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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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이후로 개인적으로 연락 온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술 한 잔,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시민들도 많았는데 한 번도 응한 적이 없어요. 차 한 잔, 커피 한 잔도. 기자들도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요. 그런데 진상 규명에 방해가 될 것 같더라고. 개인적인 약속은 단 한 차례도 없어요.(316쪽-예은 아빠 유경근)


박근혜 정권 초기 어느 날이었다. 한 동안 소식이 끊겼던 옛 제자가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인사동 어느 한정식 집으로 안내했다. 이런 저런 지난 얘기를 나누다가 그가 말했다. “선생님, 실은 제가 얼마 전에 학교 그만두고 준공무원이 되었습니다.” 나는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놀란 시선을 그에게 보냈다. “저도 난생 처음 들어본 조직에 난생 처음 들어본 자리가 있었습니다. 마침 제 전공과 맥락이 닿았고 높은 연봉인데다 정년 보장한대서 큰 고민 없이 이직을 결정했습니다.” 내가 의문의 눈길을 풀지 않자 그가 이어 말했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적잖이 부끄럽습니다만, 사실 지배층이 하는 일 가운데 자리 토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고액 연봉 챙겨가는 자리를 만들고 거기 자기 떨거지를 앉혀 세를 불리는 겁니다. 일반 시민은 가 닿지 못하는 폐쇄회로로 유통되는데 저는 어쩌다 운이 좋아 할 일이라도 있는 자리가 걸렸습니다.” 내가 의문의 눈길을 여전히 풀지 않자 그가 마침내 말했다. “이모가 다리를 놓으셨어요.”


아~ 그래, 이모. 이모라면 우리에게 얼마나 친숙한 이름인가. 처음 본 식당 종업원에게도 인심 쓰는 관대한 호칭이 분명하다. 우리가 설마 식당 이모한테 자리 얻으려고 인맥 쌓기로 하겠냐만, 이 이모와 저 이모가 그렇게나 먼 거리에 있지 않음 또한 사실이다.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친족 관계로 만드는 친밀 행위가 우리네 도타운 정의 소산이라는 측면이 있으나 종당 이해관계 문제가 들이닥치면 그 행위는 패거리 짓기 이상도 이하도 아님이 드러난다. 패거리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이익을 위해 막무가내로 한 데 엎어진다. 바로 이 패거리 정치가 416을 일으켰고 그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패거리는 어느 패거리나 그저 패거리다. 패거리 속으로 들어가면 결국은 진실을 버리고 패거리 ‘의리’에 묶일 수밖에 없게 된다. 예은 아빠 유경근이 내다본 최후 지점에는 바로 이 구덩이가 도사리고 있다. 두 눈 멀쩡히 뜨고 그 구덩이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모 조카로, 형 동생으로 얽히고설키다가 416 진실과 마주치면 어찌 될까.


마음병 치료 때문에 찾아온 이들 가운데 나를 아버지의 예로 대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들과 내가 한 데 엎어져 탐욕을 좇는 통속한 일은 물론 없었다. 특이한, 그러나 누구라도 그럴만한 한 사람을 기억한다. 그는 정중히 자청해 나를 아버지라 불렀다. 아버지라 부른다는 말이 치료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 줄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정색하고 물었다. “아버지한테 돈 내고 치료받는 자식은 없으니 인정하마. 자식이라면서 너는 왜 명절에 과일 한 덩이나마 사들고 오지 않느냐?” 얼굴이 붉게 물들었을 뿐 돌아오는 그의 대답은 없었다. 패거리로 공통 이득에 묶이는 짓과 저만의 이득을 위해 패거리를 만드는 짓은 다르지 않다. 패거리 중의 패거리로 가족이 지목되고 있는 것은 친밀한 관계를 다만 탐욕의 도구로 삼는 인간의 타락이 거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인류 전체는 물론 지구 생태계 자체를 멸절의 위기로 몰아넣은 패거리문명을 해체해야 할 때가 지금 아닐까. 416“가족”이 패거리 가족을 내파하는 폭점으로 작동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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