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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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하게 얘기하고 싶은데 처음부터 누구 아버지라고 하면 그때부터 끝이에요. 저는 그게 싫어요. “유가족입니다.” 하는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시켜. 커피 한잔 타려고 해도 “앉아 계세요. 제가 타드릴게요.” 물 한잔을 먹으려고 해도 “앉아 계세요. 제가 떠드릴게요.” 어디를 가도 자리 다 만들어주고. 식당에 가도 우리 자리는 따로 있어요. 시민들하고 같이 밥 먹으면서 얘기하는 게 좋은데 유가족들만 따로 앉혀놔요. 그게 유가족들을 위하는 게 아닌데. 우리는 눈치가 보여요. ‘빨리 먹고 나가야 되나. 천천히 먹어도 되나. 술 왜 안 주나. 달라고 하기는 뭐하고. 술 더 시켜도 되나.’ 그래서 일부러 몰래 가요.(314~315쪽-우재 아빠 고영환)


온몸에 힘이 빠진다며 한약 치료를 원하는 60대 초반 여성과 마주 앉았다. 곡절은 아니나 다를까 마음에 있었다. 제법 경제적 여유 있는 전업주부로 ‘골프나 치면서’ 살다가 뜻하지 않게 사기를 당해 커다란 금융적 실패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받은 상처가 우울증 상태로 몰아간 것인데 몸 문제로 표현했을 뿐이다. 깊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매사 ‘나 같은 게 무슨 염치로·······’라는 단서를 붙이며 물러서고 만다. 가족들이 이제 내려놓고 편하게 살라 다독여주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다. 기승전자기부정의 시간이 꾸역꾸역 쟁여지고 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잊으려 애쓰지 마십시오. 잊히지도 않거니와 잊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긍부 평가 없이 받아들이십시오. 그 사실이 금융적으로 실패한 한 사람을 아프게 품고 있음은 물론이지만 다른 사람도 여럿 품고 있습니다. 자녀를 훌륭히 키워낸 사람, 가정을 화목하게 가꾼 사람, 음식 솜씨가 좋은 사람, 남을 잘 배려하는 사람·······금융 행위에서 실패한 사람에다 이들 모두를 묶어버리면 안 됩니다. 이것은 정신적 자기 살해입니다. 우울증이라 부르는 육중한 병입니다.”


416은 전천후로 유가족을 우울증에 빠뜨린다. 우재 아빠 고영환이 경험하는 것처럼 심지어 시민들이 유가족을 “위하는” 일련의 행위조차 유가족을 유가족에다 묶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유가족이 아닌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일부러 몰래” 해야 할 지경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416을 일으키고 그 진실을 은폐하는 권력 패거리가 엄존하며, 거기에 맞서 유가족이 항전의 깃발을 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 입장에서는 전사를 엄호해야 하는데 유가족 입장에서는 끝까지 가려면 ‘웃어야’ 하니 어쩌면 교착은 불가피할는지도 모른다. 교착을 풀려면 진실을 밝히고 범죄자를 처벌하여 아이들을 복권시켜야 한다.


아이들이 복권된 세상이라면 유가족은 더 이상 전투복을 입고 따로 앉아 눈치 보지 않는다. 평상복 입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자유롭게 흔쾌하게 한다. 슬픔은 다른 사람보다 더 깊기는 하겠지만 여러 가지 감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예전처럼, 아니 그보다 더 유연하게 구가한다. 우울의 기억을 지녔으나 다시 아프지는 않다. 416 이후 한국사회를 416의 눈으로 해석하는 버릇이 생긴 소시민인 나는 “앉아 계세요.”라는 말에서 “가만히 있으라.”라는 메아리를 더는 듣지 않는다. 416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는 꿈을 꾸러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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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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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이 “왜 단식을 해? 솥 걸고·······밥 먹으면서 싸워야지. 어떤 놈 좋으라고 단식을 해?” 농담으로 그렇게 말해요. 그런 농담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힘들게 싸우면서 엄마들이 변한 건데, 세상·······은 ‘아이들을 잊어서, 그리움이 덜해져서 저렇게 웃고 농담·······하는구나.’ 그러죠. 저희는 끝까지 가기 위해 그러는 거예요.(312쪽-오준영 엄마 임영애)


문득 김선우 시인이 떠오른다. 2011년 희망부스 방송 진행 때 만나 선물한 자신의 책 『캔들 플라워』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웃으며, 함께, 끝까지!” 2014년 416엄마들을 만났을 때 그는 똑같은 다짐과 격려를 했을 테다. 수탈당하는 약자의 천명과 슬픔을 ‘노래하는’ 시인의 천명이 맞물리는 지점은 언제나 여기다.



슬픔을 당한 사람의 웃음은 시간 풍화가 빚어낸 기억과 감정의 허름한 경계를 뚫고 나온 키들거림이 아니다. 웃기도 해야 살지, 따위 균형도 아니다. 그것은 기억과 감정을 옹골차고 유연하게 하는 곡진한 제의다. 축제다. 타인이 애먼 소리로 끼어들 계제가 아니다. 무례 너머 2차 가해를 범하지 않으려면 맞장구치고 웃을 따름이다.


오준영 엄마 임영애의 말을 듣고 돌아보니 내 삶은 웃음에도 옹색했고, 웃음을 지어내는 일에도 옹색했다. 깨달음보다 병이 먼저 올 만큼 너무 일렀던 슬픔 탓이리라. 여생이 얼마나 될까. 정색하고 웃음을 마주해야겠다. 64년이나 울음에 뒤쳐진 감수성으로 살아 쉽지는 않을 테지만 해보는 거야. “자! 웃으며, 함께,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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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애 낳고 산후조리원에 같이 있던 언니가 있어요. 아이 생일이 같아서 매년 만났어요. 큰애들도 동갑이고 둘째도 생일이 같고. 장례식 때 보고 4년 만에 처음 만났어요.

“경희야, 너 시연이 시신 사진 가지고 있지?”

“응.”

“나 그것 좀 보여줘. 내가 우리 시연이 마지막에 입관할 때 못 가서,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너한테 못 왔어. 나 그 모습이 너무 보고 싶어.”

“언니, 볼 수 있겠어?”

“괜찮아. 우리 딸인데 왜 못 보겠어? 우리, 엄마잖아.”(309~310쪽-김시연 엄마 윤경희)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를 읽어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이율배반의 찰나를 여기 대화에서 베이듯 맞닥뜨렸다.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바로 그때 내가 대화 첫 문장에서 ‘시신’ 두 글자를 흘리고 읽었다는 사실을 불현듯 알아차린 것이다. 곧 이어 깨달음이 들이닥쳤다. 나의 참혹에 참여하는 남은 없다. 나의 참혹에 참여하는 이는 나와 함께 나‘들’이다. 결국 나는 나‘들’을 목격하고 눈물을 쏟았지만 무의식적으로 참혹 앞에서 눈 질끈 감은 남인 것이다. 이천 마흔 한 날 째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살아왔음에도 나는 여전히 아이들의 참혹, 그러니까 죽음의 물적 실재 앞에서 산 자의 알량한 피부를 드러내고 있구나. 이 죄 깊은 아둔함이여! 나는 고꾸라진다. 무릎을 꺾는다. 온 몸을 땅바닥에 엎는다. 온 영혼을 찢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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