼서 검증된 것이라는 억지가 국제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정부도 더 이상 근거가 부족한 한방에 대한 일방적 우대정책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을 멈춰야 하며, 한방행위 전반에 대한 검증에 나서야 한다.’고도 주장했다.(출처: 메디칼트리뷴)
양의사가 세계의학계, 국제사회를 들먹이며 주장을 펼치는 태도는 대리기사의 “분향소? 거기는 안 가요.” 하는 태도와 본질이 같다. 이 태도는 프레임으로 전제된 외부권위에 편승해 자기가 정당하거나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허위의식에서 나온다. 자기준거에서 출발할 줄 안다면 결코 지닐 수 없는 태도다.
양의사가 자신의 의학을 객관적,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학문이고 한의학은 오래돼서 검증된 것이라는 억지라고 폄훼하는 말은 대리기사가 막무가내로 하는 “아 글쎄, 안 간다니까요.”라는 말과 지향이 같다. 이 말은 자신만의 진리성에 갇힌 일극구조에서 나온다. 비대칭의 대칭구조인 세계진리를 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다.
양의사가 한방에 대한 일방적 우대정책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며 정부를 비방하는 행위는 대리기사가 “(전화 걸면서) 아니, 왜 손님 목적지가 분향소라고 얘길 안 했어요?” 하는 행위와 품격이 같다. 이 행위는 자신의 반도덕성을 은폐하기 위한 사이비 도덕성에서 나온다. 협잡으로 얻은 도덕성은 끝내 제 발등을 찍는다는 진실을 안다면 결코 지을 수 없는 행위다.
어떻게 하류층 대리기사는 상류층 양의사와 태도·언어·행위에서 같을 수 있는가? 쉽다. 자기 계급을 배반하면 된다. 더 쉽다. 자기보다 하류를 만들어 상류 코스프레 하면 된다. 더더욱 쉽다. 상류가 만들어준 프레임에 쏙 빠지기만 하면 된다. 사실 양의사도 세계체제에서 보면 하류다. 저들이 한 짓을 내국화하면 ‘대리기사’를 다량 복제할 수 있다.
복제품이 넘쳐나는 식민지 사회에서 사람이 사람이라면 “분해서분해서 살 수가 없”는 게 맞다. 분하게 살해되고 분하게 불가촉천민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찌할까? 길길이 뛰다 제풀에 스러지는 것은 분에 못이긴 아이가 하는 짓이다. 분에 감응하는 어른은 칼을 간다. 칼을 가는 동안 기억을 다진다. 다 갈아진 칼을 팔의 일부 삼아 늘어뜨리고 선다. 앞에 서 있는 놈은 김식뿐만이 아니다. 그 뒤에 최형기가 있다. 최형기를 베어야 한다. 벨 것이다. 벤다. 베었다. 마감동416의 전미래는 250위 수호령과 함께 이루는 네트워킹이다. 꿈꾸는 장길산의 나라는 버려진 자들의 감각이 버린 자들의 판단을 이길 때 열린다. 그 개벽의 날을 기다리며 정예진 엄마 박유신이 칼을 늘어뜨리고 선 저 모습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