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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친해진다는 건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잖아요. 내 아픔이 공유가 되려면 상대방도 아픔이 따르기 때문에 벅찬 거죠. 그렇다고 “내 상황이 이래, 내 이야기 들어주면 좋겠어.” 라고 밀어붙일 수는 없잖아요. 우리 같은 입장이면 이웃을 깊이 사귀는 것도 힘들구나 생각을 했어요.(김제훈 엄마 이지연)
이 사연을 이야기꺼리로 삼은 뒤 꼬박 사흘 동안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어떤 내밀한 전언이 들려오는데 분명한 결을 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뭘까? 이 세 문장을 써놓고 또 하룻밤을 흘려보냈다. 왤까? 72시간의 법칙이 작용한 것인지 마침내 오늘 아침 홀연히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새삼 정색하고 돌아보니 나는 남 얘기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생면부지 사람들이 형식도 절차도 없이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상담을 청하곤 했다. 거리에서 조그맣게 좌판을 벌여 과일 장사하는 중년 사내가 어느 날 꾸벅 인사하더니 다짜고짜 자신의 애환을 털어놓던 기억은 10년이 다돼가는 지금도 선명하다. 무의식으로 혹은 몸 느낌으로 포착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나는 남 얘기를 듣는 데 온 감각이 쏠려 있어 내 얘기를 남한테 하는 데는 세밀하게 신경 쓰지 못 하는 사람으로 기울어져 있다. 나처럼 아픔의 공유를 천명으로 삼지 않은 다음에야 남 얘기 듣는 일이 “아픔이 따르기 때문에 벅찬 거”란 사실을 가볍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 “우리 같은 입장이면 이웃을 깊이 사귀는 것도 힘들구나 생각을” 하는 사람 향해 선뜻 두 팔 벌리지 못한 까닭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내가 남 얘기를 홀딱 듣듯 내 얘기를 하면 남들도 그렇게 들어주리라 믿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믿음은 상담이 형성하는 고통연대 경험에서 비롯한다. 아픈 사람들이 서로의 얘기를 듣는 것은 “벅찬” 짐이 아니다. 교감을 트는 듬직한 은유다. 아픈 사람에게는 쉬운데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 있다는 진실, 저 치유공동체 너머 쫀득거리는 일상 감각에 정통하지 못한 나는 어디에 구멍이 난 것일까?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다가 깨달은 뼈아픈 사실이 하나 있다. 끝내 자신의 삶을 기적으로 만들 수 있는, 오백 잔으로 까불이 머리통을 까버릴 수 있는 동백이의 힘은 가장 근원적인 그리움을 놓지 않고 기다림을 베지 않은 데서 나왔다는 것. 근원적 그리움을 놓아버리고 기다림을 베어버린 채 견뎌온 내 생은 엄마 살에 닿는 근원적 감각을 결여한 나머지 감각 위에 서 있다. 내가 저 치유공동체 감각에 붙잡힌 이유다.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럴만했다. 내 잘못이 아니어서 나는 통렬히 뉘우친다. 복원 불가능인 채로 그 결여를 따스하고 독하게 직시한다. 등걸이 작으나마 새 가지를 내 키우듯, 아니 죽은 등걸이 버섯이나마 피워내듯 남은 시간은 그 동안 흠 있는 치유공동체로 함께 했던 분들에게 진 빚을 갚기로 한다. 416꽃 필 무렵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