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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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 갔을 때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이 학생들 다 시험 공부하느라 안 올 거라고 하는 했거든요. “날짜도 이상하게 잡았다”라고 하시면서. 중간고사 바로 전 주 금요일이었어요. 앞쪽에 앉아 있었는데 뒤를 돌아볼 용기가 안 나는 거예요. 제 차례가 돼 단상에 올라가서 보니 학생들이 맨 앞에서 끝까지 강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요. 하... 어른들이 진짜 바보 같구나. 청소년들의 신경은 살아 있구나. 아이들이 이 일로 바르르 떠는 게 보이더라고요. 고맙고 미안해서 “너희들은 울지 말고 우리 아이들 몫까지 밝고 건강하게 자라라”라고 했어요.

  제 발언 끝나고 편지글 낭독이 있었어요. 낭독하는 학생이 한 첫말이 “지금은 울어야 할 때입니다”였어요. 그때가 1주기 막 지났을 때였어요. “꽃 한 송이 놓을 수 없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 “너는 그곳에서 나는 이곳에서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같이 노력하자” 그렇게 얘기하는데 내가 바보 같은 거야. 학생들은 아직도 머리끝까지 울음이 차 있는데 내가 울지 말라고 얘기했구나. 너희들이 어른이다.

  끝나고 나왔는데 체육관하고 본관 사이에 아이들이 일렬로 서 있는 거예요. 선생님이 시키지 않았는데. “다음 주 월요일이 시험인데 너희들 안 가고 왜 여기 있어” 선생님이 그러니까, “어머님 한번만 안아드리고 가고 싶어서 기다렸다”라고. 하... 선생님들은 아무도 저희 안아주시지 않았거든요. 애들 한명 한명이 다 저를 안아주는 거예요. 더뎌도 세월호 세대가 나라를 바꿔놓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306~307쪽-유예은 엄마 박은희)



어른들이 두고 볼 때 아이들은 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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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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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훈이가 하늘로 갔지만 아이 키우는 비용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자. 그래서 혼자 있는 아이, 할머니가 돌보고 있는 아이 몇 명에게 지원하는 걸 신청했어요. 그러던 게 계속 늘어나서 이제는 얼마가 나가는지도 모르게 됐어요. 참사를 겪으면서 힘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겠다, 내 위주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자, 소중한 사람을 잃은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전환을 한 것 같아요.(300쪽-김제훈 엄마 이지연)




높지막이 날 세워

저마다 쪼개고 밀치다

잃어져

서로 포개고 기댄다

나지막이 납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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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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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 거기는 안 가요.”

“왜요?”

“아 글쎄, 안 간다니까요. 잠깐만요. (전화 걸면서) 아니, 왜 손님 목적지가 분향소라고 얘길 안 했어요?”


저는 분명히 분향소 간다고 말했거든요. 우리 반 당직이라서, 분향소 가자고 대리 불렀는데 기사가 안 간다는 거예요. 분해서분해서 살 수가 없었어요.(298쪽-정예진 엄마 박유신)


세계의과대학명부WDMS라는 책을 펴내는 세계의학교육협회WFME라는 단체가 있는 모양이다. 이 단체는 지난 2012년에 한의대를 삭제했고 올해 중의대를 삭제했다고 한다. 한국의 양의사 모임인 대한의사협회는 ‘세계 의학계에서 한의학과 중의학 등 전통의학을 현대의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인식과 평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대변인을 내세워 ‘객관적,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전통의학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오래돼서 검증된 것이라는 억지가 국제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정부도 더 이상 근거가 부족한 한방에 대한 일방적 우대정책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을 멈춰야 하며, 한방행위 전반에 대한 검증에 나서야 한다.’고도 주장했다.(출처: 메디칼트리뷴)


양의사가 세계의학계, 국제사회를 들먹이며 주장을 펼치는 태도는 대리기사의 “분향소? 거기는 안 가요.” 하는 태도와 본질이 같다. 이 태도는 프레임으로 전제된 외부권위에 편승해 자기가 정당하거나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허위의식에서 나온다. 자기준거에서 출발할 줄 안다면 결코 지닐 수 없는 태도다.


양의사가 자신의 의학을 객관적,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학문이고 한의학은 오래돼서 검증된 것이라는 억지라고 폄훼하는 말은 대리기사가 막무가내로 하는 “아 글쎄, 안 간다니까요.”라는 말과 지향이 같다. 이 말은 자신만의 진리성에 갇힌 일극구조에서 나온다. 비대칭의 대칭구조인 세계진리를 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다.


양의사가 한방에 대한 일방적 우대정책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며 정부를 비방하는 행위는 대리기사가 “(전화 걸면서) 아니, 왜 손님 목적지가 분향소라고 얘길 안 했어요?” 하는 행위와 품격이 같다. 이 행위는 자신의 반도덕성을 은폐하기 위한 사이비 도덕성에서 나온다. 협잡으로 얻은 도덕성은 끝내 제 발등을 찍는다는 진실을 안다면 결코 지을 수 없는 행위다.


어떻게 하류층 대리기사는 상류층 양의사와 태도·언어·행위에서 같을 수 있는가? 쉽다. 자기 계급을 배반하면 된다. 더 쉽다. 자기보다 하류를 만들어 상류 코스프레 하면 된다. 더더욱 쉽다. 상류가 만들어준 프레임에 쏙 빠지기만 하면 된다. 사실 양의사도 세계체제에서 보면 하류다. 저들이 한 짓을 내국화하면 ‘대리기사’를 다량 복제할 수 있다.


복제품이 넘쳐나는 식민지 사회에서 사람이 사람이라면 “분해서분해서 살 수가 없”는 게 맞다. 분하게 살해되고 분하게 불가촉천민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찌할까? 길길이 뛰다 제풀에 스러지는 것은 분에 못이긴 아이가 하는 짓이다. 분에 감응하는 어른은 칼을 간다. 칼을 가는 동안 기억을 다진다. 다 갈아진 칼을 팔의 일부 삼아 늘어뜨리고 선다. 앞에 서 있는 놈은 김식뿐만이 아니다. 그 뒤에 최형기가 있다. 최형기를 베어야 한다. 벨 것이다. 벤다. 베었다. 마감동416의 전미래는 250위 수호령과 함께 이루는 네트워킹이다. 꿈꾸는 장길산의 나라는 버려진 자들의 감각이 버린 자들의 판단을 이길 때 열린다. 그 개벽의 날을 기다리며 정예진 엄마 박유신이 칼을 늘어뜨리고 선 저 모습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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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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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습자 은화 사진 들고 ‘세월호 인양하라’ 피켓 들고 서 있었거든요. 지나가던 사람이 자기는 의료사고로 아이를 잃었는데, 시끄러운 거 싫어서 참고 산다고 하는 거예요. 그 당시에 아무 말도 못하고, 울지 않으려고 턱이 아플 정도로 참고 있었어요. 그 다음날 가족증명서를 떼다 벽에다 딱 붙였어요. 준영이 사망신고를 안 했거든요. 진실을 알기 전에는 안 보낸다. 아직 내 가슴에 묻을 수 없다. 그때는 그런 걸로 버텼어요. 집 이곳저곳에 노란리본 다 붙이고, “난 세월호 엄마야, 세월호 엄마야” 나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면서 풀고 살았어요.(296쪽-오준영 엄마 임영애)


시끄러운 거 싫어서 참고 산다”는 말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맞으면서도 참고 사는 엄마 입에서 나옴직한 얘기다. 참 평화가 아님은 둘째 치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자녀들이 시시각각 죽어간다는 사실을 은폐함으로써, 참고 사는 것은 참담한 살인방조가 된다. 시끄러운 거 싫어서 죽음의 진실을 묻어둔 채 체념애도를 선택함으로써 자기 아이 다시 죽이는 엄마의 길을 어찌 남에게 요구하는가.


더 참람한 것은 세월호‘사건’이 의료‘사고’와 같다고 여기는 무지다. 그 무지는 개인 탓이 아니다. 불의한 국가권력과 사이비 언론의 속임수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속임수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자기 아이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듯 세상일을 어정뜨게 대하는 태도에 있다. 1시간 동안 12번이나 단원고 아이들만 콕 찍어 ‘가만있으라.’ 명령하고 구조하지 않은 것이 어떻게 의료사고와 같은가.


416가족은 물론 시민도 416의 정치적 고의성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안전사고나 노동 탄압도 넓은 의미에서 불의한 지배층이 피지배층 약자를 함부로 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사회적 사건이다. 416은 단도직입으로 국가권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조직 또는 개입한 학살사건이다. 아이들의 입장으로 보면 이는 분명히 “항쟁”이다. 총 들 수 없었을 뿐 518이 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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